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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ul 24. 2019

상류사회(2018)

21세기 한국판 괴작, '못 만든 영화의 시민 케인'의 가능성을 엿보다



어쩌다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걸까. 이제는 별 볼 것 없어진 넷플릭스 바다를 떠도는데 자꾸 타이틀이 눈에 밟혔습니다.


"어디, 얼마나 구렸길래 그 난리였는지 맛이라도 한번 보자"


이 영화는 마치 90년대 아침 드라마를 옮겨 놓은 듯했습니다. 극 중 모든 캐릭터와 연기, 대사는 소름이 끼치도록 전형적이고 작위적이었습니다. 설마? 이렇게 이야기 진행하려고. 설마? 이렇게 연기하려고. 설마? 이런 캐릭터려고. 


"어디 한번 예상해봐. 그대로 따라 가줄 테니."


더 이상의 예상을 주저하게 만드는 설마가 사람 잡는 컷의 연속. 왜 그렇게 사람들이 입을 모아 욕하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하지만 그저 그렇고 그런 망작이었으면 굳이 이런 리뷰를 쓰진 않았을 것입니다. <상류사회>는 다른 한국 영화들이 갖지 못한 독특한 질감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망작'이 아닌 '괴작'이었습니다. '괴작'. 네, 이 영화의 미덕은 거기에 있습니다. 



'괴작'은 '망작'과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망작'은 순전히 작품적으로 상업적으로 망하기만 작품, '망했다'는 결과 외 더 돌아볼 여지 없는 슬픈 영화가 '망작'이라면 '괴작'은 망작과 같이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 실패했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독특한 감독의 세계관이나 디테일이 발견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욕만 하고 넘어갈 수 없는 새로운 감성이나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작품.






몇 년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리얼> 역시 저에게는 '괴작'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감독과 주연배우 모두 사회적 능지처참을 당하며 매장되었지만, 저는 다른 한국 영화에서는 보지 못한 새로움을 느꼈습니다. 주류 한국 영화들이 모두 판에 박힌 똑같은 그림과 이야기만 보여줄 때 <리얼>이 보여준 통념을 깬 이미지와 캐릭터 묘사는 고인 웅덩이에 내린 산뜻한 소나기 같았습니다. 네, 물론 <리얼>은 말이 안 되는 부분 천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말도 안 되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용감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감독의 그 뻔뻔함과 용감한 시도가 좋았습니다. 그 상식을 벗어난 캐릭터와 시나리오, 이미지 사용은 마치 기존의 서구 미술 사조를 전복하기 위해 등장한 19세기 말 아방가르드 미술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감독이 <리얼>을 찍으며 프랑스와 트뤼포나 장 뤽 다고르와 같이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과 명확한 의도를 갖고 폭력과 조폭, 정치의 고인물이 되어 썩어가고 있는 한국 영화계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제가 궁예가 아닌 이상 감독 본인의 의도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작품의 내적 완결성 만을 볼 때 일관성이 결여되고 수많은 요소가 충돌하는 작품의 거친 결을 보면 분명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온 그 괴이하고 새로운 결과물이 준 충격은 꽤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영화 문법으로 보자면 너무 황당해서 관객을 우롱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지만 살짝 다른 영화적 시선으로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이 작품을 보면 <리얼>이 주는 아방 가르드 한 기괴함은 B급 영화로 충분히 즐길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온 국민이 하나 되어 물고 뜯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가혹한 비난과 조롱이라고 느꼈습니다. 대체 영화라는 매체가 뭐길래, 감독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그렇게까지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을까요.






이쯤에서 이 글의 부재에 왜 '못 만든 영화의 시민 케인'을 언급됐는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못 만든 영화의 시민 케인'은 2003년도 제작된 토미 웨소 감독의 <더 룸 The Room>을 일컫는 유명한 말입니다. <시민 케인>은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영화 평론가들이 위대한 영화에 항상 1위로 올리는 작품이죠. 그런데 못 만든 영화의 시민 케인이라니. 진짜 못 만들었는데 그것이 아이러니하게 어떤 예술적 가치를 지녔다는 의미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 영화 <더 룸>은 뭐라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엉망진창입니다. 캐스팅, 캐릭터, 스토리, 플롯, 대사, 프로덕션 디자인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구석이 없어요. 고등학생이 캠코더로 대충 찍어도 이만큼은 찍을 것 같은 영화. 제작 의도 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영화. 1980년대 아침 드라마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 영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록키 호러 픽쳐 쇼>와 같은 컬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앞뒤가 하나도 안 맞고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너무 말이 안 돼서 보는 사람을 기가 차게 만드는 <더 룸>의 무모함과 비정형성에서 관객은 어떤 독특한 쾌감 같은 걸 느낀 것입니다. 기존 영화 문법으로 보면 당장 사형 선고받아 마땅한 이 영화는 한번 어디까지 가나 보자 마음의 빗장을 조금 여는 순간 진정한 B급 영화로 거듭났습니다. 사실 B급 영화의 미덕이 그것이기도 합니다. 매끈하고 잘 빠진 할리우드 문법과 표현을 발칙하게 비틀고 전복시키는 것. 동어 반복하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에 질린 관객은 병맛 B급 영화가 주는 괴이한 발랄함에서 신선하고 새로운 영화적 가능성을 맛볼 수 있습니다. 



