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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재훈 Jun 12. 2018

꽃다발을 들고 가는 설렘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


저번 주 금요일 많이 부지런했던 날이다 

새벽 3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  

은혜로 하루를 시작하고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은 날 

너무 피곤해서 금요철야는 도저히 못 갈 것 같았다 

저녁 시간도 조금 지났고 그냥 집에 가서 바로 뻗을 생각이었다 

강남 쪽에서 집에 가려고 하는데 여자 친구가 야근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언젠가 한 번은 선릉역에 스노우 폭스 플라워에서 꽃을 사서  

여자 친구에게 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오늘이 그 날인 거 같았다 

둘 다 피곤한 상태라 완벽한 타이밍은 아닐지라도 

가까운 곳에 스노우 폭스 플라워가 있었고 

여자 친구도 마침 역삼지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놀랐고 

살아있는 꽃들이 가득한 매장에 들어가니 

내 기분도 덩달아 환해지는 것 같아 신기했다 

연한 파란색을 띠는 수국을 골랐다 

편지지도 사서 편지를 썼다 

가져가서 따로 쓸까 여기서 쓰고 같이 껴달라고 할까 고민했다 

비좁은 매장에서 편지를 쓰려면 계산대에 서서 써야 하는데 

퇴근 후 꽃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거기에 서서 편지를 쓰기엔 조금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포장할 때 편지지를 꽃 옆에 꽂아달라고 하는 게 더 이쁠 거 같아 

계산대에 서서 편지를 썼다 

편지라기보단 짧은 메모였다 

몇 문장을 끄적이는 1~2분이 엄청 길게 느껴졌다 

계산을 하고 그냥 꽃다발을 들고 가려다가  

커다란 쇼핑백을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손으로 들고 가다가 이쁜 포장이 망가질까 봐 

커다란 쇼핑백에 조심스럽게 들고 갔다 

선릉역에서 역삼역까지 가는 10분 남짓 

수국을 몇 번이나 쳐다봤는지 모르겠다 

졸업식이나 특별한 날에 꽃을 샀지 

아무 이유 없이 꽃을 산건 처음이었다 

꽃을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야근을 하는 날에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꽃을 샀지만 

꽃을 사서 들고 가는 나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꽃은 좋은 거니깐 

보기만 해도 이쁜 거니깐 

이쁘게 포장되어 주는 것도 이쁘지만 

여자 친구가 이걸 집에 들고 가 꽃병에 담아 

매일 아침 일어나면 꽃을 보고 밝게 웃을 생각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금요일 퇴근 시간 꽉 막히는 테헤란로 

버스나 택시를 탈 수 없어 지하철을 타고 한정거장을 갔다 

한 손엔 알라딘에서 산 책 3권이 들어있는 봉투와  

아침에 읽으려고 들고 나온 책까지 총 4권이 있었다 

다른 한 손엔 수국을 들고 조심스럽게 지하철을 탔다 

무겁고 버겁고 뭔가 귀찮은 느낌이 드는 게 당연했지만 

꽃을 주러 간다는 생각에 괜찮은 기분이었다 

여자 친구 일이 끝날 때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기다렸다 

졸다가 깨서 보니 이쁜 수국 꽃잎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다 말라버려서 

냅킨을 적셔 꽃잎에 발라주기도 하면서 여자 친구를 기다렸다 

몸은 피곤하고 눈은 감기는데 내가 뭐 하는 거지 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그저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꽃을 보며 기다렸다 

꽃을 받은 여자 친구는 너무 좋아했고 고마워했다 

(비록 밥을 먹고 나서 계산하러 가느라 식당에 두고 올 뻔했지만..ㅋㅋ) 

여자 친구를 기쁘게 해줄 거라는 믿음만으로도 

‘먹는 것도 아니고 시들어서 나중에 버릴 꽃을 왜 사?’ 

라는 생각을 했던 내가 꽃을 사고 

포장이 구겨질까 꽃잎이 상할까 조심스럽게 들고 가는 수고를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꽃을 사고 여자 친구에게 가는 길에 예상치 못한 기쁨과 설렘을 느꼈다 

어떤 목적을 위해 믿음만으로도 갈 수 있지만  

그 길에서 행복과 설렘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이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보슬비를 맞으며 조깅을 하고 

일찌감치 교회에 가 기도를 하면서 최근 내 삶을 되돌아봤다 

기도를 하면서  

꽃을 들고 여자 친구에게 가는 길에서 느낀 설렘이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 느끼는 설렘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천국에 가면 행복하다. 평안하다 등 

나름대로 아름다운 상상을 했다 

그땐 단순히 천국을 상상하며 기도했고 

막연히 천국 가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힘들고 버겁기만 했던 현실을 피할 생각뿐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움은 항상 존재하고 

나를 넘어뜨리려는 유혹은 더욱더 거세졌지만 

이제는 이 곳에서 내가 겪는 작은 천국에 감사하며 기도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 광야를 함께 지났던 모세 

하지만 끝내 가나안 땅은 들어가지 못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를 보며 하나님은 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가나안 땅에 가기까지 광야 생활이라는 여정에서 모세가 만난 

하나님을 보며 다시 성경을 읽어보니 행복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천국을 바라보며 현실에서 비전을 조금씩 그려나가는 삶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한 대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삶 속에서 평안과 감사를 느낄 때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광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느낀 감정이 이랬을까 생각을 해본다 

십자가의 길은 좁고 험한 길이라고 하지만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살아낼 힘과 세상을 헤처 나갈 지혜를 주시길 

소소하지만 넘치는 감사와 평안으로 

좁은 길을 걸어가는 여정 속에서도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설렘을 느끼길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장 6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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