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닷가에서

by 빨간 우산

바닷가에서 노인네 4 명이 만났다. 약속을 하고 만난 것은 아니고, 우연히 만나다 보니 4 명이 한 장소에서 모이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노인네인데, 난, 처음엔 러시아 사람인 줄 알았다. 마치 술 취한 러시아인이 떠드는듯한 걸걸한 목소리로 크게 떠들어댔다. 나이가 얼추 나랑 비슷해 보여서,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55살이란다. 그럼 거의 내 아들 뻘인데, 그런데, 어떻게 살았기에 나랑 비슷해 보일꼬? (물론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매일 술독에 빠져서 살았남?


내가 바닷가에 간 것은 유튜브 촬영을 위해서였다. 그것도 아직 깜깜할 때에 도착했다. 바닷가에서 해 뜨는 것을 촬영하기 위해서 갔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바닷가에서 나 홀로 삼각대에 카메라를 걸어놓고 촬영하고 있는데, 그 우즈베키스탄 노인이 맨발에다 그리고 빤스 바람에 손에는 셀폰을 들고 연신 촬영하며 떠들며 나타난 것이다.


알고 보니, 누구랑 영상 통화하며, 바닷가를 보여줘 가며 떠들고 있었다. 그는 내가 삼각대에 걸어놓고 파도치는 바닷가를 마냥 촬영하고 있는 것이 무척 신기했던 모양이다. 내 카메라며, 내 모습이며, 나에겐 양해 한마디 없이 그냥 무작정 들이대고 찍으며 떠들어댔다.


그러다가 자기 셀폰을 나에게 쥐어주며 자기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달란다. 그리곤 그 빤쓰 바람에 느닷없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 아닌가? 아무리 여름이라곤 하지만, 해 뜰 녘이니, 바닷속으로 들어가기엔 무척 추울 텐데.... (괜찮을까...?) 내가 계속 촬영해 주니까, 수영도 하고 온갖 재롱을 다 부려가며... 자기 친구한테 보여주려고 아주 신이 났다.


영어가 무척 서툰 그는 발음도 러시아식 발음인지라, 난 도대체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그의 짧은 영어 단어 실력으로 지껄이는 그의 말을 난 대충 짐작해서 알아들어야만 했다. 그가 통화하는 사람은 카자흐스탄에 있는 사람이라는데, 내가 그의 셀폰 속의 영상을 보니, 의사인 듯 보였다. 그것도 수술실의 복장처럼 보였다. '아들이냐?'라고 물었더니, 그 말은 알아들었는지, 자기 친구란다. 그렇담, 내 앞에 있는 이 노인네도 혹시 의사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차피 영어가 짧은 이 사람이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있을까?



이때 또 다른 사람이 등장했다. 그는 낚싯대를 들고 나타났는데, 그도 역시 노인인데, 중국인처럼 보였다. 한국 사람은 분명 아니다. 겉 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분명 다르다. 복장도 그렇고, 행동 거지 하나하나가 뭔가 다르다. 말 안 해 봐도 그는 한국인은 아니다. 그런데, 말을 해보니...?


겉모습은 중국인처럼 보였지만, 발음은 또 중국인이 아닌 듯도 하다. 중국인들은 그 특유의 억양이 영어에서도 튀어나온다. 그렇담, 동남아의 어느 나라일까? 암튼 그는 그 넓고 넓은 바닷가를 놔두고 하필이면, 우리 둘이 떠들고 있는 곁으로 와서는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이다. 떠드는 소리에다 바닷물에서 풍덩풍덩 수영을 하면 고기가 다 달아나서 잘 안 잡힐 텐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낚시엔 정말 대단한 기술이 있는 가보다. 낚싯대를 드리우자마자 연이어 계속 잡아 올린다. 크기는 남자 손바닥보담 약간 큰 물고기인데, 내가 Blue Fish냐고 물었더니, 토토라고만 한다. 그도 역시 영어는 짧은지라, Blue Fish가 무슨 고기인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 바닷가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주로 Blue Fish가 많은데, 크기는 꼭 남자 팔뚝만 하다. 그러면 그보다는 작으니 다른 종류일 수도 있겠지만, 암튼 영어가 피차 안 통하는 마당에, 더 이상의 깊은 대화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단지 잡을 때마다 축하해 주고 우즈베키스탄 노인네는 연신 그 물고기를 촬영해 가며 자기 친구에게 보여주고....


