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나의 음악노트 / 고전 / 하이든

4. 하이든 Johann M. Haydn(1732-1809)

by 조세피나

10월의 중순. 날씨는 더없이 좋고, 하늘은 숨이 막힐 것 같이 아름답고 청명한 때이지만,

이제 곧 한해의 마지막으로 향해간다는 바람결의 신호에 쓸쓸한 마음이 드는 때이기도 하다.


가톨릭 성가 27번. ‘이 세상 덧없이’


하이든의 이곡은 2009년 2월 16일 선종하신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장지인 용인묘원에서 추모미사의 입당곡이었다고 한다.


(가사)

1절 - 풀잎 끝에 맺혀진 이슬방울 같이


이 세상의 모든 것 덧없이 지나네


꽃들 피어 시들고 사람은 무덤에


변치 않을 분 홀로 천주뿐이로다


2절 - 출렁이는 바다의 물결 파도같이


한결같지 못함은 사람의 맘이네


어젯날의 우정도 변할 수 있으니


변치 않을 분 홀로 천주뿐이로다.


3절 - 비바람을 비웃는 바윗돌과 같이


주님 사랑 힘차게 지키어 나가세


우리 영혼 보배는 오직 그분이니


흠숭하올 분 홀로 천주뿐이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을 운명’을 타고난다.

한 명 한 명이 소우주이지만, 나약하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하이든은 이 곡을 어떤 마음으로 지었을까?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인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108곡의 교향곡)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많은 교향곡을 남겼고, 이전까지는 명확하지 못했던 교향곡의 형식과 악장의 개수,

각 악장의 성격과 구성에 대한 기준을 세웠다.

그는 소나타 양식을 비롯해 교향곡, 현악 4중주, 합주곡 등 현재까지도 널리 쓰이는 여러 음악 형식을 확립했다.

하이든은 베토벤의 스승이기도 했는데, 베토벤은 하이든을 별로 존경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이든이 작곡을 못해서가 아니라, 베토벤 자신이 스승을 훌쩍 뛰어넘는 출중한 음악가였으니..


어릴 적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인 그를 부모는 불과 6살 때 학교장 겸 합창단 지휘자로 일하던 의붓매제 요한 마티아스 프랑크에게 보내 조기 교육을 받게 하였다.

(말이 음악 교육이지 실제로는 더부살이 신세였다고) 그곳에서 하이든은 성악과 바이올린, 하프시코드 연주법을 배웠고, 성가대에서 보이 소프라노로 활동했다.


하이든은 ‘파파 하이든’이라고도 불렸는데,

그의 온화하고 친근한 성품 때문이었다.

이런 그였지만, 안타깝게도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매우 불행한 정도였다.

아내 마리아는 성격이 드셌고, 낭비벽이 있었며, 남편의 음악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교양저 없었다.

게다가 불임이라서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마리아가 어떤 정도였냐면 하이든의 친필악보를 냄비받침으로 삼거나 심지어 벽난로에 땔감으로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니 아무리 낙천적이고 선한 하이든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둘의 관계는 파탄상태였지만, 그래도 부부의 연은 하이든이 죽을 때까지 법적으로 묶여 있었다.

가톨릭에서는 이혼을 금지하고 있어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하이든은 아무리 아내가 미워도 종교의 가르침을 지켰고, 끝까지 성실히 아내를 부양했다.

- 가톨릭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혼인무효’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런 하이든도 얼마나 싫었으면 마리아를 “지옥에서 온 짐승”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들은 별거를 하며 서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하이든은 가장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은 끝까지 다했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 시작부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마지막에는 ‘하느님을 찬양하라.’라고 적어두었다.

자택에 기도방을 만들어 기도하였고, 작곡이 잘 되지 않을 때마다 묵주기도(Rosarium -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며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께 바치는, 묵주를 돌리며 바치는 기도)했다고 한다.

모짜르트의 천재성과 베토벤의 혁신적인 음악에 비해 그의 음악은 심심하고 별 특색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이런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


청년 성가대 반주를 할 때, 부활 주일의 특송곡으로 하이든의 <천지창조 The Creation>를 연주했는데,

이 작품은 굉장했고 감동적이었다.

종교 작품 중 역작인 천지창조를 지휘하고는 하이든 자신도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근대 시대에 인간의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70이 넘게 산 하이든은 이례적으로 ‘장수’한 작곡가다.

(모짜르트는 하이든의 절반도 살지 못했다.)

당시의 작곡가들은 귀족 혹은 교회에 예속이 되어서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초년에 궁핍을 겪은 하이든은 은인이자 후원자인 에스테르하지 덕분에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헝가리 귀족인 에스테르하지가의 음악가로서 활동하며 비로소 작곡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예술가는 배가 고파야 예술이 나온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술가에게도 생활적인 안정이,

오히려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꼭 필요하다.


인생의 풍파를 겪어내고 노년에 평화를 얻은 하이든의 ‘이 세상 덧없이’를 연주하노라면

음악적으로 성공했고, 생활의 안정과 장수를 누렸어도 마음 한편은 쓸쓸했을 노년의 하이든이 떠오른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어쩌다 아닌 인연과 엮어졌고, 그 질긴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끊어지지도 않았지요.

하지만, 어쩌면 당신은 그래서 더 음악에,

신앙에 충실하셨겠지요..

당신은 당신의 삶을 성실히 잘 사셨습니다.

많은 좋은 작품들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천국에서도 온화한 얼굴로 주님 대전에 천상의 음악을 올려드리고 계시겠지요?

파파 하이든.


- 가톨릭에서 파파는 ‘교황’을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파파 프란치스코, 파파 레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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