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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Feb 11. 2020

And the oscar goes to...

<PARASITE>


아카데미 시상식은 모든 영화를 사랑하는 이에게 꿈의 무대입니다. 언제나 여러 비난에 시달리고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영화제(혹은 시상식)가 있지만 아카데미 수상은 영화인에게 있어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의미와 가치를 갖습니다. 그 무대에 선다는 것은 곧 자신이 속한 분야의 최고 중 한 명이자 적어도 영화 산업에서 만큼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것을 인정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물론 개인마다 인식의 차이는 클 것입니다, 영화에 상업성을 배제하고 오롯이 순수한 예술로만 접근하는 이에게 아카데미 시상식은 상스럽고 천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저는 학생 때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을 꼭 챙겨봤습니다. 사정이 허락하면 학교나 일을 빼먹고, 그렇지 않으면 업무 중에 힐끗힐끗,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온갖 곳을 찾아서 시상식 영상을 구해봤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제게 어떤 영혼의 충만감(!)을 주었습니다. (상업)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 최고의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 다른 영화인들을 향한 존중과 존경이 시상식에서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영화와 상관없는 아무 것도 아닌 저이지만 가끔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아, 영화를 좋아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습니다. 그런 아카데미 시상식은 일 년에 한 번 연혼의 충만을 느끼는 매우 귀한 기회였죠.


영적 충만함(!)도 좋지만 항상 들었던 바람은 언제 한번 한국 영화를 시상식에서 볼 수 있을까였습니다. 작품상, 감독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미술상이나 분장상 후보라도 한국 영화가 오르는 모습을 보면 소원이 없겠다,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매년 느껴왔었죠.



작년 <버닝>이 미국에서 꽤 호응을 얻으면서 외국어 영화상의 예비 후보에 이름을 올렸을 때 잠시 큰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본상 후보에 오르지 못하면서 결국 "그러면 그렇지"가 되었드랬습니다.



2019년, <기생충>은 <버닝>과 확실히 미국에서 체감되는 인기와 반응의 정도가 달랐습니다. 여러 매체들과 팟캐스트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다"는 찬사와 함께 수많은 매체들과 유튜브 채널이 잇따라 관련 정보와 리뷰를 쏟아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파급력은 실로 거대해져서 미국 내에서 (과장 좀 섞어서)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기생충>을 본 자와 안 본 자로 나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영화를 기술적으로 분석하는 채널들에서도 <기생충>을 본격 분석하는 영상이 점점 눈에 띄고, 댓글이 (무서울 정도로)온통 찬사 일색인 상황을 보면서 "뭔가 일이 벌어져도 벌어지겠구나" 심상치 않다 느꼈습니다. 여기저기서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받아야 한다 주장이 조금씩 불거져 나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막연히 바람에 불과했죠.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의 날짜가 가까워지고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의 주요 부문에서 <기생충>이 수상하면서 연기처럼 실체 없던 '막연한 바람'들에 점점 뚜렷한 윤곽이 잡히고 단순한 바람이 아닌 가능성으로 모습을 변모해갔습니다. 



1월이 지날 무렵부터는 <1917>과 <기생충> 중 누가 더 아카데미 작품상에 가까운가를 놓고 저울질을 하는 유력 매체와 팟캐스트가 하나 둘 눈에 띄게 시작했습니다. 촬영상에 '로저 디킨스', 여우주연상에 '르네 젤위거', 남우조연상에 '브래드 피트', 남우주연상에 '호아킨 피닉스'가 이미 기정 사실이 된 것처럼 '외국어 영화상'이 <기생충>에 돌아갈 것은 당연한 '사실'이 된 가운데 미국의 현지 언론들은 점점 '감독상'과 '작품상'에 <기생충>을 거론하는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거의 대부분 일치했습니다. 다양한 시각으로 <1917>과 비교하면서 <기생충>이 낫다 하면서도 정작 최종 예상은 '작품상'과 '감독상' 만큼은 아카데미의 보수성 때문에 <기생충>은 힘들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고, 저도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도 남겼었죠. 


