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나의 음악노트 / 낭만 / 슈만

8.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1810-1856)

by 조세피나

학생한테 슈만의 곡을 레슨 할 때, ‘슈만과 클라라’의 스토리를 얘기해 주면서 슈만이 뛰어난 음악가이긴 했지만, '남편으로서는 안 좋은 사람이었다'라고, 클라라가 안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둘의 결혼을 반대했던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 교수의 안목이 맞았다.

슈만은 후대에 이름을 남긴 훌륭한 작곡가이지만,

그는 조증과 울증을 왔다 갔다 하는 ‘양극성 장애’를 지닌 대표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슈만은 우울증과 정신 질환으로 평생 고통받았다.

이런 그의 곁에서 자녀를 내리 8명(1명은 1년 만에 사망)이나 낳아서 키워야 했던 클라라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를 물리치고 소송까지 해서 결혼한 남편이 그랬으니..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은 오묘하고 그들만의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슈만을 클라라의 남편으로 보면 비호감이지만, 음악가로서는 크고 위대한 족적을 남긴 슈만을 살펴보려 한다.

그만이 엮어낸 특별한 음악, 그 작품들의 아름다움은 그의 결함과 장애를 넘어선다.


독일의 음악가, 작곡가, 음악 평론가인 슈만은 멘델스존과 함께 독일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평론과 저술에도 능했던 그는 슈베르트, 쇼팽, 브람스, 베를리오즈 등 다른 음악가들의 이름을 알리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슈만은 브람스가 무명일 때, 브람스의 능력을 알아보고, ‘새로운 길’이라는 제목의 평론을 써서 브람스를 세상에 알렸다.

음악적 재능과 문학적인 재능을 결합해 음악에서 구현하고자 한 슈만은 문학적 관념 위에 음악을 두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음악으로 쓴 시'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곡 시인의 사랑 Op. 48,

헌정(Widmung) Op.25 no.1,

여인의 사랑과 생애 Op.42,

시인의 사랑 Op.48

‘라인’ 교향곡, ‘봄’ 교향곡,

만프레드 서곡, 줄리어스 시저 서곡,

바이올린 소나타 2번 Op. 121, 로망스 Op.94,

피아노 협주곡 Op.54,

나비, 다비드 동맹무곡집, 아베크 변주곡, 환상곡 등의 피아노 곡들.

(슈만은 합창 분야에서만 미숙했을 뿐 가곡과 피아노 등의 기악 작품에서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슈만은 출판업자인 아버지의 능력을 이어받았는지 어릴 때부터 문학적인 재능을 보였고, 음악적인 재능도 있어서 7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곧이어 작곡까지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런 슈만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고 작곡가 카를 마리아 폰 베버에게 보내려고 했지만,

그런 아버지가 1826년 사망했고, 슈만은 집안의 가장역할을 하기 위해 1828년 라이프찌히 대학교의 법학과에 들어간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슈만은 라이프찌히에 와서 피아노 스승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결국 유명한 피아노 교수인 프리드리히 비크의 문하생이 되어 피아노를 배운다.

비크의 딸이 바로 클라라 슈만. 바로 슈만의 아내가 된 이였다.


‘슈만과 클라라’하면 생각나는, 후대에서 보기엔 슈만 덕분에 이름이 알려진 슈만의 부인 클라라이지만,

비크는 클라라와 슈만의 결혼을 결사 반대했다.

슈만과 클라라가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고 할 때 클라라가 겨우 14살이었으니, 아버지로서 당연히 반대할 만했다. 게다가 클라라는 촉망받는 신동 피아니스트였고, 열심히 피아노를 가르치고 애지중지 기른 딸을 빈털터리 같은 슈만에게 보낼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슈만의 여성편력이 심하고 문란했다고 하니 어느 아버지가 결혼을 허락할까?

결국 비크는 슈만을 ‘미성년자 유괴’로 고소하고, 슈만도 스승을 결혼을 못하게 한다고 맞고소를 하는 법정 다툼을 벌인다. 이 법정 다툼은 결국 1840년, 클라라가 성년이 되면서 아버지의 허락 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다. 슈만은 승소했고, 클라라와의 결혼을 겨우 허락받아서 두 사람은 그해 9월 12일에 결혼을 한다.


클라라와 결혼한 1840년, ‘가곡의 해’라 불리는 이 해에 슈만의 대표적인 가곡들이 많이 작곡되었다.

사랑의 기쁨과 사랑이 주는 행복으로 인해 온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고질적인 정신적 문제가 있어서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가 '죄인이고, 형편없는 작곡가'라는 소리가 들렸고, 끔찍한 음악 소리도 머릿속에서 울렸다고 한다.

심해진 우울증과 지휘자로서의 스트레스로 슈만은 1854년 2월, 뒤셀도르프의 라인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지나가던 배가 슈만을 건져서 생명을 지켰지만, 그는 결국 정신병원에 수용이 되었다.

결국 슈만은 1856년 7월 29일, 4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클라라는 슈만 사후에 남은 여생 40년간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피아노 연주회와 슈만 작품 편곡으로 슈만의 음악을 널리 알렸고, 1896년 남편의 옆에 묻혔다.

클라라가 진정한 '사랑의 수호자'였다.



슈만의 피아노 곡 중에 동심을 담은 ‘어린이 정경(Kinderszenen Op.15)’이 있다.

클라라와의 사이에 많은 자녀를 둔 슈만이기에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의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을 표현한 곡일 줄 알았는데, 이 곡은 슈만 자신의 어린이 시절을 회상하며 쓴 곡이라고 한다.

이 곡에는 소제목을 붙였는데, 그중에서 트로이메라이(꿈)가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일 것이다.


필자는 지인들과 함께 연주한 연주회에서 이 곡을 앙코르 곡으로 하려고 정했다가 직전에 취소했다.

익숙한 곡이라서 쉬울 줄 알았는데, 피아노 악보를 편집해서 다른 악기와 트리오로 새롭게 만들어 연주를 하는 것이 단한 일이 아니었다.

원곡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킬 수 있고, 피아노로 너무나 익숙한 곳이라서 다른 악기 소리를 섞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임을 체감했다.

때문에 앙코르 곡 없이 마지막 레퍼토리로 연주회를 마쳤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결정이다.

앙코르 곡이야말로 중요하다. 무슨 일이든 ‘마지막’은 더없이 중요하다.


졸업, 이별, 은퇴, 죽음..

우리 삶에서 ‘마지막’이라는 말이 붙는 일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중요한가?

연주회도 마찬가지다. 앙코르 곡을 양념이나 보너스처럼 가볍게 여기거나 취급하면 안 된다.

관객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소중한 곡으로 잘 준비해서 무대에 올려야 한다.

마지막 곡의 여운이 가장 오래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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