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se Apr 16. 2020

미스 슬로운, 그리고 한국의 선거



영화 <미스 슬로운> 속 주인공 슬로운은 로비스트입니다. 엄청난 능력을 지녔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선 못하는 짓이 없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인물입니다.


슬로운은 공화당 편에서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거대 로비 회사에서 일하다가 그 반대 진영으로 옮깁니다. 슬로운이 새로 옮긴 로비 회사, 총기를 규제하기 위해 정치권에 로비하는 이 회사는 예산도 인력도 슬로운이 전에 있던 회사에 비할 수 없는, 영세하고 영향력도 작은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직원들은 물론 운영하는 CEO 조차 총기 규제 법안을 둘러싼 로비 싸움에서 자신들이 이길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회사에 들어온 슬로운.


슬로운은 팀원 중 한 명(에스메)이 과거 많은 사망자를 낸 총기 사건에서 생존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TV 생방송 토론회 중 에스메의 이력과 이름을 불쑥 꺼내며 그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도록 합니다. 물론 그녀에겐 상의 한 마디 없이 말입니다. 불리하던 판세를 그 사건으로 반전시키는 데 성공하는 슬로운. 직원들은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지만 자신들을 미행하고 도청하는 것은 물론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팀원을 거리낌 없이 이용하는 슬로운에 대한 불신과 반감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물론 영화는 여러 번의 반전이 더 진행됩니다. 어떻게 영화가 끝나는지는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100% 정치 영화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정치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좋은 영화입니다.








각설하고 주인공 슬로운이 총기를 규제하려는 로비를 위해 팀원(에스메)을 이용한 후 회사의 CEO가 슬로운에게 묻습니다. 

"본인을 불태워서 이기는 건 반대하지 않아. 근데 에스메(슬로운에게 이용당한 팀원)를 이용한다고? (중략) 그런 건 총기를 찬성하는 측에서나 잘하는 짓이지!


그에 대한 슬로운의 답변

"당신네 진보주의자들은 착한 척은 다 하면서 정작 수단에는 안달하죠. 당신네들에겐 내가 필요해요."






한국의 총선이 끝났습니다. 결과는 민주당의 대승입니다. 1980년대 이후부터 줄곧 한국의 "정의, 서민, 공정, 과정, 민주주의"를 위한다고 자처하던 이들이 자신들의 가치와 지지자들의 믿음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련의 사건(조국 사태와 청와대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을 벌였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 저는 조금 놀랍습니다.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이번 총선에서 당선이 확실시된 후 다음과 같은 소감을 말했습니다, 

"나라 다운 나라를 만들겠다"


차라리 "기분이 참 좋다"였다면.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핵심인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이가 여보란 듯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말한 '나라 다운 나라' 소감은 적어도 저에겐 유권자를 향한 뻔뻔한 우롱으로 보여 참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민, 민주주의, 정의, 공정'은 진보 세력이 한국의 현대사에서 오랫동안 표방한 가치이자 레토릭입니다. 적어도 과거 그들이 주변 세력으로서 부패한 권력과 기득권에 항거할 당시에는 그 가치와 레토릭이 온전히 그들의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40년이 지나 시민단체와 기업, 행정, 사법, 입법 기관의 핵심 요직에 앉아 사회 주류를 이루며 권력과 기득권이 된 지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여전히 학생 시절 부르짖던 레토릭에 집착하는 것은 납득이 불가능한 미스테리이자 한국사회에겐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진보의 자기 모순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레토릭이 여전히 먹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영화 <미스 슬로운> 속 미국은 보수와 진보가 서로 '목적과 수단'이라는 두 개의 카드를 하나씩 공평하게 쥐고 있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보수는 목적을 진보는 수단을. 그 '공평함'은 두 세력 간 형성되는 긴장의 시소를 수평으로 만들어주는 균형추 역할을 합니다. 반면 지금의 한국은 진보 세력이 두 카드를 양손에 모두 쥐고 있습니다. 한 패를 이룬 명분과 수단 두 카드는 권력의 절대반지를 만들었습니다. 절대반지를 끼고 있는 이들은 어떠한 부정행위를 저질러도 "그래도 결국 나쁜 놈은 친일 수구세력"이며 "지금 사회가 잘못된 것은 모두 그들 탓"이란 도덕과 정의, 책임 프레임으로 '도덕적 우위'를 유지합니다. 보수는 악마와 같다는 그들은 부정행위가 있을 때면 사과는 커녕 항상 '악마'와 자신을 양립시켜 비교하며 상대적 우위를 강조해왔고 그 절대반지를 낀 전략은 번번이 성공해왔습니다. 이번 총선은 두 카드를 모두 손에 쥔 그들의 일련의 '번번한 성공' 중 또 한 번의 성공입니다.



'절대반지'는 주인의 몸을 상하게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분산되지 않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언제나 부패로 이어집니다. 부디 지금 진보가 지닌 권력의 절대반지가 주인의 몸을 너무 상하게 해서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 손가락에서 빠지길 바라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게 혁신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