https://brunch.co.kr/@josetmojito/163



한편 무게감이 있는 '배우 조합상' '작가 조합상' '감독 조합상' '비평가상' 등이 <기생충>에 손을 들어주면서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습니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죠. 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이 굉장히 진보적이고 작품 내적인 면을 주로 고려하는 반면 아카데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8,000여 명으로 구성된 아카데미 회원들의 대부분 구성은 꽤 높은 연령대의 백인 남성. 그 인구 분포가 갖는 보수성과 경직성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 예전과 달리 다양한 작품 외부적 요소와 시상의 밸런스도 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보수적이지만 한편으로 예측이 쉽지 않은 아카데미입니다. 유색 인종 중심에 예술 영화에 가까운 <문 라이트>에게 작품상을 주면서 아카데미가 변화하는 것인가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작년 모두가 작품상으로 예상했던 <로마>를 떨어뜨리며 (만만하게 보지 마라)그 보수성을 재입증(!) 하기도 했죠. 그런 무수한 사례가 있기에 유력 매체들은 <기생충>을 응원하면서도 수상 예상의 문턱에 다다르면 결국 <1917>의 관문을 통과한 것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각본상(feat. 대충격)


너무 놀랐습니다. 지난 <라라랜드> 사건처럼 사고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각본상'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 개인적으로 단정 지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 전 '작가 조합상'에서 각본상을 <기생충>에 준 것을 보며 "야, 이건 진짜 큰데" 싶기도 했지만 아카데미가 차라리 감독상을 주면 줬지 각본상을 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매우 당연히 <원스 어폰 어 타임..>과 <결혼 이야기>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작품상보다 더 큰 충격을 준 부문이 바로 이 각본상이었습니다. 



감독상(feat. 마틴 형님, 그리고 텍사스 전기톱).


저는 아카데미만큼은 마틴 스콜세지 옹에게 감독상을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은퇴한 '조 페시'를 다시 불러오고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를 한 자리에 끌어 모은 <아이리시 맨>은 마틴 스콜세지를 위시해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주인공들이 마지막 남은 진액까지 짜내 완성시킨 '거의' 최후의 '원기옥'과 같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존경과 권위, 전통을 대단히 중시하는 아카데미가 '마틴 형님과 아이들'이 영혼까지 끌어모은 원기옥에 어떤 형태로든 경의를 표할 것이다, 그 형태로 감독상이 가장 이상적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마틴 옹이 아니라..



봉.

준.

호.



이름이 무대에서 호명될 줄이야.

무대에 올라온 봉 감독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듯 놀란 토끼눈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흥분되어서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봉준호라고?"


"봉준호라고?"


"봉준호?"


방 안을 서성이며 영상을 봤습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놀라움과 흥분은 곧 감동의 쓰나미가 되어밀려들었습니다.


<New Yorker>에서는 금번 찬밥신세가 된 마틴 스콜세지를 '셰익스피어'와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누구와도 비교가 불가한 위대한 감독이자 동시에 이제는 많은 이가 찾지 않는 감독으로 말이죠. 봉 감독의 수상 소감이 찬밥 신세로 전락한 마틴 스콜세지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그런 의도 없이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을 말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라 당신이 쓴 책의 문구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며 자신이 두고두고 공부하고 존경했던 감독이 바로 당신이라는 상찬을 마틴 옹에게 보낸 봉 감독의 수상 소감, 예상치 못한 최고의 찬사에 감격한 듯 보이는 마틴 옹, 그리고 그런 마팅 옹을 향한 관객들의 기립 박수. 감동. 대감동.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모습이라니.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봉 감독의 멋진 수상 소감은 최근 일련의 찬밥 신세와 함께 아카데미 감독상 마저 놓쳐 잔뜩 풀이 죽었을 노장 감독의 면을 세워 주는 동시에 봉 감독 자신도 함께 격이 높아지는 훌륭한 수상 소감이었습니다(반면 호아킨 피닉스의 중언부언 수상 소감은.....). 물론 쿠엔틴 타란티노를 칭찬한 것 역시 굿. 봉 감독이 말한 대로 쿠엔틴은 봉 감독에게 정말 감사한 인물이죠.



