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 연안의 해변가에서 동트는 영상을 찍기 위해서, 자주 새벽 일찍이 해안가를 찾았다. 단 한 번에 멋진 영상을 찍으면 좋겠지만, 하늘에 그려지는 붉은 하늘이 그렇게 내 마음대로 멋있게 그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 문제다.
구름이 많아도, 또는 구름이 전혀 없어도 붉은 동녘이 그렇게 멋있게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에 걸쳐서 찍고 또 찍어야 했다. 내가 사는 스태튼 아일랜드의 섬에 있는 해변에는 돈 많은 부잣집에 걸쳐있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곳은 접근조차 하면 안 된다. 여기 미국에선 남의 집이나 건물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간, 총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해서 대중에게 공개된 공원에 걸친 해변가만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공원은 아주 넓은데, 그런 곳에 가면, 자주 만나는 것이 있다.
처음엔, 깜짝 놀랐다. 컴컴한데, 갑자기 내 앞을 휙휙 뭔가가 지나갔다. 귀신도 아니고, 개는 아닌 것 같다. 사라진 쪽을 보니, 그쪽도 나를 보고 놀란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개 치고는 좀 큰 개에 해당하는 정도의 크기인데 두 마리나 있었다. 무지 빠른 것을 보니, 늑대일까? 컴컴하니까 가지고 있던 후레시로 불을 비추니, 도망가버리고 말았다.
그 일을 당하고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내가 꼭 갖고 다니는 것이 하나 늘었다. 등산할 때 사용하는 지팡이인데, 일단 유사시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할 듯해서다. 젊었을 시절 검도 한답시고 잡았던 죽도 정도는 안되어도, 암튼 이 나이에도 발휘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내 검도 실력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국립공원의 하나인, Great Kill 공원을 자주 찾았는데, 그 공원에는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어두우니까, 헤드라이트를 켜고 공원에 들어서면, 많이 보이는 동물이 있다. 나는 차를 타고 있고, 그래서 빨리 움직일 수 있고, 또 안전하니까, 이번에는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예전에 뉴저지의 공원에 있는 해변가, Seaside Park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식당에서 홍보를 위해, 어떤 사람이 동물모양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붉은색의 여우 탈이었다. 그 식당 이름도 Red Fox였다. 그때는, '요즘 세상에 여우가 어디 있어? 아마 예전에 이 근처에 여우가 좀 살었었나 보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요즘 자주 들리는 Great Kill 공원에는 갈 때마다, 여러 마리의 여우, 그것도 붉은여우를 만나는 것이다. 어떤 녀석은 방금 잡은 쥐를 물고 어디론가, 아마 자기 새끼들에게 먹여주려고 열심히 종종걸음으로 가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그 공원에선 영상을 찍을 만큼 찍어서 이번엔 그 옆에 있는 다른 공원으로 옮겼다. 공원 이름이 아마 Fox Pond 공원인가, 암튼 연못에 그런 이름을 붙여준 것을 보면, 여기에도 여우들이 많이 사는가 보다.
고운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도 있고, 바비큐 하는 그릴과 테이블도 있고, 운동 시설도 있다. 그런데 집 사람은 바로 집 앞에 있는 골프장 옆에 있는 산책로에서 산책하기를 좋아하는데, 나는 그 산책로보다는 이 공원이 훨씬 더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차를 타고 조금만 움직이면, 여우가 사는 이 멋진 해변가가 더 좋지 않은가?
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 Fox Pond 공원인가에 대해서 소개하느라 열변을 늘어놓았다. 집 사람도 처음 듣는 공원 이름이라고 해서, 난, 거기다 덧붙여서, '그럼 최근에 개발한 새 공원인가 보다'라며, 줄을 더 바짝 당겼다. 드디어 집사람이 모처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공원으로 행차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공원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집사람의 얘기가 점점 틀려지기 시작한다. 처음 와보는 곳이 아니란다. 전에 와본 것 같다는 것이다. 언젠가 아이들하고 왔었나? 그렇담 최근이 아닐 테고, 옛날에....? 드디어 그 공원에 도착했는데....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집 사람은 날 놀리고....
아니, 공원 이름이 적힌 싸인판이... 갑자기 바뀐 것 아닌가?
분명히 나는 Fox Pond라고 보았고, 그래서 집사람에게 Fox Pond 공원이라고 침이 마르게 너스레를 떨었는데, 아니, 갑자가 공원 이름이 Wolf Pond라고 분명히 적혀있다?
집사람이 Wolf Pond 공원이라고 했으면, 진작에 전에 와보았던 공원이었다고 했을 텐데, 내가 Fox Pond 공원이라고 해서, 한 번도 못 가본, 처음 가보는 공원 인가 해서, 왔다는 것이다. 망신도 망신이지만, 난 내가 어떻게 그렇게 단어를 바꾸어서 인식할 수가 있었을까가 더 궁금했다.
Fox와 Wolf가 비슷한 종이라서? 그래도 그렇지... 게다가, 내가 Red Fox를 많이 보다가, Wolf Pond라는 이름을 나도 모르게 Fox Pond로 받아들였나? 그래서....
난 하나 깨달았다. 사람이 어느 하나를 많이 접하면, 다른 정보가 들어와도 종전에 내가 많이 접하던 익숙한 단어로 소화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공원에 가서 나처럼 일찍 오는 노인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통성명을 해보니, 그는 83세의 백인인데, 이름은 John이란다. 그가 나를 사귀며, 나에게 처음 화두를 던진 내용은, '세상이 왜 이리 화합을 못하고 어지럽냐'는 것이다. 좌우로 나뉘어서는 다른 쪽의 말을 들으려고도 안 한다는 것이다. 내도 공감했다. 맞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도 사실 마찬가지다.
그렇게, 이 세상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나라의 국민들이 좌우로 갈라져서, 좌파는 좌파의 이야기만 듣고, 우파는 우파의 이야기만 듣다가, 어떤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그 단어를 자기 나름대로 익숙한 쪽으로 이해, 아니 오해를 한다는 것을....
내가 Wolf를 Fox로 받아들이고 Fox라고 떠들었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 둘러대면 설명이 되려나? (치매가 아니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