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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Apr 17. 2020

선동과 해명 간의 아득한 거리



약 한 달 전 (지금까지 밝혀진 바)2조 원대의 사기를 친 라임 사태에 청와대가 연루되어 있다는 SBS의 단독보도가 있었다. 진보와 그 어용 언론은 즉각 검찰에게서 녹취록을 몰래 받아쓴 전형적인 '검언'유착이며 그 보도를 낸 기자는 '검찰 받아 쓰기'나 하는 '기레기'라는 선동을 시작했다. 




그 소스(녹취록)는 검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면서도 정확한 출처를 밝힐 수 없어 전전긍긍하는 기자. '그들'의 계속되는 '검언 유착' 선동과 기자를 향한 인신공격. 보다 못한 소스의 주인공, 라임 사태 피해자의 변호사 본인이 나섰다. "그 녹취록을 준 건 나다 이놈들아".




선동의 언어는 간명하고 짧다. 그래서 뇌리에 박힌다. 반명 해명은 길고 지루하다. 복잡한 해명글이 주는 지루함을 견딜 이는 별로 없다. 무수한 거짓뉴스와 말도 안 되는 의혹 제기에 맞서기 위해 이쪽에서 긴 글의 재미없고 복잡한 해명이 이어지는 동안, 저쪽에서는 또 다른 자극적인 이슈들이 비온 뒤 죽순처럼 인터넷를 떠돈다. 사건은 그렇게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 가장 간명하고 자극적인 메시지 한 줄 만을 남긴 채 휘발된다.


본 사건을 밝혀낸 기자는 지난 한 달간 말도 안 되는 선동과 끊임없이 말을 바꾸는 의혹 제기, 그리고 악플에 맞서며 해명의 포스팅을 부던히도 올렸다. 그 무척이나 지난한 일련의 글들은 나에게 큰 인내를 요구했다. 보통 각오(!)가 없었다면 그 길고 재미없는(!) 일련의 글들과 진행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건 속 청와대 행정관은 단란주점 중에서도 하이 엔드(!)인 이른바 텐프로에서 라임 펀드 관계자들과 만나 농밀한 정사(!)를 나눴고, 아름답게 펼쳐진 필드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며 환담을 나눴다. 그들에게서 돈과 '법카'를 받았고, 행정관의 동생은 그 금융회사의 사외이사에 올라 월급을 챙겼다.




그리고 검찰은 법원에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일반인들의 머리에 각인된 것은 무엇일까? 기자가 조목조목 반박한 "지루한 사실"? 아니면 "검찰과 짝짝꿍하며 받아쓰기하는 기레기 기자"? 사람들은 2조 원대 사기 사건에 청와대가 연루돼있고 핵심 관계자인 금융사의 부사장이 해외로 도피하는데 현 정권이 도왔으며 행정관이 구속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니, 라임 사태 존재를 알기는 할까?


조국이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위선적인 인물을 법무장관에 임명했고, 그의 끊임없는 거짓말을 청와대와 대통령과 당 전체가 나서서 두둔했다. 2조 원 대 사기꾼들의 뒤를 청와대가 봐줬다. 대통령의 오랜 절친을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위해 선거에 개입한 청와대 직원 중 한 명이 검찰 조사 도중 30대 꽃다운 나이에 자살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과 귀를 떠도는 건 "토착왜구", "태극기 부대", "세월호 쓰리섬", "기레기"같은 자극적이고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구호이다. 


만약 위에서 열거한 일들이 보수 정권 하에서 일어났다면? 우주정거장에서 놀랄 것이다. 아니 지금 한반도에 무슨 일이 있기에 촛불과 유모차가 가득하냐고.


나라가 이렇게까지 조용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대부분의 언론이 정부의 어용 장님 나팔수가 되어 1970년대 '대한 늬우스'를 내보내고 있는 지금이다. 팟캐스트에서도, 신문과 티비에서도 정부의 업적과 보수의 단점만을 내보낸다. 그런데 정작 그 언론에서 정부를 찬양하는 컨텐츠를 만드는데 여념없는 기자들은 "기레기"라 부르며 보수와 싸잡아 욕하고 있는 이 현상은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언론사는 정부를 두둔하는데 그 기관에서 일하는 '기레기'들은 보수를 위해 일한다는 세간의 자아분열적 믿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렇다. 이미 사람들에게 보수는 곧 부패와 구태라는 관념이 깊이 박혀 버렸다. 외부의 아주 작은 자극에도 그 고정된 관념은 편향으로 작용해 쉬 사람들의 판단을 통제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선동이라는 것을 모른다. 숲에 있으면 숲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선동의 본질은 선동 당하는 개인은 그 사실을 모르며 오히려 정의라 믿는다는 것이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오쪄둥을 믿지 않는 이들을 인민재판하던 이들이 스스로를 정의의 수호자라 일컬었던 것처럼.  




과연 청와대 행정관의 구속을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 현대 정치사의 모든 장관 임명 청문회에서 나온 대부분의 부정부패를 혈혈단신의 몸으로 모두 보여준 부정부패의 화신 같은 인물을 법무장관에 앉히고, 2조원 대 사기 사건의 뒤를 봐주고, 대통령의 오랜 친구를 위해 선거에 개입 했지만 여전히 지금의 정권이 정의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민주당은 총선에서 역사상 최대인 180석을 가져갔다. 


이미 검찰의 금융수사팀을 해체하고 윤석열의 오른팔 왼팔 오른다리 왼다리를 모두 날려버렸지만, 청와대와 여권은 이제 공수처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검찰 길들이기에 들어간다. 청와대와 진보가 관련된 사건이라면 앞으로 이런 소소하고 작은 해피엔딩(!) 마저 볕을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 라임 사건을 받아 공론화시키고 이슈로 만들었어야 할 야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가운데 이 사건을 시작한 SBS 기자는 끝없는 악플과 선동, 힐난과 홀로 싸웠다. 지칠 법도 한데 그는 끝까지 싸움을 놓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 그의 긴 글들을 최대한 꼼꼼히 읽으려 노력했지만, 대충 읽은 적도, 아예 헤드라인과 결론만 읽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빼먹지 않았던 것은 매번 좋아요를 눌었다는 것. 가끔 응원의 댓글을 달고 그의 글을 공유를 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기자에게 힘과 위안이 되겠느냐만은, 적어도 그의 글이, 해명이,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홀로 내뱉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며 누군가 당신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응원하는 있다는 연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지금 사라져 가고 있는 정의를 위해 최전선에서 홀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 단순히 봉급 만이 아닌 윤리의식과 신념, 더 높은 가치와 사회 공동체를 위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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