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들고 촬영할 장소를 물색하고, 삼각대, 배터리 등의 장비를 가져다가 모두 설치하고, 막 촬영을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기면 이처럼 난감할 수가 없다. 그 일이란 것이....
화장실에서 나를 부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장비를 죄다 다시 걷어들여야 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뉴욕시가 정신 차리고, 전에 모두 폐쇄했던 공중 화장실을 하나씩 다시 살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다.
어떤 경우에는 자동차에 굳이 휘발유를 넣을 필요가 없었는데도, 뉴저지에서 화장실 때문에 일부러 주유소를 찾은 적이 있었다. 뉴욕에서는 본인이 주유해야 하지만, 뉴저지에서는 반드시 주유소 직원이 넣게 되어 있다. 먼저 화장실 사용이 가능하냐고 물어보고 주유를 부탁했어야 했는데, 그러면 사람이 좀 너무 계산적인 것 같아, 그냥 Nice한 사람처럼 주유를 다 한 후, 물어보았다. 당연히 '그럼요, 당연합니다. 사용하세요. 열쇠를 드릴까요?'라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인도인 종업원은 딱 잡아뗀다.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엉?' '그럼 당신은 어디서 용변을 보는데?'라고 묻고 싶었는데, 일단 거절한 저 녀석과 다투어봤자 끝까지 고집할 것이 뻔했다. 그냥 내가 참고 말지. 그러니까 내가 참아야 하는 것이 갑자기 배가 되는 듯해서 더욱 고통스럽다. 마침 길 건너에도 다른 주유소가 있었는데, 이젠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 만 탱크로 채워달라고 했으니, 거기엔 갈 이유조차 사라졌다. 암튼 이미 실패한 거래에 연연할 수 없었다. 그보다는 시간이 급하니 어서 빨리 다른 방도를 강구하는 것이 먼저다.
이렇게 참기 어려운 처지가 되면, 난 옛 일을 떠올린다. 군대에서 장교 훈련받으며, 하루는 아무 이유도 없이? 전 후보생이 주먹 쥐고 엎드려 뻗쳐하고는 몇 시간 동안 줄빠따를 맞아가며 기압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주먹보다는, 사실 화장실이 급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용납이 안되었다. 일부는 엎드려 뻗쳐 한 자세로 싸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하는데도 그날은 안 봐주었다. 그러면서 구대장님이 때리면서 하시는 말씀이... '마렵기 시작하면서부터 참으면 4 시간은 누구나 참을 수 있다는 것이다. '4 시간이라!' 4 시간이면 웬만한 곳이면 내가 어디든 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또 한 번은 내가 공원에 갔을 때, 갑자기 화장실이 급한데. 화장실 싸인이 전혀 안 보인다. 급하다 못해 인근에 사는 주민 같아 보이는 미국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만. 이 공원에는 원래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억!' 큰일 났다. 그러면서, 그 남자는 나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 남자잖아. 아무도 없을 때, 저기 나무 숲에 들어가서 얼른 해결하면 되잖아!' 나도, 사실은 그런 방법은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써먹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은 해보았는데, 그 남자의 말에 용기를 얻어, 당장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이 지구에 자연 비료를 주며, 일을 보다 보니, 옛날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옛날에 내가 정말로 참담했던 경우로는, 중학생 시절이었던가, 여름 방학에 강원도에 사시는 사촌 누나네 집에 가 있을 때였다. 내가 태어난 시골, 부여에서는, 땅을 파고 아래에 드럼통 같은 것이 묻혀있었고 그 위에 나무판을 깔아 놓은 정도였지만, 그래도 앉아보면 바로 앞에는 신문지가 가즈런히 잘라져 놓여있곤 했었다. 그래서 강원도에서도 그런 신문지 정도는 있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일차 일은 보았는데, '엇!' 없다! 휴지는커녕, 신문지도 없다.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써먹을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해서, 나가지도 못하고, 혼자 머리 싸매고 마냥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화장실 갔다는 내가 돌아오지 않자, 사촌 누나가 나를 찾아 나섰다. '휴~!' 구세주를 만난 듯했다. 휴지가 없어서 못 나간다 했더니만, 누나가 웃으신다. 그리곤 그냥 가 버리신다. 그러면서 내 던지듯 하시는 말이....
