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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May 17. 2020

윤미향과 일본 과자

피식과 심각, 그 사이 어딘가



정대협 대표이자 더불어 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자인 윤미향 씨로 한국이 떠들썩합니다. 여러 말로 해명하고 반박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못의 유무 정도 쉽게 알 것입니다.



우연히 윤미향 씨와 일본 과자에 대한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2016년 5월 활동가들과 함께 진행한 사무처 워크숍에서 술을 마시며 찍은 사진을 윤미향 씨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 술상 위에 일본 과자들이 놓여있었다는 기사. 그 기사를 보곤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런 것까지.." 술상에 올라온 일본 과자까지 보도하다니 조금 속좁고 치사하다고 느껴졌거든요.




이성을 잃었던 그때


그런 건 사실 충분히 '그러려니' 웃고 넘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녀가 맡고 있는 직책, 그리고 위안부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의 자리이니 만큼 이런 문제에 민감할 순 있으나, 저는 그런 것까지 예민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그런 것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관용과 여유가 있는 사회였습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말입니다.





작년에 불었던 반일운동을 한번 돌이켜 봅시다. 저는 그 지나침이 상식의 선을 넘어 '광기'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침착하게 대응하고 시민들을 안정시켜야 할 청와대가 오히려 '죽창', '의병', '전쟁' 등의 자극적 언어를 SNS에 쏟아내며 광기의 한 복판으로 뛰어들어 선동의 깃발을 흔들어댔습니다. 사람들은 지금껏 아무 거리낌 없이 잘 마시던 맥주, 잘 입던 옷에 죄책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곳곳에서 "전쟁"도 모자라 "임진왜란"에 "이순신" "유관순" "3.1 운동" 등을 들먹이며 "승리해야 한다" 목청을 높이던 그 모든 일들. 대체 이 전쟁에서 승리의 정의가 뭔가요? 그래서 우리는 승리한 건가요? 아니면 아직도 전쟁 중인 건가요? 아직 전쟁 중인거면 우리가 자신들과 전쟁 중이라는걸 일본은 알고 있는 건가요? 혹시 혼자만 전쟁 중인건 아닌가요?



 

거리낌 없이 "왼손을 거들"던 그때


일본과의 문화 교류는 김대중 정권 합법화되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공공연하게 소비되고 있었습니다. '닥터 슬럼프' '드래곤 볼' '슬램덩크' '아키라' '공각기동대' 'X-Japan' '러브 레터' 등이 대표적이죠. 그 외 많은 애니메이션과 음악, 영화, 게임 등이 합법 아닌 합법은 합법처럼 '몰래' 광범위하게 소비되었습니다. 그 문화들을 즐기면서 누구 하나 자신이 친일이나 천황께 충성한다는 뜬금없는 생각이나 죄의식 따위 없었습니다. '슬램덩크'를 보며 웃고 우는 게 친일행위라고 누가 생각하겠습니까? 'X-Japan'을 들으며 전율을 느끼는 게 토착 왜구나 하는 짓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더운 여름 시원한 '아사히' 맥주 한 캔 마시고 추운 겨울 '유니클로 히트텍'을 입는 것이 전범기에 충성하는 것이라 그 누가 생각하겠습니까.




선동






광복 후 강산이 변한 것만 일곱 번. 전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에 그보다 거대한 세계적 문화 대국이 된 한국, 수 많은 Kpop 가수들 오리콘 차트 1위를 밥 먹듯이 하고 콘서트에서 도쿄 돔을 매진시키는 한국이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이니 항일운동을 해야 한다는 황당한 레토릭은 뻔히 보이는 정치적 선동이었습니다.




자기 검열


자유롭게 일본 문화와 제품을 소비하고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던 한국 사회는 문화 대혁명과도 같았던 작년의 반일운동을 기점으로 급격히 경직됐습니다. 마치 뜨거운 감자처럼 방송, 유튜브, 팟캐스트, 심지어 친구나 지인끼리 만나는 사석에서까지 일본과 관련된 주제를 이야기할 때는 굉장히 조심하고 몸을 사리며 자기 검열을 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죠. 스스로 몸과 입단속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5 공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이 뒤틀린 반일운동과 한국 사회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지만 이번 글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합시다.




그 하찮은 과자 따위





윤미향 씨의 워크숍 테이블에 올라온 일본 과자.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작년의 그 반일 광기가 없었다면, 그래서 한국이 이렇게 일본에 대해 경직되고 신경증적인 사회로 변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그 과자 몇 봉지가 더 이상 쪼잔하고 치사한 과자 몇 봉지가 아닌 어떠한 상징이 된 더 큰 이유는 윤미향 씨 자신이 반일 선동과 그로 인한 정치적 이득에 적극 가담하고 편승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을 강박적으로 일본 문제에 민감히 반응하는 뒤틀린 사회로 만든 반일 선동을 조장하고 그것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 이가 바로 윤미향 씨였기에, 위안부 할머니를 간판 삼아 시민들이 한푼두푼 모은 기부금과 세금으로 운용되는 국고보조금을 횡령하고 국회의원까지 된 그녀였기에, 과자 몇 봉지는 더 이상 단순한 과자가 아닌 현 정부와 윤미향 씨의 위선의 증거가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건 결국 그녀 스스로 자초한 일입니다.



기형적 사회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던 청와대는 작년 벌인 전쟁과 관련해 종전이나 휴전, 어떠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저 지금의 사회를 보며 전쟁이 끝났나 보구나 눈치껏 가늠할 뿐입니다. 다시 사람들은 일본으로 여행을 가고 제품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우린 이제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것인가요?진정한 광복을 이룬 건가요? 식민지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다시 유니클로 입어도 되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 봐도 괜찮은 건가요?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달리 사람들의 내면 어느 한 구석에는 어떤 묘한 죄책감이나 자기 검열이 생긴 듯합니다. 잘못한 것 하나없고 내 돈 주고 떳떳하게 일본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뒤끝이 개운하지 않은 그 애매한 느낌.


제가 생각하는 현 정부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는 자유와 사상의 지평을 넓혀야 할 진보 정권이 오히려 국민들의 특정 행동에 죄책감을 심어버림으로써 자유에 제약을 걸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덕분에 한국은 이제 과자 몇 봉지도 그저 맘편히 먹을 수 없고, 웃어 넘길 수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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