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셉코 May 05. 2023

데뷔 타석부터 홈런을 칠 수 없다.

성공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에 대하여

홈런은 야구의 꽃이다. 홈런 한 방이면 점수가 1-4점까지 나온다. 경기의 흐름을 한 방에 바꿀 수 있고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다. 팬들은 모두 홈런을 기대한다. 홈런을 잘 치는 선수들은 높은 몸값을 받고, 그런 홈런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좋은 투수들은 또 높은 몸값을 받는다. 조금 비약해서 말하자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홈런을 중심으로 짜여있다고 생각해 볼수도 있겠다.


그러나 야구 선수들이 처음부터 홈런을 칠 수 있는 확률은 희박하다. 조사해본 결과, 메이저리그에 한 번이라도 출전해본 선수들이 20,000명이 조금 넘는데,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때린 선수는 역대로 133명이라고 한다. (2023년 5월 4일 기준) 메이저리그 역사가 1876년부터라고 따져보면, 1년에 한 번도 안 나온다는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투수들도 타석에 한 번쯤은 들어선다는 것을 고려해서 20,000명의 선수들이 한 번씩은 타석에 들어섰다고 너그럽게 가정해보면, 전체의 불과 0.7% 정도가 데뷔 타석에서 홈런을 때린다는 이야기다. 메이저리그는 세계 최고의 야구 리그이고, 어렸을 때부터 야구에 특출난 자질이 있었던 사람들만이 메이저리그에 한 번이라도 설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모양이다.


왜 그럴까? 일단 확률적으로 홈런이 나오는 것이 드문 일이다. 현실은 대다수의 타자들은 한 시즌에 10홈런을 치기도 힘들다. 20홈런을 넘기면 중심 타선에 들어설 수 있다. 30홈런을 넘기면 강타자로 평가된다. 40홈런을 넘기면 그 해의 MVP 후보에 들어간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첫 타석부터 홈런을 때릴 확률이 낮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홈런을 잘 치려면 실전에서 타격감을 가다듬어야 한다. 이것은 연습으로, 근력운동과 체력단련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중들이 가득 들어차고, 타석 하나하나가 냉철하게 평가되고, 내 활약 여부에 따라 팀의 승리가 좌우되고, 내 누적 성적에 따라 내 커리어가 결정되는, 혹독한 실전에서의 타격 경험이 늘어나야 타격감도 찾는다. 리그 수위급 타자도 부상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실전을 떠났다가 복귀하면 바로 예전 폼을 찾기 힘들다. 실전에서 감각을 가다듬어야 홈런도 치기 시작할 수 있다. 상호간의 조건이 동등하다고 해도 한 방에 홈런을 때리기가 힘들 텐데, 실전에서 얼마가 되었건 경험을 누적해온 상대 투수에 맞서서 데뷔 타석부터 홈런을 친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래서 데뷔 타석부터 홈런을 치는 것은 확률적으로 매우 낮은 일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홈런을 치기 시작하려면 실전에서 수많은 아웃을 당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엉뚱한 공에 헛스윙 삼진을 당할 수도 있다. 좋았던 공을 눈 뜨고 놓칠 수도 있다. 회심의 한 방을 휘둘렀는데 땅볼이나 플라이로 물러날 수 있다. 병살타를 때려서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관중들의 야유와 코치진의 질책,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수많은 아웃을 당하다가 가끔씩 안타도 치고, 그러다가 홈런도 치고 하는 것이다. 타고난 기계처럼 홈런을 때려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게 순리다. 


이런 식으로 존버를 하다보면 한 번은 홈런을 치게 될 것이다. 확률적으로 그렇다. 그러나 사실 그 이상인데, 그 실패의 과정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에는 방망이가 나가면 안돼, 타격 폼을 이렇게 하면 안돼. 이런 공은 놓치면 안돼.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생각해야 돼. 스냅은 이렇게 해야 돼. 햇빛 때문에 눈부실 때에는 이렇게 공을 봐야 해. 피곤할 때에는 헛스윙 확률이 높으니 조심해야 해. 이런 감각들은 실전에서야 비로소 날카롭게 갈고닦을 수 있는 것이고, 이런 노하우는 실전에서 굴러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실전의 누적된 실패 경험을 쌓다 보면 감각도 획득하고 역량도 늘어나면서 비로소 홈런을 때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실전에서의 누적된 시행착오와 실패는 홈런을 때리기 위한 조건이다. 





