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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세피나 Oct 27. 2024

비혼이 어때서

실로 난감한 사건 - 비혼이라도 괜찮아

화장실을 다른 곳으로 갈 걸 그랬었나?

생각지도 않게 성당 화장실에서 그 자매님을 만난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해서 되돌아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평일 오후 단체 모임인 끝난 후에 성당의 화장실에 들렀다가 ‘그분’을 만났다.

 

대략 10~20년? 정도 전에 뵈었던 분 같은데..

워낙 사람들을 잘 못 알아보고, 안 쳐다보고 다니는 나여서 그분이 나를 어떻게 아시는지, 전에 나와 얘기라도 나눠본 사이인지는 모르겠다.

7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한 노년의 자매님이 화장실에서 나와 마주치시고 대뜸 내게 하신 말씀.

 

“결혼할 때 됐지?”

‘헐. 나를 두고 그런 말씀을..’ 슬며시 웃음이 나려 한다.

“저 비혼인데요.”

내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뭐?? 아니~피아노도 잘 치고 얼굴도 예쁜데!”

‘내가 피아노 치는 것은 언제 보셨지? 근데 이 나이에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것은 기분 좋네~

“키도 크고~!”

‘이건 아니지요. 이 키가 큰 키라니요.’

 

나는 더 이상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난감해하는 내게 한방을 날리신다.

“우리나라 어떡하라고!

‘참 나. 내가 저출생 문제의 책임자인가?’

잘못 걸렸다.

‘이 할머니 선 넘네.’

“집에 딸이 몇이야?”

‘왜 갑자기 호구조사? 대답하지 말자!’

“우리 딸이 결혼했는데 나에게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딸은 꼭 있어야 해.

나 닮은 딸 낳으면 얼마나 좋아?”

자랑과 훈계가 이어진다. 더 붙들리면 안 되겠다.

억지웃음을 짓고는 화장실을 빨리 빠져나왔다.

 

순식간에 당한 ‘공격’이었다.

40이 넘은 후로는 누가 물으면 ‘비혼’이라고 했다.

그래야 후속 질문, 예를 들면 왜 아직 결혼 안 했느냐? 어떤 남자를 좋아하느냐?

누구 소개해줄까? 등등 원치 않는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혼’이라고 하면 ‘이 사람이 결혼할 의사가 없구나.’라고 대부분의 (괜찮은) 사람들은 이해를 했고,

더 이상은 그런 난처한 질문은 안 했기에 ‘비혼입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 자매님에게는 안 통했다.

 

나는 왜 무례한 말에 반격을 못했을까?

그 나이 정도되신 분들은 결혼과 가족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시다는 것.

특히 평생 사회경험이 없이 자녀에게 헌신하시고 살아오신 분들은 가정에서의 역할이 자신의 삶 자체이고, 직업이고, 모든 것이니 그럴 것이다.

내게 무척 무례하게 하신 것을 본인은 모를 것이다..

 

거기에다가 내가 뭐라고 토라도 달고, 나 자신을 방어하는 말을 했더라면,

예를 들어, “제게 왜 그러시죠?”  “비혼이 어때서요?”

“왜 가깝지도 않은 사이인데 사적인 것을 물으시죠?” 했다면 뻔하다.

“저래서 시집을 못 갔지, 노처녀 성질 대단하네~”

라며 나를 모욕하는 말을 줄줄이 후속 생산했을 것이다.

안 하길 잘했다. 잘했어. 컴 다운.

 

그나마 내가 성을 내거나 날카롭지 않게 웃으며 반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내 나이가 몇인데 나 보고 예쁘대~ 게다가 키도 크대~’

이건 정말 오랜만에 듣는 기분 좋은 칭찬이다. ^^

오늘 입은 옷이 키가 커 보이나 보다. 앞으로 애용하자!

 

별안간 화장실에서 만난 어떤 분 때문에 당근 받고 한방 맞은 날이었다.

‘비혼’이라고 얘기했다가 어처구니없는 말폭탄을 맞다니!

뒤에 들은 얘기가 아니라 앞에 들은 얘기를 기억하자.

 

결혼할 때 됐지? -> 나를 30대로 보신 것?! (우하하^^)

예쁘다고? -> 리얼리? (ㅎㅎ)

키가 크다고요? -> 설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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