상처, 캔버스에 아크릴
이 그림을 처음 그릴 때는 사람의 얼굴이 나올 거라는 걸 알지 못했다. 단지 검은색과 핏빛처럼 붉은 물감으로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싶었다.
붉은 물감을 나이프로 긁고 뿌리고 하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마치 비밀로 캔버스 속안에 숨겨져 있던 그림처럼 눈이 커다랗고 겁먹은 듯한 표정의 소녀 얼굴이 드러났던 것이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린시절의 나를 그리고 싶었던 거였다.
어린시절의 나는 이렇게 핏빛처럼 끊임없이 상처입으며 겁먹은 눈동자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어디에도 구원은 없었다.
그런 여자아이를 그려서 나라도 기억해주고 간직하고 싶었다. 비록 지금의 나는 많이 평온해졌어도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기억해주지 않으면 그 두려움에 떨던 소녀를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너무 안스러울 것 같았다.
이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어린시절의 나는 내옆에서 쉴 수 있게 되었다. 가끔 그림을 보고 말을 건네본다.
'얘, 이제 너는 평온하니?'
대답은 오지 않는다. 다만 그림 속 소녀의 표정이 볼 때마다 미묘하게 다르다. 그래서 더욱 말을 걸고 싶어진다.
나의 어린시절이여, 이제 조금씩 덜 아파하렴.
너는 이제 휴식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