현실세계에서도, 홈런을 손쉽게 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라 계속 치고, 중요한 순간마다 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만약 내가 실전 타석에 들어선 입장이라면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나는 아웃이나 당하기 바쁜데, 저 사람들은 홈런을 계속 치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알고 보면 홈런을 치기 전 수 많은 타석에 서 보았던 것이 대부분이다.


현실에서 세계 최고의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살펴보자. 일론 머스크는 10대에 이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장사를 했다. 대학교에서는 월세를 벌기 위해 자취하는 집을 파티 룸으로 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워렌 버핏은 무려 6살때부터 장사를 했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10대때부터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고 한다. 마크 주커버그는 고등학교때 음악 추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MS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으며, 하버드에서 악명 높은 해커였다. 물론 이들이 특출났기에 어려서부터 그런 것들을 했을 수도 있고, 그런 기회들이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들의 특권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그들의 홈런이 그들의 데뷔 타석에서 때렸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일찍부터 실전 타석들에서 경험을 쌓았고, 그것들이 기반이 되어 비로소 홈런을 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슈퍼스타급까지 가지 않아도 마찬가지이다. 창업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 치고 한번이라도 안 망해본 사람을 찾기 힘들다. 장사로 돈을 번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어릴 적부터 뭐라도 팔아본 사람들이고, 시원하게 말아먹은 경험들도 많다. 천재 개발자로 명성을 날리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개발들을 꾸준히 해왔던 사람들이다. 투자로 큰 돈을 번 사람은 십중팔구는 돈을 크게 날려본 경험이 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이, 사람들이 때리는 홈런도 수많은 타석들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가? 홈런에만 집중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홈런을 친 사실은 회자가 된다. 홈런을 친 사람들은 영웅시되고, 선망을 받는다. 그렇게 홈런을 쳤다는 사실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게 되면, 그 이면과 그 과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당사자들이 그런 것들을 굳이 나서서 먼저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하여 우리는 누군가가 어느 시점에 홈런을 때렸다는 것 만을 기억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타석이 데뷔 타석이 아니었다는 것은 놓친다. 이걸 인식하지 못하면, 크게 착각하는 것이다. 사업, 투자, 장사, 아니 그 무엇이 되었건 간에 평생 한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첫 시도부터 대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명백하다.


물론 아주 드물게 데뷔 타석에서 홈런을 때리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허나 프로야구에서 그럴 확률이 희박한 것처럼, 이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확률도 희박하다. 야구 선수가 데뷔 타석부터 홈런을 칠 것을 기대하면서 데뷔 타석에 들어서게 되고 삼진을 당하면, 크게 좌절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야구 선수로의 커리어가 끝장난 것인가? 전혀 아니다. 위대한 선수들도 데뷔 타석에서 홈런을 때리지 못했지만, 결국 위대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데뷔 타석에서부터 홈런을 때릴 수 있다고 기대하고 타석에 들어선다. 그리고 헛스윙 삼진을 당하고, 크게 좌절하고, 돌아선다. 이것은 참으로 얄팍한 마음가짐이고, 딱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이 존버한다고 홈런을 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다. 모든 선수들이 홈런을 수두룩하게 친다면 야구라는 스포츠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세상사도 마찬가지이다. 허나 그렇게 위대한 선수들도 수많은 타석에 들어서고 수많은 아웃을 당하면서 홈런을 때려내는 것을 생각한다면, 위대한 역량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기꺼이 더 많은 타석에 들어서고 더 많은 아웃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결과적으로 홈런을 한 방도 못 때릴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해봐야지 알 수 있는 것이고, 이왕 홈런을 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수없는 실패와 좌절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순리다.




홈런을 치기 위해서는 수많은 아웃들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오늘 당하는 아웃들은, 내일 홈런을 칠 확률을 높여준다. 누가 포기하고 돌아서느냐, 누가 끊임없이 시도하느냐의 문제다. 

작가의 이전글 꽃들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