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을 들고 가는 설렘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

by 장재훈


저번 주 금요일 많이 부지런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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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

은혜로 하루를 시작하고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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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피곤해서 금요철야는 도저히 못 갈 것 같았다

저녁 시간도 조금 지났고 그냥 집에 가서 바로 뻗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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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쪽에서 집에 가려고 하는데 여자 친구가 야근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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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은 선릉역에 스노우 폭스 플라워에서 꽃을 사서

여자 친구에게 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오늘이 그 날인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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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피곤한 상태라 완벽한 타이밍은 아닐지라도

가까운 곳에 스노우 폭스 플라워가 있었고

여자 친구도 마침 역삼지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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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놀랐고

살아있는 꽃들이 가득한 매장에 들어가니

내 기분도 덩달아 환해지는 것 같아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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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한 파란색을 띠는 수국을 골랐다

편지지도 사서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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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서 따로 쓸까 여기서 쓰고 같이 껴달라고 할까 고민했다

비좁은 매장에서 편지를 쓰려면 계산대에 서서 써야 하는데

퇴근 후 꽃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거기에 서서 편지를 쓰기엔 조금 부끄러운 마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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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할 때 편지지를 꽃 옆에 꽂아달라고 하는 게 더 이쁠 거 같아

계산대에 서서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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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라기보단 짧은 메모였다

몇 문장을 끄적이는 1~2분이 엄청 길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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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을 하고 그냥 꽃다발을 들고 가려다가

커다란 쇼핑백을 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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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손으로 들고 가다가 이쁜 포장이 망가질까 봐

커다란 쇼핑백에 조심스럽게 들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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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릉역에서 역삼역까지 가는 10분 남짓

수국을 몇 번이나 쳐다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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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이나 특별한 날에 꽃을 샀지

아무 이유 없이 꽃을 산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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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야근을 하는 날에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꽃을 샀지만

꽃을 사서 들고 가는 나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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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좋은 거니깐

보기만 해도 이쁜 거니깐

이쁘게 포장되어 주는 것도 이쁘지만

여자 친구가 이걸 집에 들고 가 꽃병에 담아

매일 아침 일어나면 꽃을 보고 밝게 웃을 생각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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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퇴근 시간 꽉 막히는 테헤란로

버스나 택시를 탈 수 없어 지하철을 타고 한정거장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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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알라딘에서 산 책 3권이 들어있는 봉투와

아침에 읽으려고 들고 나온 책까지 총 4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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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손엔 수국을 들고 조심스럽게 지하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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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버겁고 뭔가 귀찮은 느낌이 드는 게 당연했지만

꽃을 주러 간다는 생각에 괜찮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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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 일이 끝날 때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기다렸다

졸다가 깨서 보니 이쁜 수국 꽃잎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다 말라버려서

냅킨을 적셔 꽃잎에 발라주기도 하면서 여자 친구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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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피곤하고 눈은 감기는데 내가 뭐 하는 거지 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그저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꽃을 보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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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받은 여자 친구는 너무 좋아했고 고마워했다

(비록 밥을 먹고 나서 계산하러 가느라 식당에 두고 올 뻔했지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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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친구를 기쁘게 해줄 거라는 믿음만으로도

‘먹는 것도 아니고 시들어서 나중에 버릴 꽃을 왜 사?’

라는 생각을 했던 내가 꽃을 사고

포장이 구겨질까 꽃잎이 상할까 조심스럽게 들고 가는 수고를 감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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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꽃을 사고 여자 친구에게 가는 길에 예상치 못한 기쁨과 설렘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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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적을 위해 믿음만으로도 갈 수 있지만

그 길에서 행복과 설렘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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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일어나 보슬비를 맞으며 조깅을 하고

일찌감치 교회에 가 기도를 하면서 최근 내 삶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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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하면서

꽃을 들고 여자 친구에게 가는 길에서 느낀 설렘이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 느끼는 설렘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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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천국에 가면 행복하다. 평안하다 등

나름대로 아름다운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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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단순히 천국을 상상하며 기도했고

막연히 천국 가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힘들고 버겁기만 했던 현실을 피할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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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어려움은 항상 존재하고

나를 넘어뜨리려는 유혹은 더욱더 거세졌지만

이제는 이 곳에서 내가 겪는 작은 천국에 감사하며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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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 광야를 함께 지났던 모세

하지만 끝내 가나안 땅은 들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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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모세를 보며 하나님은 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가나안 땅에 가기까지 광야 생활이라는 여정에서 모세가 만난

하나님을 보며 다시 성경을 읽어보니 행복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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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바라보며 현실에서 비전을 조금씩 그려나가는 삶을 위해 기도한다

기도한 대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삶 속에서 평안과 감사를 느낄 때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광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느낀 감정이 이랬을까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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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은 좁고 험한 길이라고 하지만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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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살아낼 힘과 세상을 헤처 나갈 지혜를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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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넘치는 감사와 평안으로

좁은 길을 걸어가는 여정 속에서도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설렘을 느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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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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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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