Plus



오스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썰어 후보에 오른 모든 감독과 나눠 갖고 싶다는 '미친' 수상 소감. 아아, 그 겸양과 위트의 한 문장은 결국 장르영화와 자웅동체일 수밖에 없는 봉 감독의 캐릭터를 만천하에 알린 강력한 펀치 라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녀 갈등, 온난화, 인종 갈등, 계급 갈등 등을 구구절절 읊어대는 게 트렌드가 된 요즘 그 어떤 피상적이고 재미없고 강박적인 수상 소감보다 영화 시상식에 어울리는, 마틴 옹의 언어로 옮기자면 '시네마적' 수상 소감이었습니다.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텍사스 전기톱' 이야기를 할 사람이 봉 감독 아니면 쿠엔틴 타란티노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그래봤자 쿠엔틴은 앞뒤 안 맞는 말들만 막 주절주절거리다가 내려오겠지만).



작품상


안절부절. 감독상 수상 이후 저는 자리에 가만히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몸은 달아오를 대로 올랐습니다. "감독상까지 받은 이 마당에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내내 유지하던 저의 작품상 예상을 <1917>에서 <기생충>으로 바꿨습니다.


이미 돌비 극장 장내는 감독상 후보로 봉 감독이 호명될 때 한 번 응원의 함성과 술렁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함성과 환호는 작품상 후보로 <기생충>이 호명될 때 더욱 커졌습니다. 아카데미에서 후보가 호명될 때 객석이 술렁이고 응원의 함성이 나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시상자인 제인 폰다 여사님의 호명.



"PARASITE"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는 그 비현실적 순간.



산왕을 꺾은 북산은 결국 남은 경기를 내리 졌지만, <기생충>은 우승을 했습니다. 현실을 이길 드라마는 없는 것인가!







에필로그(feat.약자 서사)


아카데미를 봐오면서 한국 영화가 후보로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매년 바래왔습니다. 작년 <버닝> 때문에 참 실망도 많았습니다. <기생충>은 그런 저에게 정말 큰 기쁨과 행복을 주었습니다. 뭐 저만 그랬겠습니까.


돌아보면 미국에서 <기생충>은 하나의 신드롬이었습니다. 그 성격이 <강남스타일>과 매우 유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디 변방의 듣도 보도 못한 뚱보가 이상한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는데 흥겹기 그지없는 그 낯설고 재미있는 퍼포먼스에 지구촌이 열광했던 그때 그 사건처럼 <기생충>역시 미국 내에서 극소수의 영화 마니아들만 알던 동양의 한 감독이 듣도 보도 못한 스타일과 문법으로 계급 갈등과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그린 영화가 소문으로 알음알음 퍼지더니 어느새 눈덩이처럼 커져 결국 (적어도 영화를 사랑하는)미국인(전 세계 사람들이라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이 이상하리만치 열광하는 현상,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아카데미에서 후보작이 호명될 때 돌비 극장이 응원의 함성과 술렁임이 있는 모습은 적어도 제가 기억하는 한 지금껏 보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하찮게 지나쳤을 그 장면은 사실 <기생충>이 가진 '약자 서사'를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통해 계급 갈등이라는 동시대에 가장 유효한 주제를 할리우드에서는 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장르적 시선과 우화적 스타일로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그 서사를 스크린에 옮기는 영화적 기술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이유로 유수의 해외 매체들이 찬사를 보내면서도 아카데미 수상 결과 예상에 다른 영화를 올렸던 이유는 <기생충>이 결국 할리우드라는 세계에서는 변방에서 온 약자 혹은 언더 독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영화제에서 아무리 날고 기는 감독과 영화라도 험악한(!) 할리우드를 이겨내고 아카데미라는 철옹성을 뚫는 이는 극히 드뭅니다. <기생충>이 호명될수록 돌비 극장에 모인 많은 이들이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보냈던 이유는 그 자리에 모인 영화 관계자들이야말로 할리우드와 아카데미의 벽이 이방인에게 얼마나 높은 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슈퍼스타로 이루어진 산왕을 깨부수는 변방의 이름 없는 학교 북산을 응원하는 농구팬의 마음. 너무 좋은 영화인 것은 알지만 아카데미의 성격 상 주요부문 수상은 힘들 것이라 예상했던 이들이 아카데미의 높은 벽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기생충>을 보며 조금씩 더 힘주어 응원하는 마음. 마지막 작품상 후보로 호명될 때 객석에서 열렬히 나온 그 환호는 <기생충>이 미국 영화 산업 내에서 지닌 약자 서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feat.1인치의 장벽>