B급 영화는 겉보기에 엉망진창처럼 보여도 그 바탕에는 기존의 영화 문법을 파괴한다거나 말도 안 되는 멍청함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감독의 의도와 설계의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더 룸>의 미덕은 이 영화의 '못 만듦'이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마추어 감독인 토미 웨소가 나름 최선을 다해 멋진 영화를 찍어보려 했던 결과물이 <더 룸>이었던 것이죠. B급 정서를 지향하지 않은 영화가 의도적으로 영화 문법을 비튼 다른 B급 영화보다 더 진한 B급 냄새를 물씬 풍기게 된 이 기막힌 부조리. 이 기막힌 운명의 장난이 <더 룸>을 '못 만든 영화의 시민 케인'이라는 명예의 전당에 올려놓았습니다. 





뉴욕에서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더 룸>의 상영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매번 극장은 만석. 팬들은 일회용 수저를 한 봉지 싸들고 와서는 영화에서 수저 이미지가 등장할 때마다 "Spooooooon"을 외치며 스크린을 향해 일회용 수저를 던집니다. 영화에서 물이 등장할 때마다 "Waaaaaaateeeerrrrrr"를 외치고 "Hi, Maaaaark" 같은 대사들을 크게 따라 하며 박장대소를 합니다. 영화 <더 디제스터 아티스트>는 <더 룸>이 어떻게 제작됐으며 감독과 주연을 맡은 토미 웨소가 어떤 인물인지 아주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께 추천드립니다.


아래는 팬들이 <더 룸>을 어떻게 즐기는지 상영회를 찍은 유튜브 영상입니다.

 

https://youtu.be/3Ko8v6YD_bM






참 멀리도 돌아왔습니다. <상류사회>를 보면서 <리얼>이 떠오르기도 하고 <더 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참 기가 막히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영화를 보면서 실소가 피식피식 나오던 저의 반응은 어느 순간 "뭐지 이 영화?"를 지나 이내 큰 웃음으로 변해갔습니다. 아무리 봐도 사회비판적 드라마인데 밑도 끝도 없는 비현실적 캐릭터와 설정, 대사, 연기에 말 문이 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캔버스 같은 하얀 판 위에 오일을 붓고 그 위에서 섹스를 즐기며 "예술은 말이 필요 없다"는 밑도 끝도 없는 대사를 날리고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란 말도 아닌 말을 하는 정체불명의 일본인과 섹스를 하며 포효하는 윤제문.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괴상한 복장을 한 채 기업가를 패대기치는 그 캐릭터의 정체. 아무 맥락 없는 그 설정이 대체 어디서 온 건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의 비서는 어떻습니까, 대체 왜 저런 포즈를 취하고 있고,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고, 왜 저렇게 바닥에 앉아 타이핑을 치고 있고, 왜 저런 말투로 저런 대사를 하는지 이해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박해일은 대체 어떤 캐릭터인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고, 윤제문과 라미란은 이 영화가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미리 알고 있는 것 듯 모든 걸 체념한 채 자신을 내려놓고 연기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혼돈의 초현실적 프로덕션에서 수애 씨는 최선을 다해 연기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 속 모든 배우가 이 영화의 끝을 알고 있지만 오직 혼자만 모르는 듯 혼신을 다하는 그녀의 연기. 그 순진과 순수, 그 사이 어딘가에서 보인 수애 씨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상류사회>에 괴이한 레이어를 더하며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빛과 컬러 톤은 변화무쌍하게 변화합니다. 어떤 씬은 '2% 부족할 때'의 뮤직비디오나 CF 속 한 장면 같았고 몇몇 씬은 놀랍게도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 조명과 빛, 90년대 멜로물에서 여주인공을 더 이쁘게 보이기 위해 인물을 살짝 뿌옇게 만드는 조명과 빛으로 수애를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윤제문이 프로레슬러 복장을 하고 기업가를 때려눕히던 시퀀스의 마지막 쇼트에서는 느닷없이 더치 앵글(프레임을 비스듬히 돌려 찍는 촬영)을 써서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니, 지금 이 쇼트에서 왜 이런 앵글을?" 밑도 끝도 없는 이 앵글 사용에 촬영감독에게 이메일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 이 영화에서 딱 한 번 들어가는 더치 앵글이 다른 쇼트도 아닌 이 쇼트에 들어간 이유가 대체 무어냐. 





