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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Hwang Nov 09. 2015

재능기부가 과연 가능할까?

기부는 '선물' 같아야 한다. 그래서 준다는 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 재능기부


재능기부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열정페이로 불리는 노동력 착취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 재능이 과연 기부가 가능한 대상인지 좀 의심스럽다. 물론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기부라는 단어의 뜻이 '부치다, 보태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받는 이 보다 주는 이의 입장이 강조된 표현이다. 누군가를 도울 때 받는 이에게 '부채감'이 들게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아름다워야 할 기부가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기부는 '선물'과 같아야 한다. 그래야 기부의 본래 취지와 가깝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1930∼2004)의 저서 <주어진 시간(Donner le temps)>에서는 『선물이 존재하려면 어떤 상호 관계, 반환, 교환, 대응 선물, 부채 의식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만약 타인이 내가 그에게 주었던 것을 내게 다시 돌려주거나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거나, 또 반드시 돌려주어야만 한다면, 나와 타인 사이에는 어떤 선물도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고 기술하고 있다. 기부의 본질을 잘못 다루면 우리는 자칫 그 숭고함을 악하게 변질시키기 쉽다. 제대로 기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심성이 필요한 일이다.


전통적인 기부 방식은 기부가 필요한 단체나 개인에게 돈을 주는 것이었다. '돈'은 '화폐' 또는 이에 준하는 교환수단을 의미한다. 화폐는 법률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부여된 힘이 있다. 이른바 '강제통용력'이다. (물론 다른 중요 기능도 있지만) 가치교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화폐'다. 강제통용력은 가치교환을 원활하게 만드는 화폐의 핵심 본질이다. 그 위력이 얼마나 크면, 죽은 자의 목숨의 가치까지도 교환하게 만든다(실제로 목숨과 화폐가 교환될 수 있다는 뜻 보다 예를 들어 사고사 발생 시 가해자와 유족 간의 보상금 합의와 같은 분쟁의 종결로서의 의미로 언급한 것임).


화폐도 일종의 재화로서 그 자체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지폐나 동전이나 모두 일정한 비용이 든다. 얼마 전 10원짜리 동전이 품귀현상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시중에 구리 값이 치솟으니 일반 구리 원료보다 10원짜리 동전을 녹이면 훨씬 더 싼 가격에 구리의 원료를 확보하게 된다. 10원짜리 동전의 화폐 가치가 원자재로서의 구리 가치보다 못한 것이다. 물론 동전을 녹여 재활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런 웃지 못할 사례는 가치교환의 본질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부'는 몇 가지 본질이 지켜져야지만 기부로서의 가치가 있다. 첫 째, 자발성이다. 타율에 의한 강제 기부는 기부의 원래 취지를 퇴색시킨다. 둘 째, 만족도 유지다.  기부받는 자나 주는 자 모두에게 기부 후 따르는 결과의 만족이 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라도 불만족이나 불균형이 생기면 기부로 인해 관계의 파괴를 겪는다. 상처를 남겨서 기부의 지속성이 방해된다. 주는 자는 자발적이어야 하고 그 자발적 발로에 의한 기부의 결과는 받는 자에게 만족이 있어야 하며, 이 결과가 궁극적으로 기부하는 자에게 다시 만족으로 보상되어야 한다.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가치교환 중 가장 어려운 것이 '노동력 교환'이다. 노동력 교환은 단순히 '힘'이란 물리적 작용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숭고한 한 인간의 고민과 고통이란 측정 난해한 인격도 더불어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강제통용력이 부여된 화폐 대신 재능이란 노동력을 기부한다. 여기에는 위에서 말한 기부의 본질적 가치에 큰 차이가 있다. 전통적 기부 방법인 돈(화폐 또는 그 등가물)을 주는 것은  기부받는 자 입장에서  기부받으려는 필요(재화나 노동력 등)를 그 형편과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가 크다. 그 필요의 품질에 대하여 양질인지, 불량인지 기부하는 자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재능기부는 문제가 다르다. (기부하는 자가 사회에 대한 부채감이 이 생겨 행하는 기부이건, 아니면 다른 착한 동기로 유발된 것이든) 기부하는 자가 자발적으로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하면 일단 고마운 일이나 한편 이 '질'에 관한 만족도 문제가 발생한다. 기부하는 재능의 질이 낮거나 그 방향(정확히 기부 의도)이  기부받는 자와 맞지 않는다면  기부받는 자가 이를 거부하거나 보다 나은 질의 제공을 원할 때 기부의 본질적 속성인 자발성이 훼손된다.  기부받는 쪽에서는 기부 결과에 대하여 수정을 요구하기도 미안하고 그래서 다른 차선책을 선택하면 고의가 아닐지라도 자발적인 재능기부자는 받는 자가 자신의 순수한 노력을 거절했다는 사실에  상처받고 더불어 열등감을 느끼게 되어 몹시 힘들어한다. 받는 자 주는 자 모두 이 상황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갈등하며 괴로워한다. 차라리 돈으로 기부하면 만족도에 관한 책임은  기부하는 자가 아닌 받는 자 쪽으로 전환된다. 서로 편하다. 하지만 재능기부는 불만족에 대한 문제 해결 방법에 많은 제약을 안겨다 주고 관계 훼손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성숙한 인간관계를 설정하지 못하면 아니한 만 못한 결과가 발생한다. 매우 힘든 문제다.


돈으로 기부해 왔던 방식이 기부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위험 전가와 부담 책임을 해소할 방안이 재능기부 보다 더 유연하기 때문이다. 선의든 악의든, 유상이든 무상이든 모든 가치교환은 '위험 부담과 해소'란 문제가 발생한다. 재능기부, 주는 쪽 받는 쪽 모두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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