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낭.
삼낭.
대부분 사람들은 잘 모르는 단어인데, 전통공예 동네에서는 쉽게 만나는 말이다. 특히 자수 주머니를 만드는 우리 공방에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용어이다. [오낭]은 보통 수의와 함께 쓰는 주머니로 손톱, 머리카락 등을 넣는다. [삼낭]은 무속인들이 무복에 사용하는 세 개짜리 주머니이다. 그 밖에도 납골당에 넣고 싶다는 주머니부터 첫 돌 아기를 위한 돌띠 주머니 주문까지, 생각보다 다양한 주문들이 들어 온다.
……그리고 나는 대부분의 주문을 받지 않는 슬픔이 있다.
조선빈티지는 궁중자수를 기본을 하기 때문에 다른 공방 비해서 화려한 작품들이 많다. 유물재현도 그렇고 별도로 디자인한 작업들도 화사하고 밝다. 실크 자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금테까지도 둘러주는 주인장의 취향. 금테도 부족한 것 같으니 진주, 산호, 옥까지 더해서 묵직하고 존재감 있는 장신구들이 작업실에 쌓여 있다. 한 번씩 안부묻듯 서랍장을 열 때마다 흐뭇하기 그지 없다.
아주 가끔, 반복된 자수 작업이 살짝 지루해질 때 자수주머니와 자수 노리개들이 가득한 서랍장을 열면 삶의 의미가 격하게 차오른다.
[그래,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데 인생을 쓰고 있지.
그리고 그런 시간들에 대해서 아무 후회가 없지]
기도문 같은 다짐으로 다시 어여쁘고 소중한 자수 장신구를 만든다. 수 천의 바늘땀은 비단꽃이 되고 나의 하루도 열매 맺으며 마무리된다.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전통자수가 곧 나의 인생이다 보니 자수 작품을 함부로 팔지 않는다. 작고+귀엽고+아주 소박한 재주지만 온전히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재능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란트로 받은 재능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그 결과물에 대해서도 재능을 무상대여 해주신 분의 심기를 건들지 말자는 원칙이 있다. 다른 분야의 죄들은 참 자연스럽게 짓고 쉽게 잊지만, 바느질로는 죄짓고 싶지 않다는 일말의 양심이었다.(유일한 양심일 때도 많다;)
사바세계의 문제는 바로 이 지점부터이다.
[바느질 하는 요세피나]의 연약한 의지와 다짐은 격동의 자본주의 시장 한복판에서 적지 않은 가격으로 유혹 당한다는 점이다. 나 보기에도 참 어여쁜 자수 작품들은 무속인분들 보기에도 매우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무속인들은 자신의 신당에 내 자수 작품을 바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전한다. 공들인 작품으로 자기가 모시는 신께 정성을 보이겠다고 [요세피나] 앞에서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그리고 반복되는 클리셰로는,
"가격은 상관마요, 사장님 달라는대로 드릴께."
(...... 언제 봤다고 반말을......)
"아휴, 천주교 신자들도 다 와요, 까탈스러우시네."
(...... 너님, 진짜 혼나요......)
"선생님이 싫으면, 다른 선생님들 연결해줘요."
(......뭐, 뭐래......)
평소에 무척 자연스럽게 죄짓고 살던 요세피나를 각성하게 만드는 버튼이기도 하다.
내가 저기까지는 가믄 안된다!
두 눈이 번쩍!
나는 매우 단호한 목소리로,
“조선빈티지에서는 무속 관련한 그 어떠한 작업도 해드리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 알아 보시는게 좋겠습니다.” 라고 응대한다. 보통은 여기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간혹 발끈하여 언짢아하는 무속인들도 있다. 나도 더욱 발끈하여 끝내 마무리짓는다.
사실, 무속인분들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할 뿐.
그저 나와 지향점이 다를 뿐.
굳이 공개적으로 주문 거절을 쓸 필요까지 있을까 싶어서 매번 비공개로, 개별적으로 거절해왔는데, 햐. 이제는 공지 한 번 올려야겠다 다짐하는 주문들이 온다.
얼마 전, 자신의 아기가 하늘나라로 갔는데, 꿈에 나타나서 이러이러한 디자인으로 수를 놓아 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니,돌 지난지 몇 해 안된 어린 아기가 전통자수를 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하셨을까? 수놓은 물건을 자기의 납골당에 놓아 달라고 했다는데......
의뢰한 자수 디자인이 아주 기가 찼다.
그 어린 아이가 뽀로로나 하츄핑을 수놓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십이지상 중 하나를 금실로 수놓아 달라고 꿈에서 말하는건 너무 이상한데!!!!!!
햐......나는 아이의 죽음을 입에 올리는 전통자수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정말 선을 세게 넘었다고 판단하여 공방SNS에 대문짝만한게 공지를 올렸다.
[무속 관련한 주문 금지!]
시뻘겋게 썼다.
이후에 다른 공방 선생님들이 연락을 해왔다. 조선빈티지에서 먼저 용기내줘서 고맙다는 내용들이었다. 자신들도 비슷한 주문이 올 때마다 꺼려지면서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고. 혹시나 해코지하면 어쩌나 싶었다고. (아니, 자기 주문 안 받아준다고 해코지 하면 그게 제대로 된 무속인이냐고......)
세상에는 답을 못 찾은 수많은 요세피나들이 있었나보다. 같은 고민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지혜로운 해결 방법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거칠고 담박한 방법으로 결론지었다.
[무속금지]
나의 결정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이야기하는 무속인분들도 적지 않았고 굳이 사람 통해서 험한 말을 전해오는 분들도 계셨지만, 각자 서로의 신께 최선을 다하는 일만큼은 온전한 존중이 필요하다.
나도 큰 신 모시는 사람으로서 양보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인스타그램에는 여전히 꽤 많은 무속인분들로 연결되어 있다. 세상에 꽃도령님이 그리 많은지도 처음 알았고, 항상 수업에 오겠다고 하는 예약하는 선녀님들도 흔하다. 무속인 가족분들이 대신 찾아 오는 최신 버젼도 있다.
바느질 하는 요세피나는 마주치는 사바세계가 항상 혼란스럽다. 어디까지 인간적으로 대해야 하는지, 어디부터는 단호하게 뿌리쳐야 하는지 마흔줄에 있어도 정답 찾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마흔줄이라서 더 선명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는 정답이 꽤 분명했던 것 같은데 나이를 드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열심한 신자인 우리 어머님께서는 미카엘 대천사님께 구마기도하면서 자수 작업하라고 하시는데, 미카엘 천사님 우리 공방 오시면 나부터 칼 맞겠다 싶기도 하고......그저 성당에서 자수 주머니를 주문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애써 농담으로 넘겨 본다.
(쓰고 보니 농담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성당에는 왜 전통자수가 필요없는가!!!!! 매우 진지하다)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배려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고, 나 자신에 대해 양보할 수 없는 선에 대해서도 고민해본다. 아직은 선명한 답을 찾지 못해서 우왕좌왕하는 일이 생기겠지만 [바느질 하는 요세피나]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면 조금 더 지혜로운 태도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내 꽃신을 좋아한다는 동자신의 고백을 또 듣는 오늘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