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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ul 09. 2019

"우리가 이긴다"는 이들에게


JTBC 뉴스와 댓글을 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결국 글을 쓴다. 논설위원이라고 나온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일본 국교 단절'까지 생각하며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 하고, 신지예 위원장(은 언제부터 정치 프로그램에 논설로 나오는 진 모르겠지만)은 이건 남한과 북한의 평화 문제라고 하는데 본인들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은 모습이 이건 동네 복덕방에서 하릴없는 어르신들이 맥심 한 잔 마시며 나누는 얘기보다 못하다 느껴진다.



유튜브에 떠도는 영상들도 죄다 국뽕에 뇌가 얼얼하게 마비돼서는 어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기회에 혼쭐을 내주자" "우리가 이긴다" "일본이 사과할 때까지 절대 봐주지 말자" "사실 일본이 벌벌 떨고 있다" 는 사람들은 한일 교역 구조의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부끄러운 생얼을 그대로 드러내며 선동을 자극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일 교역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한국의 대일 주요 수입품은 생산재 즉 소재, 기계 부품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국가의 경제를 떠받치는 배, 티브이, 반도체, 자동차 등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각종 정밀 기계, 화학 부품, 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해온다. 우리가 "이긴다" 자랑스럽게 정신 승리하면서 맥주 안 먹고, 카메라 안 사고, 옷 안 입는 게 일본에게 얼마나 타격을 줄 수 있을까.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니클로 매출의 6.7%, 아사히 매출의 1%만이 한국 시장에서 발생할 뿐이다. 우리가 목청 높게 보이콧하는 그 제품은 이미 그들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수출하고 있는 제품들이며 한국 시장에서의 소비가 그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에 수출하지 않으니 일본 반도체 소재 회사들도 망하지 않겠냐 하겠지만, 한국에 85.9%를 수출하는 에칭 가스를 제외한 나머지 2개 소재의 한국 수출 규모는 25% 밑이다. 즉 이 사태가 끝까지 갈 경우 리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생산 기업의 매출 타격은 있겠지만 그 규모는 최대 25% 이내라는 것이다. 일본 재무성이 양 국가 양보 없이 극한의 상황까지 갔을 때 예상한 한국 대 일본 피해액은 45조 원 대 1700억 원. 이 부분에 어느 정도 거품이 끼여있다 치더라도 한국에게 반도체 산업은 국가의 운명을 지고 있는 산업인 반면 일본에게 에칭 가스 회사는 장기판의 졸 중 하나의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일본은 자신의 살점을 조금 내어주고 한국의 팔 하나 다리 하나 이상을 취하는 셈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은 일본 부품, 소재의 영향력이 반도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산업 로봇에 쓰이는 핵심 소재와 모터 등 기계 부품도 일본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공장 단위면적 당 로봇이 가장 많은 국가이다. 그 외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대부분 제조업 산업 분야의 핵심 소재와 부품이 일본 공급에 의지하며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쓸 수 있는 수많은 카드 중 가장 화려하고 상징적인 꽃놀이패 하나만을 내보였을 뿐이다. 그들이 쥔 카드를 한 장 한 장 테이블에 올릴 때마다 한국의 산업에는 큰 충격과 마비가 올 것이다. 그들은 한국 산업의 등뼈를 쥐고 흔들고 있는데 기껏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맥주 사 먹지 말자, 옷 사 입지 말자며 "우리가 이긴다" 정신승리를 하고 있으니 이게 어찌 한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악의 상황에 반도체와 OLED 수출을 일본에 제한한다 치더라도 일본은 그 제품들 수입선을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돌리면 그만이다. 한국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잘 만들기는 하지만 그 제품을 한국 '만'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언성은 높이지만 알맹이가 없는 이유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좋다, 맥주도 자동차도 카메라도 일본 제품이니 쓰지 말자고 치자. 바위에 계란이라도 던져보자. 그럼 일본 부품와 소재가 들어가고 일본 기계로 만든 제품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폰에 일본 디스플레이와 카메라, 스토리지가 들어가니 아이폰도 쓰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매일 쓰는 휴대폰, 컴퓨터, 국산 자동차부터 지하철, 버스, 도로, 비행기, 건물, 거리에서 보이는 각종 디스플레이 등도 전부 안 쓸 것인가? 수출에 쓰이는 각종 자재들과 산업재, 생산재는 물론 그것을 실어나르는 선박과 기계들은? 일일이 해체해서 부품 확인한 후 그 부품만 떼어내고 사용할 것인가? 아사히도, 도요타도, 유니클로도 일본 제품이라는 이유로 보이콧하는 것이면 일본 소재와 부품이 들어가고 일본 기계로 만들고 일본의 운송 수단으로 실어나르는 모든 물품과 서비스도 똑같이 안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다른 제품, 서비스는 그대로 이용하는가? 공장에 있는 기계나 제품 속 부품은 우리 눈에 안 보이니까?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일본의 대형 소비재 기업이 한국에서 가져가는 매출은 그들의 전체 매출 대비해서 매우 미약한 수준이다. 그보다 한국에서 훨씬 많은 매출을 벌어들이고 한국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는 일본의 기계, 소재, 부품이다. 코어는 놔두고 기껏 맥주나 안 사 먹으면서 어깨 으쓱 "애국자"인 척하는 게 얼마나 논리적으로 모순되고 웃긴 모습인가. 



