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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코 Nov 28. 2021

강가에서

여행에 대한 에세이


그 해 가을은 지독히도 추웠다.


바람은 차갑다 못해 살을 에이고 지나갔으며, 낙엽은 칼날처럼 머리 위로 떨어지고는 했다. 바깥의 위험을 감당할 수 없어 방 안에 들어오면, 실내의 탁한 공기가 숨을 막히게 했다. 일상생활의 영위는 고사하고 생존이 걱정된 나는 떠나야만 했다. 무턱대고 휴가를 냈다. 만사에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기에 이런 상황 자체가 불편할 뿐더러, 갑작스러운 휴가 제출로 인해 따가운 눈총을 받을 터였고, 업무는 혼돈에 빠지게 될 터였지만 상관 없었다. 일단 살고 봐야 했기 때문이다.


급하게 휴가를 낸 만큼 혼자 훌쩍 떠나게 될 터였다.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기에, 휴가를 이틀밖에 낼 수 없었다. 이틀이란 시간은 참으로 짧은 시간이라, 많은 제약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집에서 멀리 있는 지역들이 지워졌다. 사람들에 지쳐있었던 시절이라, 최대한 사람들이 없고 조용한 곳을 가고 싶었다. 그런 곳이 어떤 곳이 있을까 고민하다, 어떤 곳이 생각났다. 먼 옛날 어느 블로그에서 보고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접어두었던 곳이었다. 맑게 흐르는 물줄기 근처로 도보 코스가 조성되었던 곳. 강원도 동강변의 어떤 곳이었다. 많은 고민은 필요 없었다. 어디든 일단 떠나야만 했으니깐 말이다.


그 다음날 바로 떠났다. 사람이 정말 힘들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한참 늦잠을 잔 후, 겨우 챙겨서 길을 나섰다. 모든 사람들이 바삐 일하고 있을 어느 평일, 서울을 벗어나 강원도의 고속도로를 달려 시골길을 따라가니 점점 차들과 사람들이 없어졌다. 2시간 반 가량 운전을 했을까, 산 속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레킹 코스로 향했다. 눈 앞에 강이 펼쳐졌다. 자연 속을 흐르는 강이었고, 물빛은 투명했으며, 또 예쁜 강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느 날처럼 무식하게 넓기만 하고 수질은 더러운데다가 좌우로 콘크리트 빌딩이 도열되어 있는 한강을 보다가 이런 모습의 강을 보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평안하게 흐르는 강 위를 지나는 다리를 건너고, 시골 마을의 골목길들을 지나, 트레킹 코스의 방문객 센터로 향했다.


'지금 가시려구요?' 방문객 센터의 직원 분이 물어보았다 .오후 3시도 넘은 시간이었고, 트래킹 코스는 꽤나 길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코스의 지도를 살펴 보았다. 언덕길을 조금 타다가 내려간 후, 강가로 조성된 산책로를 하염없이 걷다가 다시 다른 언덕을 탄 후 종착점을 찍고 돌아오는 코스였다. 끝까지 갈 수 있다면 참 좋았겠으나 해가 지기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멀리까지 가지는 못할 것이었다. 중간 지점쯤에서 원점으로 회귀하기로 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강원도의 맑은 공기를 듬뿍 들이마시며 나무들이 울창하게 좌우로 나있는 언덕길을 걷자니, 가을이 덜 위협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찬 바람이 불었으나 살을 에일 것 같지는 않았고, 낙엽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칼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으로 고요한 시간이었다. 내가 마주친 사람이라곤 부부처럼 보이는 한 쌍 뿐이었고 그 외에는 단 한명의 사람을 보지 못했다. 위협적인 소음들과 자극들로 가득찼던 일상에서 도피하여 이렇게 고요한 산길을 걷고 있자니, 얼어버릴 것만 같았던 추위가 조금씩 덜해지기 시작했다.


언덕길을 올랐다 또 내려가자 강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 그대로의 강이었고, 강가 또한 누군가가 파헤치거나 포장한 것이 아닌 온전한 강가였다.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길을 조금 걷다가, 강가로 발을 들였다. 자연 상태의 강가를 걸어본다는 것은 참 드문 경험이었다. 사람이 한명도 없는 강가를 걸어본다는 것은 더더욱 드문 경험이었다. 그렇게 길에서 벗어나서 강가를 조금 걷다가, 이끌리듯 어느 지점으로 가게 되었다. 너른 바위가 있는 곳이었다. 그 바위 위에 앉아, 흐르는 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소리와 바람소리, 바람이 스쳐가며 나는 수풀 소리가 들리고, 수면을 뚫고 나온 돌들에 앉아 있는 백로 몇 마리가 보였다. 물줄기는 아름답고도 조용하게 흘러갔다. 그 흐름에 가만히 집중해 보았다. 아무도 없는 강원도의 강가에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그 흐름을 쳐다보며 나를 괴롭히던 온갖 잡념들과 번뇌들을 흘려보내 보았다.


