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마실'을 태우고 날아가는 '빨간 우산'의 꿈
뉴욕에서 은퇴를 하고 나니, 노는 마당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기 살기로 꼭 나가야 했다. 내가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해오던 곳, 맨해튼으로.... 그런데 이제는 맨해튼에서 특별 이벤트나 퍼레이드가 없는 한, 나갈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요즘엔, 맨해튼 한번 나가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차를 가지고 나갈 경우, 내가 사는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벗어나려면, 베라자노 브리지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 브리지를 통과하면서 통과세, 그리고 맨해튼을 터널로 들어가면, 터널 통과세에다 요즘에는 교통혼잡세까지 추가해야 하고, 또 맨해튼에 들어가서는 주차비까지 합치면 얼추 70~80불에서 많게는 100불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주로 스태튼 아일랜드라는 섬 안에서 활동하게 되는데, 만만한 곳이 공원이나 해변가이다. 놀면 뭐 하나. 손에는 카메라나, 아니면 적어도 셀폰을 들고, 보이는 대로 찍으며 돌아다닌다. 그러면, 만나는 미국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왜냐하면,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과는 폼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곳에서 많이 만나는 사람들이 사진작가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큰 카메라를 들고는 '찰칵!' '찰칵!' 찍는다. 그런데 나는, 작은 미러리스 카메라나 셀폰을 김벌에 끼우고 연속해서 영상을 찍거나, 아니면 삼각대에 올려놓고 고정화면으로 오래도록 찍는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동양인이나 유태인들은 대부분 인사말을 잘 건네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인들은 무슨 불법이라도 저지르는 현장을 발각이라도 당한 것인 양, 나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혹시라도 자기가 영상에 찍혀서 무슨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봐 하는 낌새인데, 그들은 하나 같이 낚시를 하고 있다. 그런데 반면에 백인들은 마주치면 반드시 인사말을 건넨다 그리고 어떤 이는 카메라 앞에서 스마일 하면서 손으로 'V'를 보이거나 나에게 물어온다. '뭐 하는 거냐'라고....
조금 더 이야기가 진전되면, 그들은 자기를 먼저 소개한다. 이름이며, 뭐 하는 사람이라는 말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나도 그에 상응해서 나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데, 그럴 때, 나는 '작가'이고 '유튜버'라고 말한다.
내가 나를 작가라고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신문에도 글을 써 왔지만, 특히 브런치에서 작가라고 인정해 주었고, 또 해마다 전자책을 발간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성공한 유튜버라고 까지 하기엔 아직 거시기하지만, 암튼 여러 채널을 운영 중이니, 유튜버인 것도 확실하다.
작가라는 직업과 유튜버란 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가능한 것이고. 그리고 몰입해서 해야 하며, 그 남기는 작품은 이 세상 어딘가에 영원히 남는다. 그리고 유튜브나 글을 보려면 눈이 필요하다. 즉, 소비자가 혼자 그리고 조용히 읽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생산하는 사람의 호흡과 정서와도 맞아떨어진다.
그러면서, 작가이자 유튜버로서 나는 과연 매일 어떤 삶을 살고 있고, 또 어떤 좋은 영향을 주위에 끼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매일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유튜버의 삶과 경험을 다른 이들에게 브런치를 통해서 전달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누구나 손에 그리고 항상 셀폰을 들고 다닌다. 바야흐로 만인 촬영자 시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원한다고 해도, 모두 유튜버가 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도 많고 험하다. 그래서 나 같은 경험자의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동기서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가며, 구독자도 늘려가는 과정 하며, 물론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거기까진 욕심을 안 부리더라도 건전한 취미 생활과 나아가서는, 자기가 이 세상에 왔다 가면서, 남기고 싶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해서, 선한 인플루언서로 글도 쓰고 유튜브도 하며, 다른 이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꿩 먹고, 알 먹고, 영상도 찍고, 글도 쓰고 하는 것이 내가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나의 계획이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