<기생충> 신드롬은 미국 현지에서도 하나의 큰 문화적 사건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가 끼친 가장 큰 문화적 영향은 미국인들이 외국어 영화를 기피하는 사회적 현상을 '1인치의 장벽'이라는 간단한 언어로 구체화시켜 파문을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봉 감독의 이 수상 소감 이후 많은 미국의 언론이 관련 이슈를 다루고, 인터넷에서 꽤 공론화되고, "내가 그래왔다.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며 자아비판(!) 하는 모습을 종종 봤습니다. 이 영화 한 편으로 미국 사회가 얼마나 바뀌겠습니까만은 이 영화는 적어도 많은 미국인들이 한번쯤은 자신들을 돌아보게 만든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생충>이 갖는 또 한 가지 의의는(이전과 맞닿아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소수의 시네필이 아닌 더 많은 일반 미국인들에게 할리우드 밖에도 좋은 영화, 흥미로운 영화가 존재하고 있음을 눈 뜨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에게 영어가 아닌 언어, 아시아인의 사회와 문화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이질적이고 낯설게 다가옵니다. 자연히 그런 문화를 영화로 소비하는 것에 있어 상당한 장벽이 존재하죠. <기생충>은 이러한 이질적인 이미지와 스타일, 내러티브를 여러 흥미로운 포인트와 함께 지금 대부분의 사회가 지닌 가장 큰 화두인 계급갈등을 묘사하는 데 사용함으로써 '이질성'을 '새로움'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기생충>은 많은 미국인들이 영화를 즐기는 방식을 확장시킨 매개체로써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꼽을 영화 중 한 편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게 확장된 인식을 갖게 된 이들은 이전보다 비영어권 영화나 문화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변화에서 오는 문화적 수혜는 비단 한국 영화나 문화뿐 아니라 비영어권 전체에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봉준호 감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미국 시장에서 <강남스타일>처럼 '원 히트 원더'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봉 감독의 영화는 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조금 하향 곡선을 타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설국열차>와 <옥자>는 꽤나 실망적이었고 <기생충>도 저에겐 해외에서의 대성공과 달리 크게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니었기 때문이죠. 저에게 여전히 봉 감독 최고의 작품은 <살인의 추억>과 <마더>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 대사건(!)을 통해 그는 프로덕션 전반에 걸쳐 더 많은 재량과 많은 자원을 보장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작은 규모의 영화에서 잇따라 성공한 후 큰 규모의 프로덕션을 맡았다가 감당하지 못하고 사라진 수 많은 감독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똑똑한 봉 감독은 자신의 위치와 역량,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입니다. 달라진 제작 환경과 인지도를 영리하게 활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생충>을 반등으로 다시 한 번 멋진 영화를 뽑아냈으면 합니다. 라이언 존슨과의 인터뷰에서 한 두 편 계획 중인 게 있다고 했는데 어떤 모습이 될 지 기다려집니다. 좋은 작품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끝으로 지금 할리우드는 홍경표 촬영감독의 성공을 필두로 아주 조금씩 조금씩 한국인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대사건(!)이 더 많은 한국인 감독, 크루,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영화팬의 한 사람으로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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