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도시 공방 주인장의 로망 작업실
내륙 한가운데 대전에서 주로 작업하는 공방 주인장이라 그런지 "오션뷰 공방"에 대한 강렬한 로망이 있다. 잔바느질에 눈이 피로하고 수 백 번 바늘땀에 어깨도 뻐근할 때 즈음, 고개만 살짝 들면 코발트 블루와 화이트 펄 파도가 눈맛을 시원하게 하고, 다시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덧 핑크뮬리로 번지는 저녁 노을과 빛구슬을 흩뿌려놓은 투명한 윤슬로 하루를 마무리짓는 로맨틱한 오션뷰 작업실을 꿈꾸며 강릉 출장 수업 때마다 바닷가 건물들을 기웃거리곤 한다.
달콤한 눈길로 바라보는 강릉 작업실의 실상은 독하고 아린 맛으로 되돌아 온다.
고급 실크를 주로 다루는 우리 공방 특성상 염분 섞인 바닷 바람은 철천지원수 보듯 해야 하고, 로맨틱한 오션뷰는 찾아온 손님 몫이지, 주인장이 하염없이 바다보고 있으면 수 개월 안에 시뻘겋게 [임대]라고 쓴 볼품없는 A4용지가 내 작업실 간판보다 존재감 드러내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작은 공방 주인장은 끝없이 강릉 작업실을 탐내며 공방에 놓을 강릉 소품들도 미리 만들어 보곤 한다.
강릉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만든 [황금도끼주머니]
도끼주머니 또는 강릉주머니라 불리는 이 주머니는 영동지방에서 자주 보이는 특별한 소품이다. 작은 도끼모양으로 하단은 둥글고 상단은 각지게 접혀 있다. 배의 닻모양을 닮아 바닷가 어부들이 주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거칠고 자비가 없는 바다에서 삶을 낚은 어부들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을 두려워하며 부적을 지니고 다녔다. 간절한 염원은 보기에도 든든한 닻 모양의 주머니에 담겨서 어부들의 마음에 잠시 평온을 가져왔을지 모른다.
바다로 떠나는 어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부인들의 마음은 더욱 간절한 것이라 한 줄 한 줄 긴 바늘땀을 이어서 누비가 새겨진 도끼주머니로 바깥 사람의 무탈한 장수를 기원하기도 했다. 또한 꽃과 잎사귀를 한데 섞어 놓아 소박한 수화문을 자수로 새겨넣은 주머니들도 바다에 시달렸던 주인의 격한 삶을 떠나 박물관 유리 너머로 잠잠히 누워 있다.
황금색 원단을 잘라놓고 작은 금박을 새겼다. 본래의 강릉주머니는 못 누렸을 호사일텐데...... 크리스마스에는 모두가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바다만큼 푸른 유칼립투스와 바다만큼 거친 마끈을 무심히 달아준다. 투명한 윤슬 닮은 파츠가 알알이 박혀 있는 골드체인까지 더한다. 오늘따라 주인장은 황금색에 너무, 너그럽다. 강릉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절로 그리 된다.
손바닥만한 소품을 어디에 두면 좋을까. 작업실 한 켠, 화분에 담겨 있어도 계절을 기억하듯 풀죽은 오렌지나무가 눈에 띄인다. 늦가을, 힘없는 가지에 헐겁게 매달아주면 황금도끼주머니는 커다란 오렌지가 된다. 이 화분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존재라서 살짝 웃어본다.
고급비단은 안전한 내륙땅에 놓아두고 소금기 섞인 바닷 바람에도 튼튼한 모시를 사부작거리며 강릉 작업실을 여전히 꿈꾸고 있다. 황금도끼주머니도 고운 모시 주머니로 모습을 바꿔서 강릉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조선빈티지 주인장은 늦가을 초입에도 강릉의 오션뷰 건물을 두리번 거리고 있다. 눈맛이 시원한 바다와 코끝에 스치는 안목 해변의 커피향을 황금도끼주머니에 담겠다는 의지가 윤슬보다 반짝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