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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리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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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e Feb 20. 2018

떠나가거나, 떠나오거나

환장의 섬

집에만 있었다.

멍하니 앉아 종일 한숨을 쉬었다.     

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후부터 여러달에 걸쳐 가게 자리와 살림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가진 것은 적고 우리 마음에 드는 집은 없었다. 영혼없이 지어진 타운하우스나 신축 상가만이 부동산 블로그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조용한 마을의 고요한 터, 마을을 오랜시간 지켜온 나무 한그루만 있다면 원이 없겠다며 제주 곳곳을 다닌 것이 벌써 수개월째. 마음에 드는 자리는 우리가 대출한도와 통장잔고를 확인하는 사이 다른 누군가에게 금방 계약이 되어버리고 또 놓칠세라 생각도 하지 않고 계약을 하겠다고 하면 주인이 욕심을 부려 다시 집어넣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잘 되었으면 했다. 아니 잘되어야만 했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아 초조가 극에 달했을 때 우연히 만난 그 집은 우리 마음에 딱 들지는 않았지만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선택이라는 전제하에 밤새 한숨 못자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 잔것도 아니고 안잔것도 아닌채로 아침이 되기 만을 기다렸다가 계약을 확정하겠다고 연락을 했더니 부동산에서 너무 난감해 했다.

“정말 죄송해요. 갑자기 보류하셨어요. 더 받고 싶으신 모양이에요”

팔고 싶어 내놓은 집을 누군가 사겠다고 하면 잘되었다 얼른 팔아야지가 아니고 아이고 내가 더 높게 내놨어도 팔렸겠구나,하면서 다시 집어넣는 것이다.


이렇게 눈앞에서 사라진 집이 벌써 세 번째. 사실 우리 형편에 매매는 굉장히 어려운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빚을 내어가며 매매하자고 결정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시는 쫓겨나고 싶지 않다는 바램. 조용히 우리만의 삶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 딱 그것 뿐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우리의 바램은 또 산산조각이 났다.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알아보려고 제주시에 있는 은행으로 가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이를 악물고 말없이 운전을 하던 그에게 산책을 제안했다. 금능마을, 금능바다, 우리의 금능을 그렇게 한참동안 천천히 말없이 걸었다.

“우리에게는 우리 가게, 우리 집의 인연이 없으려나봐”

나는 웃음과 울음이 반쯤 섞인채로 그에게 말했다. 그는 말없이 호주머니 속의 내 손을 더 꽉 잡았다. 멀지 않은 기간내에 가게 짐도 꾸려야 하고 집의 짐도 정리해야 했다. 가게와 집 모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7년 전, 제주 여행 중 만난 우리는 조용하고 한적한 금능에서 산책을 자주 했었다. 제주에 이주하기로 마음먹고 난 뒤에도 그때의 추억 때문에 금능에 집을 구하고 가게까지 구했다. 금능에 카페를 한다고 했을 때 유명한 협재도 아니고, 일주버스가 다니는 도로가도 아닌 마을의 안쪽이라 지인들이 걱정이 많았다. 우리 조차도 확신은 없었지만 돈 많이 벌자는 마음으로 내려온 제주가 아니었기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되려 조용한 마을안이라 좋았다.

"많은 사람이 찾지 않아도 분명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분위기나 맛, 마음을 아는 사람들은 꾸준히 와줄거야. 그정도만 되도 좋을 것 같아. 대출이자랑 연세랑 공과금만 밀리지 않고 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와 나, 오로지 그 마음 뿐이었다.


제주는 매일매일 빠르게 변했고, 들썩거렸다. 떠나가거나 떠나오는 사람들로 제주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티비에서 제주가 나오지 않는 프로그램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기저기 늘어나는 신축 공사현장을 보며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래도 내가 이런 일을 겪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봄. 건물주는 재계약 관련한 이야기를 하자고 직접 만나자는 우리의 연락을 꾸준히 피했다. 연세를 3배이상 올리고 1년 갱신을 해주겠다는 구두약속을 받았지만 계약서를 쓰기전에는 안심할수 없기에 내내 불안했다. 그러던중 주인집은 건물 2층을 펜션으로 운영하기 위해 공사를 하였고 공사 소음으로 인해 우리는 영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인은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와

“재계약 못해주겠어. 다른데 알아봐”

콧방귀도 뀌지 않는 주인에게 자존심도 버리고 울며 애원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시라며 우리의 입장을 설명했지만,

“나도 예전에 이런일 많이 겪었어. 근데 나는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아무말 안하고 나갔어. 근데 니들은 왜그러냐. 내가 싫다면 싫은거지. 내가 주인인데 내 맘대로도 못해? 내 건물에 내가 공사한다는데 니들한테 허락받아야 되냐? 왜 나를 갑질하는 사람 만드냐?”


재계약 불가능이라는 일방적인 전화 통보를 받은후 우리는 매일이 지옥이었다. 가게를 열고 있어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손님을 맞았다. 실수가 잦아지고 말이 줄었다. 막막해진 현실에 한껏 예민해진 우리는 괜한 일에 자주 다투었다. 제주에 부는 바람, 그 태풍속에서 우리는 위태롭게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뭘 할거라, 우리 며느리 가게 내줘야지, 우리 딸이, 우리 손주가...우리 우리...결국 그들이 말하는 “우리” 속에 우리는 없었다.


큰 용기를 내어 섬으로 떠나온 우리는 결국 다시 섬을 떠나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매순간 고민속에 살다보니 잠을 자도 수없이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끝없는 불안감에 자주 앓았다. 얼마전에는 서귀포로 달리는 차 안에서 첫눈이 내린 한라산을 보았는데 두려움인지 설레임인지 모를 두근거림이 한참동안 계속 되었다. 제주에 이사를 오고 시골집을 얻어 손 보면서 느꼈던 그때의 감정과 열정이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있긴 한걸까.


어쩌면 우리는 매일 조금씩 제주와 이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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