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시뻘건 배냇저고리가 나오면 바느질 선생은 당황한다
"카톡, 카톡, 카카카카카카토토토톡!!!!"
휴대폰이 버겁게 메시지를 토해놓는다. 급한 메시지일까 싶어서 얼른 화면을 열었더니, 예상치 못한 화사한 프랑스자수 배냇저고리들이 줄지어 화면에 떠올랐다. 요란스러운 카톡소리도 이내 끝나고 발송된 이미지들을 손가락으로 휘휘 넘겨 보았다.
레이지데이지 스티치로 아기자기한 꽃송이들이 더미를 이루며 배냇저고리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고, 귀엽게 편집된 십이간지 일러스트 도안은 꽉 찬 기계자수로 하얀 배냇저고리에 브로치처럼 붙여졌다. 고운 사진들 끝에 애정 어린 짧은 글이 보였다.
[선생님, 여기 배냇저고리가 요즘 제일 잘 나간대요. 참고하셔서 선생님도 배냇저고리에 수놓아보세요. 우리도 이제 마케팅에 신경 써서 많이 팔면 좋잖아요.]
수강생 선생님들의 애정 어린 카톡을 무심히 넘길 수 없어서 나는 또 한 번 찬찬히 배냇저고리를 살펴보았다.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자수도 살펴보고, 잘 찍힌 사진 구도도 한 번 더 꼼꼼히 확인하고, 답톡을 썼다.
[샘, 마음 써주셔서 감사해요. 수놓은 배냇저고리가 예쁘네요. 근데 저희 공방에서는 배냇저고리에 수놓는 일은 하지 않아요. 다음 시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공방 매출까지 걱정해 주는 마음 따뜻한 수강생의 카톡에 대답을 하고 나는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배냇저고리에는 수를 놓지 않는 이유는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해야 오해가 없을 것 같다. 카톡으로 남기기에는 할 말이 참 많다. 다음 수업시간에 만나면 얘기해 줘야지.
불과 한 세기 전.
아이 열 명을 낳아도 셋을 건지기 어려운 시절은 그리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58년 개띠 부모님 어린 시절에도 절반의 자식을 품에 안지 못하고 다시 하늘에 내어주는 일들이 많았다. 아기의 생명은 늘 위태로웠다. 언제 잃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사람이 태어나 처음 지어 입히는 옷 - 배냇저고리에는 생명 탄생에 대한 기쁨을 요란하게 담는 옷이 아니었다. 오히려 죽음에 가까운 옷이었다.
이 작은 생명을 내 손에 쥐어주셨는지 아직은 확신할 수가 없어서 겸허히 지켜봐야 하는 '물아기' 옷이었다. 혹시나 아기를 다시 하늘에 내어 주더라도 옷 한 벌은 지어 입혔지, 스스로 마음을 달래주려고 남은 '수의' 원단으로도 배냇저고리를 지어주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부모는 조심스럽게 금줄을 걸고 부정한 것으로부터 아기를 보호해야 했다. 아기를 너무 아끼면 삼신할미의 시기로 오히려 아기를 잃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배냇저고리 역시 소리 소문 없이 지으려고 출산 직전 또는 직후에 지어 입혔다. 비단이 넉넉한 부유한 집안에서도 고운 색상의 배냇저고리를 만들지 않는다. 소청, 광목 등 면포로 하얀 아기 옷을 만든다.
전통적으로 백색은 재앙을 막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갓난쟁이를 잃는 것은 악령 탓이라 여겼던 어머니들은 악령 눈에 아이가 보이지 않게 흰옷을 입혔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면 쉬이 그들 눈에 띄어서 부정탄다고 여겼다. 비단이 흔하고 궁중자수가 일상이었던 구중궁궐에서도 아이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 연한 빛깔의 옷을 입히며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배냇저고리는 여린 생명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배우게 하는 복식이었다.
배냇저고리는 몸을 감싸는 앞길, 뒷길과 소매, 무명실로 만든 옷고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저고리에는 '길, 섶, 깃, 고름, 동정, 소매'로 구성되어 있는데, 배냇저고리에는 깃, 섶이 없다.(유물로 남은 배냇저고리 중 드물게 깃이 남아 있는 옷들이 있지만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이를 의인화해서 배냇저고리를 '눈, 코가 없는 옷'이라고도 불렸다.
깃은 저고리 목둘레를 장식한다. 보통의 저고리에 깃을 얹어 입체적으로 목둘레를 고정시킨다. 살이 닿는 부분이라서 오염을 피하기 위해 하얀 "동정"을 덧댄다. 그러나 목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갓난아기에게 깃은 오히려 살을 짓무르게 할 위험이 높았다. 살갗이 여린 아기를 위해서 깃을 없앴다.
섶은 저고리의 여밈 기능을 위해 저고리 앞길에 달려있다. 말 타는 일이 예삿일이던 시절 펄럭이는 옷을 단단히 여미기 위해서 크고 넓은 섶으로 몸통을 감쌌다. 조선 후기 여성들이 더 이상 말 타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크고 넓은 섶은 실용성을 잃고 작은 조각으로 명맥을 유지하며 한복 저고리에 남았다. 말은커녕 누워만 있는 아기에게 섶은 실용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필요치 않은 구성이었다.
