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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코 Apr 29. 2022

꽃들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꽃들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

겨울이 한창 맹위를 떨칠 때쯤, 남쪽 끝자락에서 동백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흰 눈을 뚫고 피어난 순결한 동백꽃이 겨울의 끝자락에서 빨갛게 만개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피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겨울의 냉엄함을 이겨낸 듯한 인상을 받는다. 생명의 강인함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남몰래 따뜻해진 햇살과 공기가 뺨을 간지럽히기 시작할 때쯤이면 개나리가 도처에서 피어나기 시작한다. 개나리가 수줍은 모습으로 노랗게 피어난 모습을 보면, 겨울이 끝나고 완연한 봄이 왔음을 기어이 체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나리는 봄의 전령사와 마찬가지이다.


개나리가 봄을 알리고 난 후에는 벚꽃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꽃이 벚꽃이다. 벚꽃 개화시기는 공들여 검색해볼 정도이니깐. 식상해질 때도 되었지만 매년 약속이나 한 듯이 들려오는 노랫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연인들과,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지는 거리들을 삼삼오오 걸으며 봄을 만끽한다.


벚꽃이 한 시절을 풍미하고 거짓말처럼 떨어질 때쯤이면 튤립이 만개한다. 갖가지 원색으로 피어난 튤립 꽃들을 보고 있자면, 수줍은 모습과 화려한 모습이 함께 느껴진다. 수줍으면서 화려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매혹적임을 넘어서 위험할 지경일 것이다.


튤립이 볼품없이 시들어갈 때쯤이면, 드디어 장미의 시절이 온다. 수많은 예술가들과 시인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고, 연인들이 대대손손 수도 없이 서로에게 선물해왔던 정열의 상징. 그렇게 피어난 자태를 보고 그 강한 향기를 맡고 있자면 왜 장미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상징이 되었는지 수긍하게 된다.


장미꽃의 향기가 희미해져 갈 때쯤이면, 수국이 만개한다. 사람 얼굴만 한 크기로 사방팔방 피어나는 수국을 보고 있자면 도발적인 매력이 느껴진다. 나를 보지 않고 네가 배겨? 내 곁에 머물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그 곁에 머물며 그 자태를 감상하는 수밖에.


수국이 시들어갈 때쯤이면 해바라기가 만개한다. 해바라기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너무나 절묘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태양을 닮은 자태를 하고선 작렬하는 여름의 태양 아래서 기꺼이 타들어가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일편단심 해바라기라는 식상한 수식어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해바라기가 지고 비로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쯤이면, 코스모스가 만개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노라면 귀엽기도 하면서 소박한 느낌이 난다. 민들레만큼이야 못하겠지만, 길가나 공터 등등에 아무렇게나 피어나 있는 코스모스들을 보면 그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을도 깊어가서 단풍이 조금씩 들 때쯤이면, 국화가 만개한다. 다른 꽃들과는 다르게 가을의 한창에서 피어나는 국화를 보고 선인들은 군자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 화려함을 한 해 동안 숨겨왔음이 참 기특하다. 그렇게 국화를 보며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느끼고, 쓸쓸한 가을 속에서 위로를 받는 듯만 하다.



삶을 살면서,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시기'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몇 살 까지는 대학을 가야 하고, 몇 살 까지는 취업을 해야 하고, 몇 살 까지는 결혼을 해야 하고, 몇 살 까지는 얼마를 모아야 하고... 이런 시기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좋게는 특이한 사람, 나쁘게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평가받기 일쑤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조급함을 느끼게 된다. 남들과 같은 시기에 대학을 가지 못하면 불안하다. 취업이 늦어진다면 좌절감을 느낀다. 주변 사람들이 다들 결혼을 하게 되면 조급해진다. 또래 친구들 대비 돈을 많이 모으지 못했다면 초조함을 느낀다. 언제까지는 어떤 일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 인생에 악영향이 있다는 인식 때문에 우리네 인생은 조급함의 연속이다.


이에 더해, 인생의 어떤 측면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른 나이에 너무나 훌륭한 사람과 성공적으로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업적으로 큰 성과를 이루어 빠르게 명예를 쌓거나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사업이나 투자에서 좋은 수익을 거둬서 일찍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빠르게 치고 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우리는 초조함과 자괴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남들은 만개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지금 내 현실을 보면 너무나 초라하고 한심해 보일 수가 없다. 그렇게 한층 움츠려 들거나, 자존감을 스스로 깎아먹기 일쑤이다.


사계절을 지나가며 피고 지는 꽃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느끼는 바가 있다. 각기 다른 꽃들은 각기 다른 자신만의 개화 시기가 오면 약속이나 한 듯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피어난다. 모든 꽃들이 각자의 시기를 가지고 있다. 순리대로 살아가며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오랜 인고와 침묵의 시간을 거친 후에 비로소 그들의 시절이 오면 아름답게 피어낸다.


그 어떤 꽃도 조급해하며 피어나지 않는다. 가을에 피어나기 전에는 일개 식물에 지나지 않는 국화가 개나리나 벚꽃이 봄날에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며 초조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봄 여름 지나 가을이 깊어지면  그 순리대로 피어날 뿐이다. 또한 모든 꽃들이 봄에 피어나야 하는 것도 아니며, 늦게 피어나는 꽃이 빨리 피어나는 꽃보다 못났거나 불행한 것도 아니다. 서늘한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코스모스의 매력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벚꽃의 매력과는 다른 것이다. 그렇게 꽃들은 각자의 개화 시기에 각자의 개성으로 각자의 매력을 뽐내기 마련이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꽃들도 이렇게 각자의 시기가 있는데, 우리는 왜 정답처럼 '옳은 시기'와 '옳은 타이밍'이  있다고 굳게 믿고 살아가고, 그런 것들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남들을 평가하고, 또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일까? 꽃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훨씬 더 복잡한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각자의 시기가 있다고 믿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또한 꽃들의 아름다움은 시기의 늦고 빠름과는 무관한 것이라, 개화 시기가 빠르다고 우월한 꽃이 아니며, 또 늦다고 열등한 꽃이 아닌 것인데, 왜 우리는 그렇게 남들이 일찍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전전긍긍할까? 이것은 사실 모든 꽃들이 봄에 피어나야 하고, 봄에 피어나지 못하는 꽃들은 패배자들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만큼이나 인위적인 생각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조급해질 때, 나도 모르게 초조해질 때에는 피어있는 꽃을 바라보며 생각하자. 조금 늦어도 괜찮다. 지금 당장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져도 괜찮다. 다 각자의 시기가 있는 것일 뿐이니까 말이다. 인위적인 걱정과 초조함, 자괴감에 스스로 시들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나에게도 만개할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 시기를 기다리며 불어오는 바람과 쏟아지는 태풍, 타오르는 가뭄, 시리는 추위를 인내하며 하루하루 뿌리를 굳게 내딛으리라.


묵묵히 자신의 시기를 기다리며 숨어있으면서, 속으로는 끊임없이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지금에는 풀과 나뭇가지에 지나지 않는 수많은 꽃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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