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슬토가 되고 싶은 레드 귀주머니

액운을 막는 전통과 조선 성탄절

IMG_7113.jpg 조선빈티지 크리스마스 귀주머니


공방의 계절은 패션 화보집을 닮아 있다.

몸이 담겨 있는 계절과 눈이 머무는 계절이 늘 다르다. 봄에는 독한 여름 더위에 비단이 상할까 걱정하고, 여름에는 단풍구경 가는 수강생들의 결석이 염려된다. 가을이 되면 겨울방학 탓에 대부분의 수강생 수업일정이 엉망이 된다. 작업실 한켠에서 걱정 한 땀을 수놓다보면, 한겨울에 봄옷을 입고 오돌오돌 떨고 있던 화보 속 모델들이 남일같이 않다.


다음 시즌 커리큘럼과 소품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게으른 공방 주인장처럼 보일까봐,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을 눈에 담을 틈도 없이 한겨울 크리스마스 소품 준비에 나선다. '조선빈티지'다운 크리스마스 소품이 뭘까 생각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작업을 해본다. 마음이 수선할 때 바쁜 손만큼 효험있는 약이 없다.


크리스마스 소품으로 처음 시작하는 작품이니 기본 컬러 고민부터 시작한다.

가장 클래식한, 짙은 빨강과 그에 상응하는 짙은 녹색을 적용해 본다. 빨간 비단 한 조각을 만지작거리다가 작은 귀주머니 하나를 완성했다. 약 5cm 길이로 두 번쯤 박음질하면 만들어지는, 초보자들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쉬운 작업이다. 이 정도 바느질이라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10년 넘게 바느질 가르쳐온 선생의 데이터는 꽤나 믿음직하다.


완성된 레드 귀주머니를 금빛 체인으로 연결해서 유칼립투스 가지에 고정한다. 유칼립투스는 프리저브드 프라워 기법으로 처리된 나뭇가지라서 보통 3년 정도 지금 모습 그대로 유지한다. 시들지 않는 푸른 빛과 강한 빨간 비단이 한꺼번에 크리스마스를 담아 낸다.

대비가 분명한 두 소재가 자연스럽게 보이는건, 보일 듯 말 듯 가늘게 반짝이는 골드 체인 덕분이다. 그 위로 어색하게 아치를 그리고 있는 거친 마끈은 전체적인 비율이 영 눈에 익지 않지만 가벼운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분위기를 만드는데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다. 허술한 듯, 무심한 마끈은 강렬한 빨강과 녹색의 긴장감을 잠시 잊게 한다.


전통적으로 빨강은 액운을 쫓는 색이다. 여러 크기와 다양한 모양의 복주머니들이 예로부터 빨간빛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각이 뾰족한 주머니는 액운을 내쫓는 힘이 강하다 여겼다. 작지만 뾰족한 조선빈티지 레드 귀주머니도 그 전통을 잊지 않고 끝까지 야무지게 각을 세웠다.


손다리미질로 꾹꾹 눌러 모양을 다듬는 사이 오래된 한 장면이 떠올랐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영화에서 미슬토 아래에서 키스하는 서양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꽤나 흥미로운 풍습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장면은 동방예의지국 조선땅에서는 어렵지 여겼는데......

이제는 눈 앞에 그런 일이 벌어져도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앙증맞은 유칼립투스 가지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이 쌓여가길 바라는 마음을 살짝 얹어본다. 물론, 조선빈티지 레드 귀주머니를 잘 만든 이후에 바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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