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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옷가게가 우리 전통을 말할 때

외국 옷가게에 임금의 자리를 내줘도 되는 일인가

 

조선 제일의 법궁 "경복궁의 근정전"  한 나라의 국사가 펼쳐진 곳이다


 어느 패션쇼 하나가 뉴스에 오르내렸다.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는 평가로 뉴스에 등장하면 좋으련만…… 패션계 평가는 별개로 사회면에 오르내리는 일이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패션쇼 뒤풀이로 많은 사람들이 빛과 소음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 외국계 브랜드회사는 행사대행사를 통해 사과했지만 사과의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 과연 명품회사다운 행동거지였는가 의문스럽다.

 사람들은 유명한 명품 브랜드가 우리의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열었다는 점에 환호했지만 전통공예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과연 경복궁을 내줬어야 했는가 의문이 들었다. 다른 궁도 아니고 경복궁의 근정전을! 우리나라 궁에서도 가장 높은 위계를 지녔다 평가하는 법궁을 다른 나라 브랜드에 쉽게 내주는 게 맞는 일인가 하는 점이었다.

 서울은 5대 궁이 한 도시에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특별한 예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궁마다 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부터 법궁으로 사용한 궁과 일반 생활을 하는 궁, 조선 후기의 법궁 역할을 한 궁은 각각의 위계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나 아티스트가 근정전을 사용한다고 해도 깊게 논의해 보고 어렵게 결정해야 하는 일인데, 다른 나라의 옷가게 홍보활동에 우리나라 최고 권위를 지닌 경복궁 근정전 사용을 허락한 일은 매우 부박한 결정이었다. 한국적인 이미지가 필요했다면 법궁이 아닌 다른 궁궐을 내줬어도 될 일이다. 법궁 그 자체의 위엄과 위계를 가볍게 여기는 처신은 정말로 경솔한 일이었다. 한 블록 너머의 종묘에 계신 선조들이 엄중한 국사를 논하는 근정전 앞에 저런 패션쇼가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셨다면 경을 칠 일이다.

 국가기관이 남의 나라 옷가게에 법궁을 내주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걱정이 앞선다.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 훗날 종묘의 신도(神道:왕의 혼령이 다니는 길로 일반 사람들은 밟지도 않는 게 원칙이다)를 패션쇼 런웨이로 쓰겠다고 나서지 않을까 겁이 난다.

 돈 버는 일도 중요하고 명품브랜드와 손잡고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만 손님에게 게스트룸을 내주는 일과 집안 안방과 사당까지 다 내어주는 일은 아주 다른 문제이다. 이 같은 일들은 일반 사가(私家)에서도 하지 않는다.


 신문기사에서는 경복궁에서 명품브랜드가 패션쇼를 한다며 기뻐하는 기사들이 주를 이뤘지만 그들이 제작한 단청프린트 보자기에 대해서 문제 삼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청 전문가가 아니지만 내 눈에도 저 단청문양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보통 단청은 대칭과 비대칭의 조화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데 외국 옷가게가 만든 단청보자기는 단청 흉내를 낼 뿐 기본적인 원리도 이해하지 못한 작업이었다. ‘창작 디자인‘이라는 방패에 숨더라도, 적어도 그 원형 소스가 전통공예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단청장 선생님들께 한 번만이라도 여쭤봤어야 했다. 단청장 선생님께서 보셨다면 저런 문양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혹시나 싶어서 단청장 선생님께서 그 패션쇼에 초대가 되셨나 싶었는데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다. 여러모로 아쉬운 행보다. 나는 단청 전문가가 아니라서 긴 잔소리를 할 수 없지만, 그 보자기에 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있다.


 한국전통을 이야기하면서 보자기 포장은 일본의 후로시키 모티브로 접혀있다. 도대체 어디에 한국전통이 있는지 모르겠다. 단청도 확인 없이 '창작'이라는 명분에 숨고, 보자기는 일본 포장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과연 전통매듭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맺었을까? 수입해 온 매듭술에 금사와 딸기매듭만 더해진 게 아닐까 의문스럽다. 패션쇼 초대장에 사용된 매듭은 '딸기매듭과 간략한 낙지발매듭'으로 보이는데 매듭장식과 술의 비율감은 차치하고 딸기매듭 자체가 행사와 그 쓰임에 맞지 않는다.

