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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피나 Oct 27. 2024

내가 비혼이 된 이유

결혼과 비혼 사이

내가 비혼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많은 젊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20대 중반부터 30대까지는 가장 큰 관심사가 ‘결혼’이었고,

어릴 때부터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던 나는 ‘행복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내 기준의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최소 둘은 낳아서 잘 기르는 것.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의 미래 모습이었다.

그런데.. 결혼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사랑에 눈멀지도 않고(첫눈에 반하거나 누구를 제정신 잃고 좋아하는 일은 나에게는 절대 없다.), 싫어하는 것도 많고(술, 담배, 건전하지 않은 모든 것. 청교도는 아닙니다만..),

필요한 것도 많고(갖춰야 할 것, 있어야 할 것이 많다. 인정.), 취향도 확실한(음식, 위생, 환경보호문제 등에 까다롭다. 이 역시 인정!)

 나는 결혼이 쉽지 않은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나의 신앙생활도 한몫했다.

내가 믿는 종교인 가톨릭에서는 결혼을 ‘남녀 간의 신성한 결합’으로, ‘한쪽이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는’ *종신계약으로 본다.(물론 ‘혼인무효’라는 제도가 있기는 하다.)

20대 중반부터 신앙생활에 빠져들면서 나에게 있어서 결혼은 ‘주님의 부르심(소명)과 뜻(하느님이 맺어주시는 유일무이한 인연)’이라는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결혼은 낭만적, 사회적, 법적인 영역이 아니라, 어느새 믿음의 영역, 영적인 영역, 신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원래도 신중한 편이었지만, 종교적인 가르침과 나름의 자기 해석으로 인해서 결혼이라는 것을 주님의 뜻에 순명하는,

크나 큰 일생일대의 사건으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종신계약*으로 인식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주님 뜻에 안 맞으면(실은 내가 정한 틀에 안 맞으면), 나 좋다고 해도 즉시 거절했고, 이성을 두루 만나고 사귀려 하기보다는 엮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자신을 지키고, 결혼상대가 아닌 엉뚱한 상대로 인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거나, 상처를 입지 않으려는 이 같은 노력은 실로 '한결같은 솔로생활'로 이어졌다.


그렇게 청년시기인 20, 30대가 훌쩍 지나갔다.

40대가 되니, 나는 어느새 '비자발적 독신'이 되어 있었다.

이제 여성스럽고 밝고 빛나는 그런 모습은 사라진 것 같고, 주위에 나를 이성으로 의식하거나 귀찮게 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이점은  좋기도 했다.)

정규직도 아니고, 한 재산 받아서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상속녀도 아니기에,

앞으로의 나의 미래가, 중년 이후의 독신의 삶이 걱정되고 막막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고 이런 문제가 없까?

결혼했기에 남편과의 문제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이들은 내게 문제를 호소하며, 오히려 나를 부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삶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항상 문제는 있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에게 녹록지 않은 것이다..

 

만 40세가 넘으면서 결심한 것이 세 가지가 있다.

후회하 않고, 미련을 갖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고 살아갈 것.

결혼 안 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아이 없는 것에 미련을 갖지 않고, 비혼 혹은 독신의 삶을 아쉬워하지 않고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자유’를 느꼈다..


그동안 왜 그렇게 결혼문제로 나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했을까?

왜 결혼을 필히 해결해야 할 ‘나의 문제’라고 여겼을까?

왜 꼭 ‘남들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결혼을 안 한?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결혼을 손해 봐서는 안 되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세속정신 투철하게 남들처럼, 아니 남들보다 더 잘 살려고 하나의 ‘인생목표’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나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완벽한 짝을 만나길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못하는 것(수학, 과학, 기계조작 등)을 잘하면서 내가 잘하는 것(음악, 언어, 아이들 사랑)을 높이 여겨주는 그런 사람을 원했다.

내가 예민하고 민감하니 상대는 성격 무난하고 인품 좋은, 게다가 학벌과 경제력도 좋고, 신앙까지 좋은 완벽한 사람을 바랐으니..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려웠고,  인연이 닿질 않았다.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과 한 짝이 되려면,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철이 없었던 거지..ㅠㅠ


그래서 나는 비혼이 되었다. 그래도 후회하지도, 미련 갖지도, 아쉽지도 않다.

나를 좋아해 준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상대는 아니었고, 결혼은 늘 나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3,4위쯤 됐으려나? 1순위여야 결혼을 했을 것이다.

내가 억지로 나이에 밀려 결혼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주님의 보호하심’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런데 나에게 신앙이, 음악이, 학생들과 아이들이 없었다면 과연 이 비혼생활이 지금처럼 행복했을까?

아마도 행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나를 나답게 하고, 성장시키고, 내게 행복과 기쁨을 끊임없이 가져다주었다.

앞으로 계속 비혼으로 살 지, 아예 ‘불혼’이 될지, 혹시 기적적으로 늦게라고 결혼을 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세 가지의 보물은 꼭 지키고 끝까지 내 곁에 둘 것이다.

 

신앙, 음악과 예술, 다음 세대인 청소년들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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