똑같은 환경 속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쓰고 있다면 똑같은 생각들과 똑같은 감정에 갇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은 흘러가지 못하게 붙잡는 것들 투성이다. 그것이 바쁜 일과가 되었건, 추억이나 아픔이 묻어있는 생활 공간이 되었건, 일상의 루틴이 되었건 말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환경과 시간에 즉각적인 변화를 준다. 우리를 속박하던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뿐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환경과 경험으로 시간을 가득 채우는 행위가 여행이니 말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괴롭히는 수많은 것들을 흘러가게 할 수 있다.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그것을 떠올렸다. 달갑지 않은 상황의 전개가 있었고, 그 당시의 나는 마음이 새까맣게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새까맣게 타오른 마음 위에는 온갖 잡넘들과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쳐 이성적인 판단과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그 잡념들과 감정을 사그러트려야 하는데, 일상의 수많은 것들이 파편처럼 날아와서는 다시금 마음을 혼란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은듯한 나날들을 보내고 난 후, 나는 그 강가까지 찾아가서는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진정한 평화였던가.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일상의 파편들은 흔적조차 없었고, 온전한 고요만이 그 공간을 지배했다.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이 혼탁한 잡념들과 독버섯같은 감정들—원망, 집착, 회한, 자기연민 같은 것들—을 씻어내주는 것만 같았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렇게 내 눈을 가리고 귀를 막던 것들을 벗겨내고 나니, 내 마음이 선명하게 보였다.


흘러감은 정화이다. 더러운 것들을 흘려보냄으로써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여행도 정화이다. 여행을 통해 일상의 속박들을 흘러가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를 정화하는 셈이다. 악취가 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씻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주기적으로 우리를 정화해야 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여행은 필수불가결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을 통해 정화를 하고 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일상 속에서는 전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 더 정확히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들과 느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력이 되기도 하고, 인생의 방향성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렇기에 여행은 귀하고 의미있는 것이다.


아! 그러나 여행은 끝나야만 한다. 여행이 가진 모든 특별함들과 매혹적인 요소들은 여행이 끝남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며 여행을 바라고 또 어떨 때는 갈망하지만, 정작 모든 여행은 끝나야만 한다. 끝나지 않고 계속 머물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 일상이 되므로. 일상의 대척점에 있는 여행이 일상이 되는 순간 여행의 매력과 효과들은 그 가치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끝남으로써 진정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들이 있다. 봄날의 꽃이 그렇다. 사시사철 피어있고 살아있는 꽃이라면 나뭇잎과 별다르지 않을 것이므로, 꽃은 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밟힘으로써 애틋해지고 소중해진다. 좋은 시절이 그렇다. 지나가지 않는다면 좋은 시절이었노라 그리워할 수 없을 것임으로, 좋은 시절은 지나감으로써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꿈 같은 인연도 끝나야만 한다. 깨지 않는다면 그것은 꿈이 아닐 것이므로, 꿈 같은 인연은 부셔짐으로써 완성된다. 어쩌면 꿈 같다는 표현에는 그 끝에 대한 복선이 이미 깔려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이 있음에 낙담할 필요는 없다. 끝남은 우리에게 슬픔이라는 겨울을 주지만, 또 다른 시작이라는 약속의 씨앗을 심어놓고 간다. 좋은 시절은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그렇기에 또 다른 좋은 시절이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꿈 같은 인연은 끝나기 마련이지만 그렇기에 또 다른 인연이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겨울 없이 찾아오는 봄이 없다. 겨울이 있기에 봄도 있다. 끝남이 주는 겨울 속에서 한낱 인간은 덜덜 떨기 바쁘지만 겨울이 깊어갈수록 봄도 그만큼 가까워 오는 것이다. 얼어붙은 땅 속과 말라붙은 나뭇가지 안에 만발한 봄의 약속이 숨겨져 있듯이, 하나의 끝 속에는 또 다른 시작의 약속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겨울의 한창에서 봄을 기대하며 추위를 버티듯이, 또 다른 시작을 기대하며 끝남의 공허함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다.


여행이 끝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다음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여행은 우리가 끝나기를 아쉬워하지 마지 않는 그 여행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채색해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떠날 수 있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


햇볕을 오래 쬐고 있자니 조금 더웠다. 낙엽들은 이미 많이 떨어져서 위협적이지 않았다. 어느 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고, 배가 고파졌다. 한참을 강가에 앉아 있던 나는, 밥을 먹기 위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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