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나의 음악노트 / 고전 / 베토벤

6.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by 조세피나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에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1악장과 현악 4중주 13번 중 ‘카바티나’가 레코드에 실려서 태양계를 넘어갔다.

그는 전 우주적인 존재가 되었다.


음악의 성인. ‘악성 베토벤’


베토벤의 초상을 보면 뭔가 심각해 보이고, 웃음기가 전혀 없다.

그는 음악가에게 치명적인 장애인 청각 장애를 후천적으로 겪어서 절망에 빠졌다가, 이를 딛고 위대한 유산을 이루어 낸 ‘기적의 주인공’, ‘인간승리’를 몸소 보여준 위대한 인물이다.

훌륭한 음악가였지만, 까탈스럽고 불같은 성격으로 ‘괴팍한 천재’라고도 불렸다.

베토벤은 선배 작곡가들인 하이든과 모짜르트가 확립한 양식들이 좀 더 깊이 있고 큰 규모를 갖는 작품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


베토벤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클래식 음악은 귀족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베토벤 이전의 음악가들은 평민의 신분으로 궁중이나 귀족을 섬겼고, 그들의 작품들은 귀족들의 공적, 사적 행사를 위한 음악으로 만들어졌다.


베토벤은 매우 혁신적인 인물로 당시에 당연하게 여기던 귀족들을 위한 음악, 귀족들만이 누리는 예술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다수의 대중과 함께하는 예술을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대중을 위한 음악을 지향했다.

또한, 그는 귀족의 후원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재정적인 자립을 추구하려고 노력했던 작곡가였다.

그 시대에는 자신의 연주 및 작곡 능력으로 재정을 유지할 수 있는 작곡가는 매우 드물었다고 한다.

베토벤은 후원자와의 주중 관계를 거부하고, 대중을 위한 자신만의 작품을 과감하게 발표한 음악가였다.


그는 결벽증처럼 손을 집요하게 씻는 버릇이 있었고, 커피를 좋아했는데, 커피를 마실 때는 반드시 한 잔에 60알의 원두를 고집했다고 한다.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베토벤은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가장 가까웠던 귀족 리히노프스키 공작과 다툴 때,

“세상에는 당신 같은 공작은 얼마든지 있으나 베토벤은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요.”했다고 한다.

그가 가진 긍지와 ‘예술자의 자유로운 영혼’이 짐작이 간다.

“저따위가 뭔데? 운 좋게 태어나기나 했지.

나는 내 힘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면서 모짜르트, 베토벤을 듣지 못하거나 모른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바로크 음악인 바흐, 헨델의 음악보다는 고전주의 음악인 모짜르트,베토벤을 먼저 듣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오늘날 전 세계 콘서트홀과 연주회장에서, 생활전선 곳곳에서 베토벤음악이 단골로 연주된다.

베토벤의 음악 중에 BGM, 시그널 뮤직이 꽤 많다.

베토벤 그는 고전주의 시대의 ’거장(Titan)’이라는 별명처럼 그는 칭송을 받는 음악가이며,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예전 초, 중, 고 시절에 학교 종소리가 ‘엘리제를 위하여’의 앞 소절이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지겹도록 들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트럭이 후진할 때도 경고음(?!)으로 ‘엘리제를 위하여’가 띠리띠리 띠리리리리~하고 나왔다.

“빠바바 빠암~ 빠바바 빠암~!”하고 단 몇 마디로 분위기를 바꾸는 그 운명 교향곡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피아노를 제자인 학생이 연주봉사로 한 병원 로비에서 연주회를 한다고 내게 통보를 했다.

연주 레퍼토리를 나와 의논하지 않고 신나게 자서 정했는데, 평소 본인이 좋아하는 크로스 오버 뮤직이 대부분이었고, 클래식 곡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의 느린 2악장이었다.

대중 앞에서 하는 소중한 연주 기회인데, 공부가 될 만한 곡은 하나도 안 하고, 꾀를 부린 쉬운 곡들이라서 선생으로서는 아쉬웠지만, 본인이 그렇게 한다는데.. 내가 뭘 어쩔까?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음에도, 너무 시시하고 쉬운 곡들만을 치는 것이 자들에게 민폐가 되지나 않을지 염려가 되었다.


연주날이 지난 다음 레슨 때 연주 어땠냐고 물었다.

한 어르신이 연주 후에 학생에게 오셔서는

“얘야, 정말 고맙다. 내가 내일 암 수술을 받는데,

네 피아노 연주가 많이 위로가 되었단다.”라고 눈물을 글썽거리셨다고..


나는 꽤 그럴듯한 곡, ‘연주할 만한 곡’을 시키고 싶었는데, 병원의 환자들에게는 레퍼토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 병원에 찾아와 연주를 들려준다는 것이, ‘음악’을 듣게 해 준다는 것이 고맙고 갸륵한 일이었던 것이다.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링거를 꽂고, 병고의 괴로움과 간병의 힘겨움 중에 잠깐의 휴식을 주는 음악 자체가 ‘힐링’이었던 것이다.


이후에 나도 혼자서, 혹은 지인연주자들과 함께 병원로비에서, 암센터 로비에서 연주를 했다.

환자들도 좋아했지만, 간병하느라 지치고 병원생활이 답답할 보호자들이, 피곤해 보이는 직원들이 연주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고, 연주 후에는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다.


뭉클한 순간이었다. 나의 연주가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고 잠시라도 고통을 잊게 한다는 것.

음악이 미소 짓게 하고, 힘을 내게 해 준다는 것이 연주자로서 큰 기쁨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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