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나의 음악노트 / 낭만 / 슈베르트

7. 슈베르트 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by 조세피나

가족이 없는 사람에게 가까운 친구가, 이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평생 결혼하지 않고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외롭게 산 슈베르트에게는 다행히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 친구들과의 연주모임을 조직해 활동한 것이 그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얼마 되지 않던 친구들은 죽을 때까지 그와 가까이 지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이 친구들 중에는 인정받는 예술가들도 많았다.)


사람은 혼자 기거할 수는 있어도, 온전히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다.

생활은 혼자서 하더라도 사회적 교류 없이, 그 누구의 도움이 필요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친구들과 예술 덕분에 슈베르트는 가난의 고통을 잊고, 음악의 기쁨과 예술의 영감을 충분히 즐기며 살아갈 수가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며 ‘가곡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가곡을 작곡한 그는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개척자로 바흐 - 모짜르트 - 베토벤의 계보를 잇는 음악사에서 중요한 음악가이다.


F 장조 장례미사곡, 마왕, 물레 감는 그레첸, 세레나데, 방랑자, 방랑자 환상곡(피아노 곡), 자장가, 피아노 5중주 송어,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 미완성 교향곡, 그레이트 교향곡, 6개의 악흥의 한때, 백조의 노래, 협주곡, 관현악, 실내악곡 등 31세의 짧은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998개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 대다수가 매우 아름다운 선율을 그린다. 지인들의 말로는 그의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멜로디가 솟아 나왔다고 한다.

그의 998곡 중 3분의 2에 가까운 632곡이 가곡이다.(미완성곡 포함)

'가곡의 왕'은 독일가곡(lied)이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 잡게 했다.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들이 쇼팽을 좋아하듯이, 성악 전공자들이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슈베르트는 괴테의 시, 뮐러의 시를 읽고 작곡을 했다.

그는 음악과 함께 시와 문학도 사랑했을 것이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죽기 불과 1년 전에야 피아노를 장만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피아노도 없이 작곡을 했다는 얘기다.

대신에 기타에 남다른 애정이 있던 그는 가곡 대부분을 기타로 작곡했다.

(실은 피아노 살 돈이 없어서 기타로 작곡한 것이었다.)

1827년, 슈베르트는 궁핍과 인정받지 못하는 괴로움 가운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연가곡집 ‘겨울나그네’를 작곡한다.


그는 평소 베토벤의 음악을 흠모했으며 음악가 중에 베토벤을 가장 존경했다.

베토벤이 죽기 1주일 전 그들은 짧은 만남을 가졌다. 바로 1주일 뒤에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자 슈베르트는 크게 슬퍼했고, 베토벤의 관을 운구하는 음악가들 중에 한 명으로 뽑혔다고 한다.

(슈베르트의 생전 바람대로 그는 사후에 그가 그토록 존경하던 베토벤이 묻힌 빈 벨링크 공동묘지 베토벤 바로 옆에 안장된다. )


초상을 보면 그는 늘 작은 안경을 쓰고 있다. 당시 안경은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큰 보청기를 낀 것을 부끄러워하듯, 눈에 장애가 있다는 표시로 웬만해서는 안경을 쓰기를 꺼리는 풍조가 있었다.

그는 이런 시선을 감당해야 할 만큼 시력이 많이 나빴다고 추정이 된다.

근시가 심한 그는 잠잘 때도 안경을 벗지 않았다고 한다.

한 친구가 그 이유를 물으니 ‘꿈꿀 때 꿈이 잘 보여서.’라고 말했다고.

진짜 이유는 자다가도 악상이 문득 떠오르면 바로 일어나서 오선지에 옮기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더듬더듬 안경을 찾느라 낭패를 본 경험이 있어서 그랬을 듯하다.

그는 탈모와 붓기로도 고통을 받았고, 매우 작은 키도 그의 콤플렉스여서 그는 더욱 내성적이 되었다고 한다.


슈베르트는 20대 중반이던 1822년 말에 매독균에 감염이 되었다. (병명은 장티푸스, 식중독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는 자신의 증상이 치료될 수 없음을 알았고, 때 이른 죽음을 예상했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남은 생을 오로지 작곡에만 매달렸다.

현악 4중주 15번 4악장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그가 병고로 고통을 많이 받았을 때 썼는데도 이 작품은 그리 어둡지 않다. 속도감과 힘까지 느껴진다.

마지막 작품이라고 해서 작곡가가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할 수는 없다.

슈베르트도 이 곡이 마지막 작품이 될 줄은 못했을 것이다.

어느 작곡가가 마지막 곡을 작곡하며 이 곡이 마지막으로 쓰는 작품이 될 것임을 알까?

우리 모두가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모르듯이 말이다.


사람이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되면 정말 중요한 일만 하게 된다.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 병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난 이대로도 괜찮다.

난 단지 작곡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슈베르트는 1828년 11월 19일 32세를 2달 남기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영원한 ‘겨울여행’을 떠났다.


‘겨울나그네(겨울여행) D.911’의 이런 밤인사(Gute Nacht)를 남기고.

“난 이방인으로 여기에 왔고 다시 이방인으로 여기를 떠나네.”


가톨릭 신자로서 교회음악에도 기여한 그의 음악이 가톨릭 성가집에 담겨있다.


미사곡 여섯

- 329번부터 336번까지가 슈베르트 미사곡이다.

필자는 이 중에서 미사 시작곡을 가장 좋아한다.


훗날, 장례미사의 입당곡이 이곡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가사)


1절 - 기쁨이 넘쳐 뛸 때 뉘와 함께 나누리


슬픔이 가득할 때 뉘게 하소연하리


영광의 주 우리게 기쁨을 주시오니


서러운 눈물 씻고 주님께 나가리



2절 - 당신이 아니시면 그누가 빛을 주리


인생은 어둠 속에 길 잃고 방황하리


희망의 주 내 삶의 길 인도하시오니


나 언제나 주안에 평화를 누리리



3절 - 부당하온 이 영혼 주앞에 어찌가리


주께서 살피시면 결백함 있을런가


사랑의 주 우리의 뉘우침 굽어보사


불쌍히 여기시어 받아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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