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미국 외에 독일, 일본, 중국도 생각하라
꾀가 많은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狡兎三窟). 사기 맹상군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약한 토끼는 언제 사나운 맹수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토끼는 굴을 세 개나 갖고 있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15년 동안 해외 대학에 진학하려는 많은 학생들을 만나면서 갖는 생각은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토끼의 지혜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 능력 시험인 SAT, ACT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고득점을 한 학생들 상당수가 지원한 미국 명문 대학에서 상당수가 불합격되는 것을 본다. 자신의 학업적 성과와 실력만 믿고 최상위권 대학만 지원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것이다. “이 점수면 어디를 못 가”라는 자만심이 부른 화(禍)를 부른 것이다.
필자는 한 해에도수 백 명의 학생의 진로를 상담해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기 분수를 모르고 '명문 대학'이라는 굴레에서 못벗어나는 학생들이 많다. 미국 상위권 대학들은 정말 입학이 어렵다. 어떤 기록을 가진 학생들이라도 미국 상위권 대학에 지원할 때는 상향지원(reach), 적정 지원(match), 하향지원(safety)의 3개 그룹으로 나눠 지원을 해야 한다. ‘대학 명성’을 대학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불합격'이라는 쓴 잔을 마실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국 대학 지원자 뿐 아니라 한국 대학 지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지피지기(知彼知己)를 모르고 도전하면 백전백패다.
가정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미국 대학의 학비를 모두 내기 어려운 학생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런 경우 국제 학생들에게도 재정보조/장학금을 주는 미국 대학을 선택해야 하고 필요한만큼 재정보조(Financial aid)를 받아야 한다. 미국 대학들 가운데 상당수는 국제학생이 재정보조 신청을 하면 입학 사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need aware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런 학생이라면 지원대학 할 대학 선택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해외유학하면 미국 대학만을 생각했다. 유학을 간다면 꼭 미국 대학만 지원을 해야 할까? 미국은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모이는 ‘인재 블랙홀’이다.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이지만 특히 교육 분야는 세계 최고다. 그러나 미국 대학은 입학하기도 어렵지만 비싼 학비가 문제다. 연봉 1억 원의 ‘부자 아빠’도 재정보조(FA) 없이는 자녀를 미국 대학에 보내기 쉽지 않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학비가 저렴한 다른 교육 선진국 대학들이다.
이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학비가 비싼 미국 대학 대신에 홍콩, 싱가포르, 독일, 핀란드, 노르웨이, 중국, 일본 대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 나라 대학들은 자국어뿐 아니라 영어로 전공을 제공하는 곳이 많다. 굳이 그 나라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들 나라 대학들은 학비가 없거나 저렴하다. 독일, 노르웨이는 대학 학비가 없다. 핀란드 대학들은 지난해까지 학비가 없었으나 2017년부터 영어로 전공을 하는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받는다. 연간 600-2000만 원 수준이다. 홍콩, 싱가포르 대학들은 학비는 2000만 원대다. 미국 대학의 절반밖에 안 되고, 또한 성적 우수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으면 학비 수준은 미국의 1/6 정도로 낮아진다.
중국도 대학에 영어로 공부할 수 있는 전공들을 대거 개설했다. 중국 상위권 대학들 가운데 학부에서 중국어를 몰라도 영어로 공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공을 개설했다. 비즈니스, 엔지니어링 등 전공이 매우 다양하다. 중국 대학들은 학비와 기숙사비를 합쳐도 연간 1천만 원이 안 된다. 일본은 지난 2009년부터 정부차원에서 해외 유학생 유치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른바 G 30 프로그램이다. 해외 유학생을 30만 명까지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도쿄, 교토, 나고야, 오사카 대학 등 일본의 최상위권 대학 13곳이 영어로 많은 전공을 개설하고 해외 유학생을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 국제화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지만 대학에서 많은 전공들을 영어로 제공하고 있다. 학비 수준은 약 2천만 원으로 역시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 대학 외의 다른 나라 대학들의 지원 조건이 미국 대학 다르지 않다. 미국 대학 지원 준비를 한 학생이라면 별 어려움 없이 유럽 및 아시아 대학 지원이 가능하다. 또한 지원 시기를 볼 때 미국 대학 지원을 시작으로 차례로 여러 나라 대학에 지원이 가능하다. 이제 미국 대학이 11월 1일 얼리(조기) 지원을 마감한다. 보름 뒤 홍콩 대학이 마감되고 1월에는 핀란드 대학이 마감된다. 이어 독일, 일본, 중국 대학들이 원서를 받는다. 앞서 설명을 했지만 교토삼굴의 지혜를 가진다면 가난은 더 이상 해외유학의 장애가 될 수 없다. <미래교육연구소장 이강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