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밑머리에 쌍가락지 하는 거 아닙니다
사극 촬영장의 한복들만 봐도 이 드라마를 찍고 있는 관계자들이 무슨 생각으로 사극을 대하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의 한복이 본견실크 맞춤 한복인지, 아니면 그저 사이즈만 맞춰서 입히는 한복인지, 조연들 소품까지 신경을 썼는지 아닌지…… 현장 소품차에 걸려있는 한복을 휘리릭 둘러보면 대략 이 드라마제작진이 전통 의상이나 소품에 대해 이해하고 작업하는지, ‘대강 사극풍’이면 되는지 가늠하게 된다.
‘이 정도 퀄리티의 한복이믄, 엑스트라 한복인가?’
싶었는데 주연급, 조연급이 갈아입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진짜 배우들이 예쁘니까 방송에서 다 커버가 되는 거지, 내가 입었으면 어느 대가댁 종년인 줄 알았겠다 싶은 옷들도 적지 않다. 행거에 걸려있는 한복들을 눈으로 훑어보고 착잡한 마음은 표정으로 편치 않게 드러난다.
‘한복이 저러면 장신구는 볼 것도 없지.’
자수나 매듭은 한복소품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복의 퀄리티를 넘어서는 한복장신구의 퀄리티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나 2~3초 밖에 나오지 않는 전통소품에 결코 제작비를 쓰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협찬을 얘기하는 많은 PD들을 만난 탓에 예쁜 소품들을 갖고 있어도 절대로 내주지 않으려는 나의 방어력도 날로 더해진다. 같은 일이 반복되니 적은 금액이라도 소품비를 내겠다고 얘기하는 관계자를 만나면 감사한 마음까지 슬그머니 드는 걸 보면 나도 정신줄 많이 놓았다.(단디 해라, 진짜.)
어느 드라마 촬영장.
손대역 촬영 준비가 한참이다. 주연배우와 같은 한복을 입고 같은 소품도 착용한다. 소품팀에서 쌍가락지를 내놓는다. 나는 흠칫한다.
‘아니 땋은머리에 무슨 쌍가락지?’
드라마 촬영 순서까지는 내가 알 수 없어서 이 장면이 주인공 혼례 전인지 후인지 알 수 없지만 빨간 댕기 드리고 쌍가락지를 착용하는 일은 전통에 맞지 않아서 눈에 걸린다. 소품스탭에게 조심스레 말한다.
“담당자님, 쌍가락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왜요?”
우리가 흔히 ‘쌍가락지’라고 말하지만, 본래는 ‘가락지’ 또는 ‘지환’이라고 불린다. 두 개를 한 세트로 착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혼한 유부녀에게 허용된 일이었다. 혼인을 하지 않은 처녀들은 한 개의 가락지만 착용을 했고, 가락지의 절반만 끼운다고 하여 “반지”라고 불린다. 유부녀의 상징인 비녀를 꽂지 않은, 땋은머리에 댕기를 드리운 차림의 아가씨가 쌍가락지를 끼고 수놓는 장면은 전통에 맞지 않는 장면이 된다. 자수 장면은 보통 손이 클로우즈샷으로 찍히니 잘못된 사례를 우리가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품 담당자와 잠깐 불편하더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최대한 친절하게, 너무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상대방의 실수가 아닌 것처럼, 무엇보다 이 모든 언행이 다 내가 오지랖이 넓어서 하는 말로 보여야 한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서로 언짢지 않게 일을 해결할 수 있다. 겨우 ‘쌍가락지’에서 ‘반지’로 오는 것뿐인데, 길이 참 어렵다. 그래도 잘못된 장면으로 영원히 남는 것보다는 잠깐 오지랖 넓은 선생으로 보이는 게 훨씬 낫다고 여긴다. 또 용기 내서 예쁘게 한 마디를 건넨다. 쌍가락지가 귀밑머리와 함께 등장하지 않는 게 오늘 나의 목표다.
“세희야, 이거 안 맞는다.”
소품담당자가 건네준 쌍가락지가 실로실로 언니 손에 맞지 않는다. 보는 순간 진짜 다행이다 싶었다. 이로써 나는 왜 쌍가락지를 하면 안 되는지, 반지와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담당자들 앞에 두고 미니 강의를 하지 않아도 되는, 모두를 단박에 설득시킬 수 있는 사유가 생긴 것이다. 작은 반지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아주 가는 옥지환이었는데 배우들 손이 얇아서 저렇게 작은 가락지를 공용으로 사용한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어린이 반지인줄……) 우리 실로실로 언니도 이렇게 이쁘고 날씬한데, 세상에, 배우들은 얼마나 날씬하면 저 가락지가 손에 맞나 싶을 정도다. 우리 언니가 착용할 수 없으니 주연배우도 쌍가락지를 내려놓았다. 나는 몹시도 흐뭇했지만 안타까워하는 의상팀이 있어서 내색하지 않았다. 주변이 죄다 배우들이니 섣불리 안타까워하는 연기를 하면 티 난다. 가만있는다.
가락지 에피소드는 드라마뿐 아니라 시청자분들께도 말씀드리고 싶었던 이야기다. 요즘 한복 입고 경복궁도 가고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껏 사진 찍는 놀이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명절에도 잘 안 입는 한복을 저렇게 곱게 차려입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전통에 맞지 않는 한복과 장신구들도 적지 않아서 바느질 선생은 광화문의 한복 물결에서 흠짓 놀란다. 특히나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 없는 국적이 묘한 한복을 입히고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장신구를 아무렇지 않게 착용하고 사진 찍는 일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한번 더 고민해봐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아예 안 입는 것보다는 일단 입는 게 낫다.”
故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 선생님 말씀을 위로 삼으면서 아직 젊은 바느질 선생은 작은 잔소리라도 꾸준히 해서 제대로 갖춰 입는 한복과 한복장신구가 되길, 더불어 한복과 관련한 스토리텔링을 전해주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겠다 다짐한다. 일단 사극부터 제대로 찍는 일 먼저! 넷플릭스에 올라타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잘못된 한국의 전통으로 기억되지 않도록 단속하는 일도 열심히 하자. 팔자에도 없는 오지라퍼 바느질 선생이라니, 세상에……
사진출처 : e뮤지엄에서 사진을 참조했습니다
내용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가락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