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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May 16. 2020

코로나: 성악설과 성선설, 법과 제도

신천지와 이태원 클럽을 향한 비난, 그리고 정부의 책임에 대해


성선설과 성악설


인간의 본성이 선하냐, 악하냐는 질문은 오래전부터 많은 철학자들이 나름의 관점을 통해 대답해왔던 질문입니다. 과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학창 시절 저는 성선설이 너무 당연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어른이 되면서 성악설로 바뀌었습니다. 어느 결정적 한 방이 관점의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닙니다. 역사와 세계사, 정치를 알면 알수록 도저히 성악설을 외면할 수 없는 어느 시점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이것은 일반론입니다. 지구 상의 모든 인간이 모두 똑같다곤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성악설에 대한 개념을 조금 달리하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성악설은 '악하다'가 아닌 '욕망에 약하다', '욕망 앞에서 악해진다'라고 말입니다. 인간이 악마처럼 '순수하게 사악'해서 아무 이유 없이 누구를 죽이고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다 생각합니다. 다만 욕망 앞에서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인간은 선하기보다 악해지기 더 쉬운 존재, 더 적확히 말하면 악하다기보다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이기심이 강화되고 범위가 확장되면 그것을 또한 악하다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적어도 저에게 성악설은 곧 인간이 선천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교육과 제도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함께 모여 사회와 도시, 국가를 이루는 것을 가능케하는 이중의 장치를 고안했는데 그것이 바로 교육과 제도가 아닐까 합니다(아아, 이 몹쓸 홉스적 세계관이여!). 교육이 다수가 합의하는 도덕과 윤리, 덕목을 어릴 때부터 개개인에게 각인시켜 이기적 자아를 개인적 차원에서 스스로 단속하도록 하는 장치라면, 제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일들을 조정하고 처벌하는 사회적 차원의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합니다. 그 자유의 제한은 남을 해하거나 물건을 훔치는 등의 적극적인 타락(!)은 물론 의도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는 행동,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험하게 하는 행동까지 포함합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봅시다. 우린 왜 음주운전을 법으로 허용하지 않나요. 왜 운전 중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나요. 왜 안전벨트를 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나요. 왜 한 밤 중 해수욕장에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할까요. 나의 행동이 타인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넘어 나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미국과 한국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서방 대부분의 국가는 현재 락다운 중입니다(몇몇 국가 제외). 병원, 약국, 주유소, 식료품점 등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문을 닫았고(식당 및 커피숍은 테이크 아웃 및 배달만 가능) 최소한의 외부 활동을 제외하면 집 안에만 있을 것을 정부에서 권고했습니다(현재 그 조치가  완화되고 있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중국의 우한이나 서방 국가들과 같은 강력한 락다운이 아닙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는 취소 되었다고 하지만 개인들에게 상당한 범위의 자유를 허용했습니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코로나 대유행 초반 대규모 감염의 기미가 없자 정부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종용했고, 곧 코로나는 신천지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그 후 사회는 많은 고초를 겪은 후, 종식이 거의 기정사실화 된 시점에 이태원 클럽 등지를 통해 다시 재확산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신천지와 이태원 클럽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신천지와 이태원 클럽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과 그 당사자들에 쏟아지는 엄청난 비난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 갈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 오랫동안 참고 견뎌 그 끝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일이 이렇게 터져버리니 화가 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저는 또 다른 두 가지 시선으로 이 문제를 보고 싶습니다. 감염자를 비난하는 우리 자신과 정부의 책임입니다.



첫번째 시선, 우리의 비난

신천지를 통해 코로나가 무섭게 확산될 때 사람들은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예배 활동을 강행했던 건 신천지 만이 아닙니다. 무수히 많은 종교단체에서 집회를 강행했습니다. 신천지가 아니었어도 다른 단체나 집단에서 집단 감염자가 나오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습니다(물론 신천지 케이스의 경우 감염자의 증상이 나타났을 때도 신분과 동선 등을 숨겨 이후 역학조사가 쉽지 않았던 것은 분명 큰 문제였죠). 그리고 그때까지도 클럽 등 식당 및 유흥시설 또한 문을 버젓이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앞로 돌려 이태원 클럽 케이스로 와보면, 클럽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은 이미 코로나가 사라진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벚꽃놀이며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커피숍이나 식당, 술집 등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많은 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태원 클럽은 상징에 불과해보였습니다. 딱 재수 없게 걸린 '시범 케이스'같달까요. 이태원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있는 무수히 많은 클럽,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술집과 커피숍, 노래방, 각종 공원 및 기타 공공장소 등 집단감염은 언제 어디서 벌어져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이태원 클럽을 이용한 사람만 욕을 먹을 일이었을까요? 만약 당신이 어제 갔던 그 술집, 그 커피숍, 그 노래방, 그 스크린 골프장, 그 공원에 재수 없게 '슈퍼 감염자'가 있었고, 재수 없게 집단감염이 발생했다면 당신 또한 "대체 왜 말 안 듣고 싸돌아다니냐"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얌전히 하라는 자가격리 안 하고 술 먹고 맛있는 거 먹고 커피 먹고 바람 쐬고 노래하러 돌아다니는 거죠? 


물론 좁은 공간에서 젊음을 발산하며 욕망의 부비부비를 하는 클럽이 커피숍보다 감염의 위험이 높다는 건 인정할만합니다. 만약 대부분 사람들이 모든 다중이용시설이나 공공시설을 자제하고 자가격리 중인 상황에서 터진 일이었다면 이 모든 비난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코로나가 사라졌다는 분위기였고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각자 다양한 유흥(!)을 즐기고 있지 않았나요? 그런 상황에서 이태원 클럽에 엄청나게 많은 욕이 쏟아지는 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혹시 그 비난의 많은 부분이 이태원, 클럽, 게이에서 오는 어떤 부정적인 편견에서 기인된 것은 아닐런지..




