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진 복주머니, 그린 두루주머니

초록색 원단이 바탕색이 되면 걱정이 많은 전통자수 작업

IMG_7125.jpg 조선빈티지 그린 두루주머니


클래식한 레드와 그린을 주제 컬러로 삼아 조선빈티지 크리스마스 소품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처음 하는 작업인데도 손끝은 꽤 신이 나 있다. 몇 주는 지나야 겨우 완성품을 만날 수 있는 전통자수와는 달리, 아침에 시작한 바느질이 오후가 되기도 전에 완성품으로 마무리되니 낯선 속도감에 내 손도 꽤나 당황한 눈치다.

그리고 나는 이상하게 들떠 있다. 크리스마스 소품을 만드는 일은 아마도 ‘노동’에서 잠시 벗어난 일로 인지되는 모양이다.


첫 번째 작업으로 레드 미니 귀주머니를 마친 뒤,

두 번째 작업으로는 초록빛 복주머니를 추가해 본다.

빨간 미니 귀주머니와 대칭되는 작업이므로 비율감을 잘 조정한다.


솜을 넣으니 가로 세로 약 5~6cm 정도, 꽤 앙증맞은 오너먼트가 되었다. 둥근 하단과 주름진 상단으로 나뉜 두루주머니에 금박을 찍어 중심을 잡고, 거친 석영 조각처럼 보이는 파츠 비즈 체인으로 마무리한다.

유칼립투스 가지와 마끈의 구조는 전체적인 통일감을 위해 반복해서 사용한다. 레드 미니 귀주머니 곁에 두니, 책상 위에 크리스마스가 도착해 있다.


빠른 작업 속도감에 손끝이 신난 줄 알았는데,

초록 원단도 들뜬 내 손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그래. 초록 바탕 원단으로 이렇게 고민 없이 작업하다니!’


사실 전통자수를 놓는 사람 입장에서 초록빛 원단을 바탕색으로 삼는다는 것은 작업하는 내내 색상 고민을 떠안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밝은 연두빛 흉배는 정형화된 색상과 이미 유물로 남겨진 샘플이 있어서 색상 고민을 조금 덜고 진행할 수 있지만, 창작의 영역에서 연두빛·초록빛 바탕 원단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본래의 붉은 컬러들은 연두색 비단 위에 올라가면 갈색빛으로 변하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순간 색상이 탁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채도를 인위적으로 높여야 처음 계획했던 색상대로 진행할 수 있다. 자수실만 보면 너무나 강렬한데, 초록빛 비단 위에 올라가면 마치 자신의 빛깔을 내어주는 듯 조금씩 힘을 잃고 진행된다.


아주 작은 향갑 노리개의 오색 파도들을 수놓는데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며 절로 고개를 흔들었던 경험은, 연두빛·초록빛·유록·쑥색 등 여러 녹색 계열 비단들을 애써 못 본 척 지나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초록빛 비단으로 신나는 중이다.

빨간 미니 귀주머니의 뾰족한 모양새가 액운을 쫓는다면 둥근 초록 주머니는 복을 담는다. 작은 복도 허투루 빠져나갈까 싶어 야무지게 닫힌 모양새가 믿음직하다. 주머니 입구의 주름 하나하나도 손으로 잡아 가며 골조를 세운다. 여닫을 때 불편함이 없게 하려는, 만든 사람의 배려다.


오전 시간을 함께한 초록빛 복주머니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흐뭇한 오후를 맞는다.

이 복주머니를 누가 기억해 주면 좋을까.

‘그래, 산타클로스 업무로 크리스마스에 몹시 바쁜 니콜라스 성인께서 우리 초록 복주머니에 은총 담는 일을 잊지 않으시길!’


공방 주인장은 오후에 만날 수강생을 기다리며 커피를 고른다. 그리고 초록빛 복주머니는 빨간 귀주머니 옆, 원래 제자리인 듯 자연스럽게 놓인다.


IMG_7139.jpg 전통 크리스마스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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