옷이 다 지어진 후에는 고름을 단다. 앞섶을 여미고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보통의 저고리 고름은 폭이 좁은 천을 긴 리본처럼 만들어서 앞섶에 단다. 유물로 남은 배냇저고리에도 어른 저고리와 똑같은 고름을 지은 옷이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무명실을 땋아서 옷고름을 만들었다.
무명실은 돌상에도 올라가는 장수의 상징이다. 실처럼 길게 살라는 어른들의 기원을 담았다. 무명실 몇 가닥을 나누어 머리 땋듯이 이어간다. 끝을 앞길에 연결하고 몸통을 휘돌아서 다시 앞길에서 작은 리본으로 마무리된다. 잔움직임이 많은 어린아이 몸에 옷을 고정시키려고 긴 옷고름이 필요했다. 들썩거리는 몸을 따뜻한 배냇저고리로 감아야 배앓이를 하지 않는다. 배꼽도 여물지 않은 때여서 긴 옷고름으로 아기 몸통을 감싸는 일은 실용적으로도 중요한 일이다. 땋은 무명실이 행여나 어린것의 등에 배길까 염려하여 단단하고 쫑쫑하게 땋지 않는다. 느슨하고 여유 있게 땋아서 바닥과 거의 차이가 없어야 아기가 편안하다. (간혹 유물로 남은 배냇저고리에 무명실이 타래째로 매달려 있는 경우가 있다. 부유한 댁 자손이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배냇저고리로 사용하는 원단에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혼례 때 신부가 받은 함에는 하얀 소창으로 지어진 매듭이 있다. 폐쇄행위인 매듭에 대해 몹시 부정적이었던 옛 어른들은 새로운 삶의 시작인 혼례 때 단단히 묶는 매듭에 매우 예민했다. 함을 감싸는 하얀 소창 매듭은 한 번에 후루룩 풀릴 수 있게 매어서 온다. 앞으로의 삶이 쉬이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매듭이다. 가문에 따라서는 그 하얀 소창을 혼례 때 바닥에 깔기도 했다. 좋은 날, 신부가 흙바닥을 밟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리고 신부는 좋은 날의 기운을 간직한 그 면포를 잘 보관했다가 첫 아이의 배냇저고리에 사용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쁜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하얀 면포가 아기에게도 좋은 기운을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간혹 푸른빛의 배냇저고리를 만들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청색은 입신양명의 상징성이 있다. 이 푸른빛 원단은 명망 높은 어른의 도포를 얻어서 만든 배냇저고리였다. 도포는 우리나라 한복에서 가장 격이 높은 옷 중 하나이다. 사대부가에서는 갓난쟁이가 푸른 도포로 지은 배냇저고리를 입고 예를 갖춰서 인사드린다고 여겼다. 간혹 배냇저고리의 무명실고름에 푸른색 실을 섞어서 엮는 경우도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또한 실용적인 측면에서 어른의 도포는 이미 여러 번 세탁하고 마모된 원단이다. 갓난쟁이의 여린 살결에 닿아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원단을 사용하여 배냇저고리를 만들었던 옛 어른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마음씨 착한 수강생이 예쁘게 수놓인 배냇저고리 사진을 한가득 보내준 에피소드로 배냇저고리에 관한 옛 이야기를 전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마음써준 착한 수강생의 눈을 살며시 살펴봤다. 언짢아 하는 인상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다.
나를 위해서 배냇저고리 사진까지 일부러 찾아준 수강생에게 예의 갖춰서 거절 표현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이었다. 평소보다 어려운 수업시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안마의자에 파라오마냥 절반 누워서 넷플릭스를 켰다. 정신과 몸은 이미 저전력모드로 전환됐고 TV에 나오는 내용은, 뭐, 무엇이 중요하랴 아무생각 없이 멍하게 볼거다. 지난 번에 보다 말았던 드라마 이어보기를 누른다.
[뚜둥! 넷플릭스에 시뻘건 배냇저고리가 나온다]
벌떡 일어나서 다시 보니 아주 부자집 시어머니가 신생아한테 명품바디수트를 입히며 인생의 시작이 다르다느니, 베이비시터를 무시하며 그런 생각으로 사니까 그런 인생 사는거라나 어쨌다나 하며 싹수없는 대사를 찰지게 채워갔다.
'아,나 오늘 어려운 배냇저고리 수업하고 왔는데, 저런 교양없는 부잣집 아줌마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아줌마 그렇게 얘기하면 되게 없어 보여요..... 아줌마......졸부에요?......'
시뻘건 배냇저고리가 드라마에 등장하면 바느질 선생은 당황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남의 나라 명품샵 베이비 바디수트를 배냇저고리라 부르며 애한테 입히는 장면에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걸 보면 더욱 황망하다. 바느질 선생으로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근본없는 배냇저고리를 입히면 부끄럽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질 수 있게, 명품샵의 생각없는 디자인이 배냇저고리라는 말로 이 땅에서 팔리지 않을 때까지 내 자리에서 열심히 일해야겠다.
그렇게 입히면 되게 교양 없는거라고 다들 알 때까지 얘기하는 걸 멈추지 말아야겠다!
시뻘건 배냇저고리라니!!!!!!
사진자료 : 국립민속박물관 '배냇저고리'
참고자료 : 민속조사에 나타난 초생아 옷의 사상 및 상징, 김복자님, 단국대 전통복식연구소 / 전통 배냇저고리의 조형적 특성과 미적가치에 관한 연구, 안귀주, 홍익대학교 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