두 번째 시선, 정부의 비난 


가. 시민에게 넘긴 정부의 책임과 의무

한국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코로나 조치는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 단체의 집회뿐 아니라 유흥시설의 영업 및 이용에 대해서도 "자제하라" 권고했지 적극적으로 락다운을 시키지는 않았다는 것, 이러한 조치는 정부에게 '면책'의 자유를 주는 매우 달콤하고 편의적인 조치입니다(신천지로 한창 떠들썩할 때 조차 클럽에 줄 서있던 많은 젊은이들이 눈에 선합니다).


정부는 각종 시설 이용 제한을 권고만 했지 강력한 행정력으로 금지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정부와 시는 "신천지에서 그럴 일이 발생할 지 누가 알았겠는가"라며 책임을 회피했지만 신천지는 일본의 '오옴 진리교'와 같은 밀교가 아닙니다. 버젓이 크게 간판을 달고 당당하게 법인 인가까지 받은 엄연한 종교 단체입니다(네, 그간 신천지는 오랜 기간 서울시에 법인 인가 신청을 냈지만 서울시는 허가 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허가는 현 박원순 시장 재임 시절에 났습니다). 각종 지자체장과 대통령까지 나서 연일 신천지를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국민들 역시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과연 정부가 제 역할을 다 한 것일까요?


클럽도 마찬가지입니다. 클럽 및 각종 유흥시설에 많은 사람이 밀집되면 집단감염의 확률이 높다는 건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입니다. 정부는 그런 시설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죠?


정부의 일련의 조치와 반응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내가 사회적 거리 두라고 했지? 안 하는 게 좋다고 했지? 그러게 왜 말을 안 들어". 정부 입장에서 이런 식의 조치와 태도는 일석이조입니다. 국민들이 "정부와 관련자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몇몇 철없고 이기적인 이들이 다 망친다"면서 당사자들 비난하고 사건 뒷수습하는 정부와 관계자들을 더 응원해주니까요. 세상에 이렇게 편한 서버넌스가 있다니. 손을 놓고 있어도 되잖아!



나. 당신이 모르는 편의주의적 행정의 함정

가만히 한번 생각해봅시다. 과연 비난의 화살을 감염자들에게만 돌리는 게 맞는 건가요? 물론 일차적으로는 그래 보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지금 한국은 어디에나 사람들이 많지 않나요? 클럽 같은 곳에 사람이 많으면 위험하단 건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는 일 아닌가요? 어디서 어떤 식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 아닌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감염자만의 잘못일까요? 


제가 위에서 성악설과 제도를 이야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운전 중 휴대폰 사용, 음주운전, 안전벨트 착용을 개인의 자유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법으로 강제하는 이유. 그것은 개인의 행동이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을 때 그 사고를 통제하여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운전 중 휴대전화 이용에 대한 아무런 법적 제재를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로 인한 사고건수가 일 년에 수 천 건에서 수 만 건에 이르게 된다면. 그래서 사회가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면. 단순히 개인의 자유에만 떠넘길 수 있을까요? 많은 예산을 들여 고속도로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졸음운전 쉼터를 만드는 이유 역시 모두 그런 맥락입니다. 개인의 자유에만 맡겨두기엔 너무 많은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인의 삶에 개입을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논리가 코로나 사태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용을 자제하라, 사회적 거리를 유리하라"는 무책임한 슬로건이 아니라 만약 많은 이들이 좁은 장소에 밀집됐을 때, 그리고 그 안에서 마스크 미착용 가능성이 매우 높을 때, 그래서 집단감염의 확률이 높을 때, 어느 지점에서 어떤 정도의 위험이 있을 지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시설 이용을 아예 금지하거나 수용인원의 한계를 엄격히 제한 하는 등 정부가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태원 클럽 내 집단감염 사태 이후 유흥시설에 대한 영업중단 행정명령을 발표하는 회견에서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어 댔습니다. 마치 말 안 듣는 자식 대하는 아빠의 표정. 하지만 그런 공개적인 짜증은 적어도 저에게 뻔뻔하고 무책임한 처사로 보였습니다. 더 나아가 마치 대중의 비난을 유도하는 것이 아닌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사전에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했어야 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무책임에 대해 시민에게 사과를 했어야 합니다. "사회적 거리를 두라"는 권고만 남기고 그것을 지키지 않은 이들을 한심하고 짜증스럽게 여기며 혼내는 건 공무원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편의주의이자 전형적인 꼰대의 모습입니다.




끝으로


애초에 인간이 "사회적 거리를 두라"는 말 한마디에 "네 알겠습니다"하고 복종하는 순한 양이었다면, 그런 해맑고 선한 존재였다면, 대부분의 제도와 형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존 레논의 노래 <Imagine> 속 전쟁이나 폭력도 없는 사랑만 가득한 세계이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도와 법, 형벌은 인간이 최초의 도시국가를 이룰 때부터 이미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곧 사회의 공공의 이익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개인의 자유와 선한 의지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정부는 사회의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제도와 조치를 펼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신천지와 이태원 클럽 내 집단 감염자에 대한 비난, 적어도 국민 서로 간에는 손가락질할 수 있을지언정, 본연의 임무와 책임을 소홀히 한 정부가 자신의 무책임을 몇몇의 방종의 탓으로 돌리고 그들을 비난하는데 앞장서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행동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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