이 영화의 마지막. 윤제문의 비서는 어느새 윤제문과 캔버스 위에서 오일 섹스를 벌이던 하마사키 마오의 비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일본인은 윤제문이 벽에 걸어놨던 '오일 섹스 미술품'에 빨간색을 덧칠해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 정체불명의 일본 여인이 누구인지 일체의 언급이 없습니다. 그녀가 잘 나가는 AV배우 인지, 아시아의 상류층을 상대하는 인터네쇼날 고급 콜걸인지, 아니면 미술가인지 일언반구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녀가 윤제문의 비서를 대동하고 있고, 전시회를 하고 있는지 야속할 정도로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어느 씬에서는 구구절절 들어가는 설명이 어느 씬에서는 헌팅남을 매섭게 바람 맞히는 미스코리아 미의 도도함처럼 극도로 말과 설명을 아껴 관객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시킵니다. 아니 애초에 왜 그 캐릭터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었어야 했을까.. 전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화룡정점은 마지막 쇼트. 예술이 뭐냐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하마사키 마오의 말을 영어로 옮겨 대답하는 김 비서의 외 마디.


"Art is ..(pause) SHIT."


들판에서 길 잃고 헤매는 들쥐를 발견한 매의 눈처럼 매섭게 카메라 렌즈를 쏘아보며 던지는 김 비서의 이 한 마디. 영화 내에서 아무런 캐릭터 묘사가 없어 마치 존 윅처럼 미스터리한 그녀지만, 강렬한 아우라를 풍기는 김 비서의 그 마지막 대사에 두 손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독에게 수건을 던지고 항복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없는 것 천지의 이 괴랄한 영화를 끝내는 마지막 대사가 "Art is shit"이라니. 과연 감독은 무엇을 의도했던 갈까. 예술에 환멸을 느끼는 감독 자아의 투영일까 아니면 <상류사회>를 향한 자기 비하적 농담일까. 알 수 없습니다. 이 마지막 대사를 내뱉는 김 비서의 태도. 그 강렬한 눈빛 뒤에는 슬쩍 조롱이 배어납니다. 감독은 이 마지막 대사를 하는 김 비서에게 과연 어떤 연기 디렉션을 줬을까요. 정말 궁금한 것 천지입니다.





분명 이 영화는 한국인의 부와 권력을 향한 욕망의 치부를 드러내는 비판적 메시지를 던지는 꽤나 무거운 영화입니다. 그런데 민망할 정도로 뻔한 이야기 전개와 틀에 박히고 진부한 대사와 연기는 그 정도가 지나쳐 극이 점점 절정으로 치닫으며 심각하게 전개되는데 캐릭터가 무슨 행동을 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극 중 누구도 웃고 있지 않은데 그 연기와 연출의 바탕에 아주 은밀하고 교묘하게 코미디가 깔려있는 느낌. 하지만 감독이나 배우 누구도 애초에 이런 블랙코미디를 의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의도한 것과 의치 않은 것 사이의 미묘함. 진지한데 웃긴 코미디, 아무도 웃고 있지 않고 웃기려 하지 않는데 웃긴 코미디. 이 부분이 <상류사회>가 <더 룸>과 닮은 부분입니다.



