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웬 독서?
‘스트라파도(날개 꺾어 거꾸로 매달기)’ 고문은 밧줄로 죄수의 두 팔을 뒤로 묶어 공중에 매달았다가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고문이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사보나롤라 수도사조차 ‘스트라파도’ 고문 한 번에 자신의 죄목을 술술 불 정도였다. 마키아벨리는 감옥에 있는 22일 동안 ‘스트라파도(날개 꺾어 거꾸로 매달기)’ 고문을 여섯 번이나 당하고 살아남았다.
단순한 감옥이 아닌 이렇게 가혹한 고문을 받으며 갇혀있던 마키아벨리는 도대체 감옥에서 무슨 생각을 한 걸까. 특별사면으로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아무도 없는 마을에 은둔하며 책을 써냈다. 손꼽히는 고전 중에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근대 정치사상의 최고 고전이다. 얼마나 귀한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들어간 걸까?
빅터 프랭클은 지옥 같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3년이라는 세월을 꿋꿋이 견뎌냈다. 미래도 목표도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죽음의 세월을 버텨냈다. 모두가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생각과 마음을 놓치지 않았던 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우슈비츠에서 나와 실제로 자신이 생각했던 그림대로 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각한 것들을 정리해 전 세계적으로 1억 권이 팔린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펴낸다. 김대중 대통령도 여러 차례 감옥살이를 했지만 “생전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가고 싶다” 말할 정도로 감옥에서 독서를 하며 사색하는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감옥에서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감옥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 삶이라는 곳과 동떨어진 곳인 감옥. 고립된 장소, 억압된 자유, 수동적인 삶의 태도 등 많은 부분이 우리의 일상과 다르다. 이 곳에서 유일하게 지킬 수 있는 생각과 마음. 어쩌면 내게 가진 마지막이 생각과 마음이기에 그것만큼은 반드시 지키려 애써 갈고닦았을지 모른다.
군대와 감옥은 억압된 자유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과 내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존재 이유를 망각하는 순간 군대와 감옥은 똑같이 느껴진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군대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시간 낭비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그랬다. 장교로서 군 생활했지만 처음엔 감옥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과가 끝나면 부대를 나와 간부 독신자 숙소로 퇴근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는 내 맘대로 무엇이든 해도 좋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침이 다가오고 다시 출근 버스를 타고 부대로 들어간다. 평일에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주말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 의욕도 없었다. 꿈도 미래도 생각하지 못했다. 흘러가는 대로 상황에 맞게 살아갈 뿐이었다.
창살은 없었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인제의 산골짜기에서 내가 느낀 건 답답함 뿐이었다. 그곳은 나에게 감옥과도 같았다. 6평짜리 방에서만 주말을 보내며 몸도 마음도 억압되어 있었다. 아무 의욕도 희망도 없던 그때, 내 인생의 바닥이 있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대로 살 순 없다고.
감옥에 갇혀 지낸 수감자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생각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간절한 마음 때문일까? 하루하루 달라지는 내 모습이 보였다. 책이라는 기준으로 내 생각과 마음을 지키려 노력하니 실제로 생각과 마음의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상황에 따라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을 통해 상황을 바꿔나갔다.
어느 상황에서도 내 마음을 지키며 힘든 상황에도 꿋꿋이 이겨 나갔다. 조금씩 밝은 빛이 내 삶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게 비친 빛은 주변 병사들에게도 전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께 생각하고 책을 읽었다. 우리가 이토록 간절한 적이 있었을까? 우리가 이토록 독했던 적이 있었을까? 지금까지 이렇게 뜨거워 본 적도, 간절하게 무언가를 해 본 적도 없었다. 벼랑 끝에서 매달려 다시 살아내고자 발버둥 치는 사람들처럼 아등바등하며 끝까지 희망의 실마리를 놓지 않았다.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가겠다는 존재는 누구인가? 그 누구도 없지만 당신은 무언가에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 아니 단 한 번도 어떤 상황으로부터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지켜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겐 나만의 것을 지켜야 하는 간절함이 필요 없었다.
이젠 다른 상황이다. 2년이라는 시간은 짧으면서도 무척 길고 긴 시간이다. 그것도 20대 초반에 보석같이 빛나는 시기의 2년은 무척 값진 시간이다. 간절해야 한다. 당신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지금을 놓치면 당신의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위해 사색하고 갈망하고 도전하는 시기는 아마 없을 것이다.
군대에서 겪은 우울증이 나에게 준 유일한 선물은 간절함이다. 바꾸고 싶다는 간절함, 이 바닥에서 일어나고 싶다는 간절함, 빛을 보고 싶다는 간절함. 그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군대 밖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간절함을 군대에서 느꼈다. 그 간절한 마음 덕분에 내 삶이 바뀌었다. 평생 책을 읽어본 적도 없는 병사들도 이 간절함 덕분에 책을 읽었다. 꿈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20년을 넘게 살아온 병사도 꿈이란 것을 생각해보는 간절함이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매 순간 자신이 선택한 생각을 하고 자신이 지키고자 한 자유를 지킨 빅터 프랭클은 실제로 죽음에서 벗어나 자유라는 삶을 얻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매일, 매시간 선택의 순간들을 맞닥뜨린다. 그 선택으로 우리의 삶은 결정된다.
이 선택에 따라 우리의 삶은 여전할 수도 있고 역전할 수도 있다. 당신은 군대와 같은 시련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여전히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제부터라도 매 순간 자신의 생각대로 주관대로 미래를 만들어 가며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