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론 양말과 가래떡, 그 유배된 유년의 기록

타향이 고향이 되기까지… 닳아버린 그리움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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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그린 이미지>



내 고향은 70년대 초까지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던 깡촌, 하루 한두 번 먼지를 날리며 좁은 신작로를 지나던 버스가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그 곳 아이들에게 이발과 목욕이란 설날을 앞두고 치러야 하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버짐이 번진 동네 아이들의 텁수룩한 머리카락은 어느 집 마당에서 서툰 바리깡 손길에 쥐가 파먹은 듯 잘려 나갔다. 조금 형편이 나은 집 아이들은 십 리 길을 걸어 면소재지 이발소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곤 했다.


아이들의 손등은 겨우내 묵은 때와 추위에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졌고, 목덜미에는 거뭇한 때가 엉겨 붙어 있었다. 이십 리 길 군소재지 읍내 목욕탕은 너무나 멀었고, 그 돈마저 아까웠던 어머니는 부엌 가마솥에 덥힌 대야 한 가득 물로 아이들을 씻겼다. 켜켜이 쌓인 묵은 때를 벗겨낼 때마다 녀석들은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고, 그때마다 어머니의 손은 어김없이 등짝에 내리꽂혔다. 돌아보면 그마저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모진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은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설 대목 장을 봐온 어머니의 보따리에서 나온 나일론 양말 한 켤레의 매끄러운 감촉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동네 방앗간에서 갓 뽑아온 가래떡 한 줄의 온기, 온 집안을 채우던 부침개의 고소한 기름 냄새 — 그것은 어린 시절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던 지극한 호강이자 축복이었다.


이제 그 시절의 동무들은 더 이상 고향 흙을 밟고 살지 않는다. 모두 낯선 객지로 흩어져 타향을 고향 삼아 뿌리를 내렸고, 나 또한 고향에는 마중 나올 부모님도, 세배를 드릴 어른도 계시지 않는다. 고향이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 했던가. 그리움의 끝자락이 닳고 닳아 타향조차 고향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들의 유년은 저 멀리 사라진 버스의 뒷모습처럼 아련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26.2.15 玄潭 이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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