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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Mar 29. 2023

하루종일 새벽

신선함이 숙제입니다 (1)

누구나 신선해지기를 원한다는 거죠. 

생선만 그런 마음이 있는 건 아녜요. 

생선의 바람이 상추의 바람과 다르지 않은 부분은 

뭐랄까, 늙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시간이 적어도 내게는 천천히 흘러서 

나의 몸과 마음이 싱싱하게 오래도록 유지되었으면 하는 인간의 마음과 닮았다고도 할 수 있겠어요.

시간과의 싸움. 찬란한 순간을 지속하고 싶은 욕망. 

내가 나다움을 지켜서 그대가 실망하거나 돌아서지 않고 나를 계속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소망. 


아이러니하게도 

신선은 죽었을 때부터 시작되네요. 

그렇잖아요. 

경계 없는 바닷속을 쏜살 같이 이리저리 달리며 살아 있는 때에는

생선은 신선에 대한 미련이 조금도 없을지 몰라요. 

사실은 생선도 성장의 정점을 지나고 난 후부터는 나이듦과 사그러듦의 여정에 놓이겠지만

그래도 신경이 살아 있고 근육은 뛰어 노니까. 

어디 유통기한 같이 일주일 보름 내외의 짧은 기간을 걱정이나 하겠어요? 

땅이라는 보호막에 포근히 싸여서 잔돌들을 헤치고 큰돌들을 피하거나 제 몸에 새기면서 자랄 때의 

당근이나 감자같이, 신선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안이겠죠. 


신선하다고 하면 새벽의 어스름과 차가운 기운, 방울방울 맺히는 이슬이 생각나는 것은

아무래도 신선함을 해치는 녀석이 태양이라서 그런 걸까요? 

온종일이 새벽일 수 있다면, 신선함은 더 오래 지켜지겠죠. 

나를 살짝 긴장하게 하는 새벽의 환경이 나를 더 잘 지켜주는 환경인 것은 같아요. 


신선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 

감사한 일일 거예요. 

"그를 만나면 새벽에 선 것 같아", 그럴 수 있는 사람. 

오랜 잠의 시간을 깨워 쌀쌀한 새벽 기운처럼 소름돋게 해주거나, 

아직 활짝 피우진 않아도 얼마나 화려하게, 얼마나 향기롭게 품성과 능력을 피워낼 지 기대를 주는 사람,

시간이 흘러도 왠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세상의 닳고 닳은 문법과는 다르게 자신의 언어를 펼치고, 

낡은 해석과는 다르게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사람. 

어떤 틀을 깨는데 주저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낯선 시도에서 자신감과 재미를 찾는 사람. 


집에서 신선함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요? 

냉장고와 김치냉장고와 2,3도쯤 낮은 기온의 베란다

여름날 에어컨 앞이나 선풍기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그 영역. 

화병이나 화분이 머금은 영양과 수분의 힘으로 파릇하고 울긋불긋한 화초. 

그리고 갓 머리를 자르고 집에 돌아 온 가족의 생경한 얼굴. 

그 얼굴엔 본인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본인의 모습에 대한 미묘한 불안

어쩌면 근래의 한두 달 사이에서 가장 새로운 모습이 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함께 하죠. 

모처럼 쇼핑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입어 보는 새옷에서도, 새옷을 걸친 몸에서도 

신선함은 얼핏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죠. 


신선한 공간의 경험은 여행이 제일 잘 주는 것 같아요. 

골목에도, 광장에도, 집의 모양이나 나무의 생김새에도 신선함은 배어 있죠. 

단순히 달라서만은 아닐 거예요. 

골목의 풍경이 그렇게 된 데에는 과정이라는 화학적인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 곳을 '나의 홈타운'으로, 살아갈 터전으로 무겁게 여기고

오래된 것을 지키는 데에도 진실함을 담고 새 것을 시도하는 데에도 진심을 담았을 테니까요. 

사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낸 

오랜 시간의 밀고당김과 완성의 과정이 어느날 문득, 내 눈 앞에 신선한 풍경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젊다는 것은 신선할 수 있다는 권리일 테죠. 

먼 데서 찾지 않아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신선할 수 있는 재료들은 넘쳐나는 때.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서 흐물흘물하지 않은 상태. 

어떤 컬러를 걸치고 스타일링을 과감하게 해도 원래 내 것인 것 같은 특권. 

그런게 젊은이들에게는 있죠. 


앞으로 삼사 주는 신선한 생각을 해야 해서...

두서 없이, 감기약의 몽롱한 기운 속에서, 신선함의 아주 일부분을 끄적여 봤어요.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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