정부가 1조 원 지원을 하겠다니 우리도 어서 국산화하자, 일본에 매운맛을 보여주자 하는 사람들은 어디 비싼 돈 주면 공무원 시험 가르쳐 주듯 핵심 산업 기술을 인강으로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걸로 아는 듯하다. 원천 기술 개발이 돈 내면 뚝딱 나오는 쉬운 일이었으면 왜 우리나라 기업들이 진작에 하지 않았겠는가. 그만큼 시간과 자원과 기술 개발이 많이 투여되기 때문이다. 핵심 소재 기술 개발은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아득히 먼 미래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당장 한두 달 여 밖에 남지 않은 촌각을 다투는 사건이다.



절대 일본에게 사과하지 말라, 우리가 이긴다, 끝까지 가야 한다, 국교를 단절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건, 그런 국민 정서에 이끌려 정부가 정말 미쳐서 끝까지 갈 때 결국 피해 입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부품 조달이 끊겨 생산 라인이 중단된 수많은 기업 사장들을 대신해 당신들이 해외 돌아다니며 부품 조달을 해줄 것인가? 공장 조업이 중단되어서 월급을 못 받는 직원들에게 당신이 대신 월급을 줄 것인가? 자금 압박을 받는 기업에게 저리로 사업 자금 대출이라도 해줄 것인가? 대신 기술 개발을 해줄 것인가? 이재용 대신 일본에 가서 일본 정부와 사건을 해결할 것인가? 그게 아니면 무급 알바라도 할 것인가? 우리가 일본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끝까지 가자 외치는 사람은 한국 산업의 현실을 모르고 자신이 작금의 사태와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는 것아닌가? 당신들이 감내하는 불편이란 기껏 평소 즐겨마시던 아사히 대신 맛없는 하이트를 집어드는 불편 정도가 아닌가.



남들이 와와거릴 때 같이 따라가는 대신, 사건이 왜 이렇게 된 건지, 더 깊은 곳엔 무엇이 있는지, 현상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자. 보이콧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편의점에서 아사히 대신 하이트를 집어들고, 유니클로로 향하던 발길을 자라로 돌리고, 국뽕에 취해 자랑스럽게 인스타에 하이트 사진 올리며 전시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내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알자는 것이다.



짧게는 올해 1월부터 이미 크고 작은 가시적 시그널이 일본으로부터 끊임없이 있었고 일본 정부가 공공연히 이야기를 했음에도 결국 이렇게까지 일을 끌고 오는 한국 정부의 무능력 참 대단하다 말씀 올리고 싶다. 일본은 언제나 선거에 한국을 이용한다 다들 욕하지만 한국 정부와 국회의원도 하는 짓은 다르지 않다. 한국이 그들과 다른 점은 한국은 평상시에 국민 정서를 자극해 본인들의 이득을 취한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사람들은 참 독특하다. 조선에서 존경하는 왕으로 세종대왕과 함께 실리외교를 펼친 광해군을 꼽으면서, 정작 자신들의 왕에게는 명분을 요구한다. 일본에게는 절대 질 수 없다. 일본에게는 굴복할 수 없다. 그냥 앞뒤없이 무조건 무조건이다. 국민들이 고통 받는다면 당장의 적에게 고개라도 숙이는 게 왕, 아니 대통령의 역할이 아닐까. 대신 그 치욕을 절대 잊지 않고 쓸개를 핥으며 다시는 상대에게 고개 숙일 일이 없도록 조용히 도광양회 하는 것이 진짜 리더가 아닐까. 하지만 그 경직된 자세가 이미 해외에 까지 명망이 높은 우리 문 대통령께서 과연 그런 유연하고 실리적인 행보를 펼칠까. 자신의 핵심 지지층이 원하는 바가 아닌 국가를 위해 용감히 움직일 수 있을까. 미래와 실리 대신 과거와 명분에 집착하는 그 모습은 다들 존경하는 광해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금 기업들은 초비상에 들어갔는데 문 대통령은 하필 이 타이밍에 "기업들에게 공정 경제"를 언급하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부는 이 사태를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고 말하지만 어느 바보가 그걸 믿겠는가. 미리 정부가 대비하고 있었다면 이제 와서 부품 소재 산업에 1조 원을 지원한다는 말 대신 "이럴 것에 대비해 관련 산업에 1조 원을 지원해오고 있었다"라고 말했을 것이며 사태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재용이 급히 일본으로 날아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정부와 여당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 하지만 구체적 대응 조치는 빠진 알맹이없는 성명을 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다. 결국 정부가 싼 똥의 냄새를 맡고 치우는 건 기업, 국민이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아자아자, 붉은 악마까지 찾으며 일본 맥주 안 먹겠다는 그 넘치는 국민의 에너지(!)를 단순히 맥주 보이콧 보다 차라리 뭔가 창의적인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쏟으면 좋겠다. 어차피 보이콧이 일본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니 그 에너지를 한국 기업에 도움 되는 방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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