난 그가 하도 잘 잡길레 도대체 어떤 미끼를 사용하는지를 유심히 보았다. 그는 다른 여늬 낚시꾼들처럼 작은 물고기나, 소고기나 달고기를 사용하지 않고, 갯지렁이를 사용하고 있었다. 가끔 바닷가에서 중국인들이 돌을 들춰가며 뭔가를 찾고 있는 광경을 보았는데, 아마도 낚시를 위한 갯지렁이를 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물고기 풍년에 들떠서 3 명이 부산스레 떠들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마지막 제4의 인물이 등장했다. 그는 우리 4명 중에서 가장 연장자처럼 보였다. 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백인 노인네였다.


그 백인 노인은 방금 욕실을 나온 듯, 욕실 가운을 걸치고 나타났는데, 그도 신발도 안 신은 채 맨발이다. 그가 가운을 확 벗으니, 알몸에 빤스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그래도 우즈베키스탄 노인보다는 행색이 좀 나은 편인 것이 가운은 걸치고 나왔으니까....


그도 그 넓디넓은 바닷가를 놔두고 하필이면 우리 세 노인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곳에 합류를 한 것이다. 백인 노인네이니까, 난, 그래도 그만큼은 영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알았다. 한데, 제일 영어 실력이 없는지, 안 하는 것인지, 우리가 뭐라고 말을 걸어봐도 그는 자기네 나라말로만 떠드는 것이다. 혹시 이태리어인가?


내가 사는 이 스태튼 아일랜드는 이태리계가 절반을 넘는다. 그들의 대부분은 이태리 마피아계의 선조를 두고 있다. 그래서 노인네로 올라갈수록 그들은 막무가내이고 몹시 거칠다. 남의 시선은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왕년의 마피아 조폭의 그런 기질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노인네는 기죽지도 않고 자기네 나라말로만 우리한테 떠들어대는 것이다. 그러자....


우즈베키스탄 노인은 또 자기네 나라말로 떠들고... 남이야 알아듣든 말든, 서로 자기네 나라말로 마치 서로 알아듣고 떠들기나 하는 것처럼.... 남이 보면, 마치 소통 꽤나 잘하는 듯이 보였겠지만, 난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그렇담, 이 두 노인네가 서로 떠드는 중에 한 두 단어만 서로 알아듣는다면? 그 의미를 대충은 파악할 수 있다? 암튼, 한쪽은 이태리어?로, 다른 한쪽은 러시아어로 계속 떠들어대는 것이다. 이 노인장도 빤쓰 바람에 그냥 느닷없이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노인네가 준비 운동도 안 하고, 저러다 심장마비나 안 걸릴런가 은근히 걱정까지 되었다. 그는 아마도 매일 그렇게 바다로 들어가 수영을 해온 듯싶어 보였다. 그런데....


바다에서 나오더니만, 우리 시선은 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앞에서 그 빤스마저도 홀랑 벗는 것 아닌가? '억~!' 난, 그가 바닷가에서 쉬~... 를 하려는 줄 알았다. 누가 마피아 출신 아니랄까 봐....?


그런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그는 벗은 그 빤쓰를 쥐어짜는 것이다. 축축한 것 걸치고 있는 것보담, 맨몸이 더 나을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알몸에 가운만 걸치고 돌아다녔다간, 길에서 여자를 마주치게 되면 영락없는 바바리맨이 되는 것 아닌감? 왜냐하면 그 욕실 가운은 앞에 단추가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4 명의 노인네들이 웃고 떠드는 데에는, 분명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게 무엇일까 나 혼자 생각해 보았더니, 그건 바로 모두 노인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또 다른 이유는 모두 이민자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래서 서로 말은 충분히 통하지 않아도, 피차 공감을 느껴서, 그래서 그 4 명의 노인네들로 하여금 서로 친화력을 높게 해 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망했다. 왜냐하면, 영상에서는 화면도 중요하지만. 오디오가 또한 중요하다. 영상과 함께 녹음되는 오디오의 소리는 매우 중요한데, 어떤 이는 영상보다도 소리가 더 중요하다고도 한다. 이렇게 중요한 오디오에 알아듣지도 못하는 각종 언어와 게다가 짧은 영어 발음이 뒤엉켜, 녹음된 이 소리는 유튜브에선 도저히 사용될 수가 없는 상태임에 분명했다. 그렇다면, 다시 날 잡아서 새롭게 촬영하던가, 아니면, 다른 영상에서 오염되지 않은 소리를 가져와 이 영상에 맞춰가며 편집을 해야 하는데, 그런 종류의 편집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결코 만만힌 작업이 아니다. 그렇담, 차라리 첨부터 다시 찍어야겠다.

바닷가에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끝의 다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