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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코 Jul 15. 2021

인생의 만원짜리 일들에 대하여

가치의 우선순위에 대한 생각

수년전의 일이었다. 지금도 썩 잘났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지금보다 훨씬 미성숙했고 생각도 더 짧았던 시절의 일이다. 여행을 좋아라했던 나는 대만에 가고싶어서 대만행 비행기표를 국내 모 여행사를 통해 예약했었다. 그러다가 일정에 변동이 있어서 비행기표를 취소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취소 수수료에 대한 규정이 있었는데, 이 부분이 모호하게 적혀있던 것이 문제였다. 나는 당연히 전액 환불을 받을 줄 알았었는데, 취소 수수료 만원을 제외한 금액이 환불되었다. 착오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다. 그 고객센터 직원분은 신상정보와 예약정보를 확인해보더니 만원이 제외되는 것이 맞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또 이러이러하게 적혀있는데 이게 이러이러한 내용 아니냐, 그러니까 취소 수수료가 부과되면 안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물어보았는데, 그 직원분은 이건 당연히 취소 수수료가 부과되는 내용이다라고 설명을 해주셨는데, 하필이면 '이런걸 잘못 이해하시는걸 이해할 수 없다'라는 투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취소 수수료가 부과된 것도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직원분의 그런 태도에 화가 났던 나는 전화기에다 대고 강력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직원분도 아차 싶으셨던지 사과를 하셨는데, 감정이 꽤나 상했던 나는 여러번이나 실랑이를 했다. 그리고 나서는 나는 만원을 꼭 받아내야겠으니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그 직원분은 자기가 확인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수 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와서, 자기가 관련 부서와 다시 확인을 해봤는데 취소 수수료를 면제해드리기가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자기가 섣불리 이야기한 것은 너무 죄송하다고 재차 이야기했다. 이쯤되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알겠다고 하고 전화기를 끊었다. 이 모든 과정에 걸린 시간은 30분이 넘었다.


전화기를 끊자, 허탈함이 몰려왔다.


만원, 참 애매한 금액이다. 땅을 파도 만원이 안 나오고, 푼돈이라고 할 수는 없는 돈이다. 하지만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돈도 아니다. 예를 들어 천원이나 백만원이었다면 판단이 쉽다. 천원은 푼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백만원은 많은 돈이다. 하지만 만원은 보통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금액이다. 일상에서 의미있는 차이를 만들어낼만큼 큰 돈은 아니다. 하지만 쿨하게 퉁치지도 못하는 금액이기도 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만원을 벌겠다고 30분이 넘는 내 인생의 시간을 투입해서 격한 감정소모를 감수했던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 시간 동안 업무에 매진했다면 나는 만원보다 훨씬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했을 것이다. 그 시간동안 놀았다면? 나는 만원보다 더 가치있는 재미를 얻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소중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면? 나는 분명히 만원보다 더 많은 만족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잠을 더 잤다면? 30분의 숙면을 더 취할 수 있었다면 그건 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만원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해줄 일들은 넘쳐났다. 나는 고작 만원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던 것이다. 결국 그 만원을 얻지도 못했고 말이다.


만원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잠깐 동안 마음이 쓰릴 것이다. 하지만 그 속쓰림이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갈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만원의 가치란 그런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고, 그것보다 가치가 많은 일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섣불리 내려놓지 못하거나 집착하고 있는 일들. 이런 것들을 그 날 이후로 나는 만원짜리 일이라고 칭하고는 했다. 우리 인생에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유한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만원짜리 일에 집중한다는 것은 더 안타까운 일이 된다. 만원짜리 일에 집중하게 된다면 그만큼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안 똑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추구할 수 있는 백만원 짜리 일이 있었다면 어떨까? 이 백만원은 고스란히 기회비용이 된다. 지나간 시간과 소비된 에너지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기회비용까지 생각하게 된다면 그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얻은 결과는 만원이 아니라 -99만원이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위해 열심히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그 결과가 사실상 손해인 것이라면, 이만큼 허탈한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만원짜리 일들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위처럼 생각해보면 이것은 정말로 중대한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본질적 가치와 인식되는 가치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누가 봐도 만원짜리 일인 경우 이것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판단하는 어떤 일의 가치와 그것의 본질적 가치는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백만원짜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만원짜리일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로, 내가 만원짜리라고 생각했는데 백만원짜리일수도 있다. 이 경우 나의 판단으로 내린 가치평가는 완전히 틀린 것이 되고, 나의 시간과 노력 또한 헛되게 쓰였거나 올바르게 쓰일 수 있었는데 쓰이지 못한 것이 된다.


심지어 '만원'이라는 것은 정량화된 가치의 양이다. 비행기 티켓 취소 수수료처럼 무언가 이렇게 정량화, 수치화된 가치가 있다면 가치 판단은 훨씬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일들에서 가치란 정량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어딘가로 여행을 갈 것인가? 여행 비용은 수치화되겠지만, 그 여행이 가지는 가치는 수치화될 수 없다. 어딘가로 이직을 생각하고 있는가? 연봉은 수치화되겠지만, 연봉 이외의 가치들, 예를 들어 이 회사의 문화라던지 회사 분위기라던지 회사에서의 내 성장 가능성 등등은 수치화될 수 없거나 극히 힘들다. 누군가와 결혼을 할 것인가? 그 사람의 물질적 조건들과 결혼 비용은 수치화되겠지만, 정말 중요한 정성적 가치들, 예를 들어 이 사람의 성품이라던지 성향이라던지, 가치관이라던지, 이런 것들은 수치화될 수 없다. 이에 더해 사랑, 가족, 우정, 건강, 낭만, 정의, 신념...이런 것들의 가치를 도대체 어떻게 정량화할 수 있겠는가. 의사결정에 있어 우리는 주로 정량화된 수치에 집중하지만,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들은 정성적인 것들이 대부분으로 수치화될 수 없으며, 이는 판단을 더더욱 힘들게 한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면, 인생의 다양한 의사결정들--업무 관련이건, 인간관계 관련이건, 진로 관련이건, 인생의 중대한 관련이건,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결정이건 간에--을 내릴 때 결국 두 가지 중 하나의 방식을 택하게 된다.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되는대로 결정하거나, 인생의 다양한 사안들과 서로 다른 가치들의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고 나름의 가중치를 부여하거나.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정답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성향상 후자처럼 살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 최대한 의미있게 그것을 사용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내가 오늘 쫓고 있는 것은 얼마짜리인가? 

내가 붙잡고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 만원짜리가 아닌가?

내가 오늘 놓치고 있는 것은 얼마짜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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