물론 <더 룸>에 비하면 <상류사회>는 훨씬 더 주류 영화 문법에 근접해있고 예산도 많이 쓰였으며 유명 배우들이 대거 투입되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 영화는 <더 룸>만큼 직접적이고 강렬한 메가톤 B급 펀치를 던지지 않지만 은연중에 슬쩍슬쩍 집요하고 은밀하게 배어 나오는 병맛의 B급 정서가 있습니다. 감독은 절대 의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리얼>처럼 눈먼 중국 예산을 끌어다 쓰지 않는 이상 <상류사회>에 들어간 80억이라는 예산은 수익을 무시할 수 없는 예산 규모입니다. 그런 상업 영화에서 느껴지는 은밀하고 미묘한 B급의 맛.  <상류사회>가 지닌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B급 정서는 어쩌면 상업성과 예술적 자아 사이에서 갈팡질팡 갈피를 못 잡은 감독의 연출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뭐가 됐든 마음을 조금 더 열고 이 영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류사회>는 영화의 주제와 상관없이 뜬금없는 디테일에 꽤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감독이 원한 바가 그건 아닌 것 같지만 말이죠.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화는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는 것이고 어떻게 즐겨야 하는 걸까요. 미물에 불과한 저의 주제넘은 생각이지만 한국 관객은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나 합니다. 모든 캐릭터의 행동에는 정합성이 있어야 하고 모든 씬은 개연성이 맞아야 하고 전하고자 하는 확실한 메시지, 특히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있어야 해서 판타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잣대가 할리우드 영화에는 느슨한 반면 한국 영화에게는 몹시 매섭습니다. 한국 관객이 한국 영화를 보는 기준은 말이 되냐 안 되냐, 감독이 하려고 하는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뭐냐가 영화의 지상 과제이자 최종 목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 오직 하나의 잣대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술을 보는 가장 어리석은 자세는"뭐가 잘못됐는지, 어떻게 속이는지 찾아내겠다"라고들 하죠. 내가 마술사 지망생이 아닌 이상, 눈 앞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마술은 그저 즐거운 쇼로 즐기면 되는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 많은 분들이 SF나 액션 영화를 볼 때도 역사적 고증이나 사실 관계, 개연성과 핍진성을 세세히 따지며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모두 갖춰지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세상에 모든 걸 갖춘 완벽한 영화는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액션 영화라는 장르가 그런 세심한 디테일과 작품성, 정합성을 위한 장르가 아닙니다. 내적 완성도가 조금 떨어져도 관객이 영화를 보는 동안 세상의 시름을 잊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면 그것으로 액션 영화는 그 소임을 다한 것이며 그것이 제대로 영화를 관람한 것입니다. 





눈에 힘 조금 빼고 주먹과 어깨에도 힘 좀 빼고 조금 더 느긋하게 너그럽게 영화를 보는 건 어떨까요. 조금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멋지면 멋진 대로 액션 영화를 볼 때는 액션 영화를 제작하는 의도에 맞게 그 정도의 기대치로, 예술 영화를 볼 땐 그에 맞는 기대치와 시선으로 본다면 영화가 의도한 재미를 조금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는 정말 많은 이들의 고생과 노력, 자본이 투여됩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해서, 재미가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내 정치적 성향과 다르다고 해서 필요 이상의 격한 감정적 비난을 쏟아붓는다면 많은 이들의 창작의욕이 떨어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영화를 창작하고 투자하는 이들은 그런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창작성과 도전정신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영화에 대한 사회적 비난 수위가 높을수록 투자나 제작하는 이들은 더 먹힐 만한 영화, 튀지 않는 영화만 찾아 투자하려 할 테고, 감독과 작가 역시 창작 활동을 함에 있어 자기 검열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결국 이 나라는 뻔한 영화만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갑갑한 환경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의 사회 분위기나 제작되는 영화들을 보면 한국 영화계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린 항상 말하지 않았나요, 실수와 실패가 용인되는 사회에서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다고.



한국 국민은 전 세계에서 영화 많이 보기로 소문한 국민입니다. 이 작은 나라의 영화 시장이 무려 세계 5위 수준입니다. 세계 5위의 거대한 영화 시장을 가진 나라치고 만들어내는 영화들이 항상 뻔하고 조악하지 않습니까.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영화를 제작하고 투자하는 이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관객인 우리가 영화를 소비하는 자세도 조금 달라져야 합니다. 영화에서 정치 찾는 것도 조금 자제합시다. 교과서나 뉴스 보듯 경직되지 말고 힘 좀 빼고 조금 더 느긋하게, 조금 더 너그럽게 영화는 영화로 그저 재미있게 즐깁시다. 기대보다 덜 하거나 재미가 조금 덜 해도 적당히 비판합시다. 조금 분위기가 과하다 싶으면 나는 자제하는 성숙함도 보여줍시다. 한국의 영화인들이 조금 더 용감하게 새로움에 도전할 수 있게 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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