'거기 화장실 앞에 깻잎이 자라고 있잖여. 그 깻잎으로 닦으면 되는겨. 비료도 되구....' 해서, 엉거주춤 일어나서 깻잎을 따며...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잎사귀로 마무리를 해 보았다.
다 커서는, 내가 정말로 황당함을 느꼈던 경우로는, 유럽 등 외국에 나갔을 때였다. 그런 곳의 관광지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 가보면, 변기 위에 덮개 자체가 아예 없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엉덩이를 대자니, 더러울 것도 같지만, 그게 문제 아니라 차가운 세라믹이 내 엉덩이를 놀라게 한다.
그랬던 내가, 미국까지 와서, 그것도 뉴욕시내에서 이렇게 자연 비료를 제공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은 사실 아니다. 무슨 얘긴고 하면....
뉴욕 시내에 있는 공원에서 깨끗하게 청소도 잘 되어있는 화장실에 들르는 경우에도, 변기 앞에 서면, 왠지 나는 못 미더워했다. 왜냐하면, 미국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변기에 깔개가 있건없건 오줌이 묻거나 말거나 그냥 갈겨대서, 차마 내 엉덩이를 갖다 대기가 거시기하기 때문이다.
공중 화장실에는 담당 청소부가 자주 청소도 하고, 변기도 잘 닦아놓는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난 좀 꺼림칙해서, 항상 휴지에 물 묻혀가며 닦고는, 휴지를 잘라서 그 변기 위에 깐다. 예전에는 공중 화장실에 일회용 종이 깔개가 준비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웬일인지 그런 일회용 종이 깔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암튼, 난 매번 휴지를 가져다가, 가로와, 세로로 세 군데를 깔개 위에 덮고 나서야 일을 본다. 내가 왜 이렇게 깔끔을 떠냐면...? 그건 아마 우리 엄니 때문일 것이다.
우리 외가댁은 원래 황해도 개성인데, 우리 아버님 쪽의 부여와는 삶의 문화가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우리 엄니가 시집와서 사시는데, 우선 애기의 기저귀에 대한 것부터가 많이 달랐단다. 외가댁에서는 당연히 옷감을 끊어서 애기 기저귀로 사용해 왔는데, 부여의 동네 아낙네들은 기저귀 없이 그냥 키우더란다. 동네 아난네들이 우리 엄니의 그런 행동에 대해 이러쿵 저렇쿵 말이 많았다는데, 암튼, 난 어려서부터 동네 애들과는 다르게 그렇게 깔끔을 떨며 키워진지라, 미국 화장실에서도 일 보기 전에 나 홀로 휴지부터 깔고 궁상을 떨며 그렇게 살고 있는데, 글쎄..., 나만 그러는 것일까?
암튼, 그렇게 인류의 원시 시절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그 파란만장한 화장실에 관한 다채로운 이력을 갖고 있는 몸이지만, 몸이란 것은 원래 간사한 것인가 보다. 비데를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비데 없는 화장실에 앉아보면, 왠지 원시적이고 야만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호사를 누려왔다고, 과거의 옛일들은 깡그리 잊고, 이리도 좋은 환경만 바라는 것인지.... 내참!
그런데, 사실은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은퇴도 했으니, 이제 미국 내에서 차를 끌고 이곳저곳 장거리 여행도 해야겠는데... 그래서 나는 차에서 사용하는 여행용 간이 변기를 장만하고 싶은데... 집사람은 질색팔색이다. 여자는 꿈속에서 살고, 전혀 현실적이지가 않다. 이 남자 혼자, 그 중요한 일에 대해 홀로 걱정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