 전통매듭은 각각의 뜻을 지니고 있어서 의미와 상황에 맞게 사용된다. 돌아가신 분의 수의에만 쓸 수 있는 매듭이 따로 있고, 가문의 번영을 기원하는 매듭, 자손이 잘 되길 바라는 매듭 등 단순히 모양만 예쁘다고 사용할 수 있는 성질의 공예가 아니다. 그들이 사용한 <딸기매듭>의 딸기문양은 전통적으로 “다산”을 상징한다. 딸기에 콕콕 박혀 있는 수없이 많은 딸기씨들을 '자손번성'으로 이해하는 전통문양 코드이다.(전통회화에서도 같은 상징으로 쓰여서 초충도에서는 산딸기가 자주 등장한다)

 다른 매듭들도 섞어서 사용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굳이 딸기매듭 하나만 사용했을까. 하단에 사용된 약식 낙지발술의 비율감도 맞지 않았는데...... 아마도 추측건대 단청보자기의 강한 컬러감에 맞춰서 무채색 매듭과 포인트로 붉은색을 섞어서 구성한 모양인데, 패션쇼와 "다산"이 무슨 상관인지도 모르겠고, 굳이 전통매듭을 사용하고 싶다면 비율감이나 의미라도 확인을 하고 사용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만드느냐 애쓴 공방도 있을 테니 너무 박하게 얘기하는 건 그만해야겠다)


 명품브랜드라면,

 더구나 한국의 법궁에서 진행하는 행사라면,

 최소한의 우리나라 전통에 대한 이해는 가지고 창작을 해야지 무턱대고 전통이미지만 훔쳐가는 디자인에 무슨 격식이 깃들겠는가. 저런 태도를 가지고 한국 전통을 존중한다는 외국 옷가게 발언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단청장 선생님께도, 전통보자기 선생님께도, 전통매듭 선생님께도 최소한의 확인조차 없이 마음대로 전통이미지만 가져다 소비하는 일은 아주 작은 회사가 했어도 지탄받을 일인데 하물며 명품브랜드를 표방하는 곳에서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전통문화가 여러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일은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은 그저 1회성 이미지를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가 아니다. 시대를 지배하는 철학을 가지고 그 이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려고 애쓰고 고민한 흔적들이 모아져 중요문화재로 남겨졌다. 석굴암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불교 철학의 진수가 담겨 있고 팔만대장경은 당시 현존하는 모든 불교 이론을 글로 남기고자 했던 고려의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조선시대의 성리학 이념은 문인화를 통해 드러나고 구중궁궐의 전문적인 기술과 높은 안목, 사대부가의 고고한 안방문화는 전통규방공예로 이어진다. 과일 따듯 전통이미지만 똑 떼어 자신의 창작물이라 주장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싶다. 생각보다 엄중한 곳이다.

 현대적으로 재창조해야 하는 디자인에 대해서도 시각적인 이미지 이전에 그 작업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갖고 창작을 했으면 좋겠다. 전통의 기본원리도 무시하는 디자인을 굳이 사람들이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나.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끝까지 지키고 싶어 하는 이 시대의 장인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고 전통문화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전통에 관해서는 방송국 관계자들보다 직접 만드는 우리가 더 전문가들이고, 마케팅 회사 직원들보다 우리가 더 많이 안다. 감춰진 일도 한 번쯤은 확인하는 태도, 세상에 드러나는 일이라면 더욱 세심하게 크로스체크하는 조심성은 너무 큰 기대인가. 그저 공방에서 바느질하고 보자기 만드는 조용한 사람들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큰소리 내는 일은 처음부터 없었으면 싶다. 요즘 자꾸 비슷한 일이 잦아서 큰일이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참고자료 : 한국 전통 건축 장식의 비밀 <단청> / 딸기문양 (딸기문 8204 : "문화포털"에서 서비스되는 전통문양 설명을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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