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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May 25. 2020

살아있다는 긍지와 행복, 그리고 욕망

그들의 위선, 나의 죄송스러움



나눔의 집에서 여러 말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할머니와 자원봉사자들이 요청하는 물품이나 서비스의 공급은 항상 미뤄지거나 이뤄지지 않았고, 대부분 끼니들이 할머니들이 틀니를 한다는 이유로 물에 만 밥이었다는 것, 시설에서의 대부분 시간을 하루 종일 TV 앞에서만 보내고 외부 나들이는 1년에 몇 번 나가지 않으면서 후원을 위한 각종 행사에는 꼬박꼬박 참석해야 했다는 것.


"우리는 접대만 하는 기생이 된 것 같어"


한 할머니가 KBS와의 인터뷰에서 실제로 한 말입니다.




윤미향은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작성한 사업계획서에서 할머니들에게 "살아있다는 긍지와 행복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적었습니다. 할머니들은 윤 씨가 이야기한 '삶에의 긍지와 행복' 대신 오래전부터 윤미향과 정의연 및 기타 시민단체의 모금을 위해 국민을 '접대하는 기생'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욕망과 비리를 교묘히 포장한 장밋빛 포장지. 윤미향이 사업계획서에 거창하게 쓴 "삶에의 긍지와 행복"이란 화려하고 정의로운 언어는 약자를 갈취하며 욕망을 채우는 그들의 의도를 교묘히 감춘 포장지입니다. 약자를 내세우며 정의, 인권, 민주의 딱지를 붙여 사업을 성역화시키고, 어떤 비판도 불허하는 그 인권과 정의의 신성불가침 영역 안에서 채워가는 검은 욕망. 그 이중성과 위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윤미향과 정의연 사태는 2020년을 살아가는 진보의 자화상이 아닌가 합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과 정의연의 비리를 처음 폭로했을 그들의 첫 반응은 "그런 적 추후도 없다"는 발뺌과 할머니의 '치매' 가능성을 제기한 음해였습니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의혹과 고발에 그들은 서둘러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후원금의 사용처에 대한 그들의 해명은 거짓말과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교묘히 할머니와 정치 세력 간 커넥션이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이 사건을 정치 이슈화 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곧 계속 불거져 나오져 나오는 비리와 고발이 감당이 안 된다 느꼈는지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사과를 하는 듯 하지만 끝까지 밝혀야 할 정보를 공개하지도 특권을 내려놓지도 않았습니다.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그들은 곧 "적폐 검찰론"을 주장했고, 언론의 보도를 "가짜 뉴스"라 규정 짓고, 수많은 고발을 "정치적 음모"로 내몰며 결국 "기레기의 가짜 뉴스에 사생활이 사라지고 적폐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받는 나는 조국이다"를 시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김어준과 어용 언론은 그런 윤미향의 "자신은 조국"이라는 뻔뻔한 메시지를 강화시키는 스피커 역할을 했고, 진보 지지자들은 그에 조응하여 "윤미향 힘내라"며 후원금을 쏘고, 이용수 할머니의 출신이 대구인 점을 들어 입에 담기 힘든 욕과 함께 급기야 위안부 할머니를 토착 왜구와 친일로 몰아가는 도저히 믿기 힘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윤미향의 태도, 언론의 스탠스, 지지자들의 반응. 사건의 본질이 뭐든 결국 "정치 음모", "적폐 검찰", "기레기", "조국 찬양" 레토릭이 이어지는 일련의 진보 레퍼토리, 결국 '윤미향 사건'은 최근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진보 진영 특유의 비리와 부패를 또 한번 드러내고 있는 대한민국 진보의 민낯입니다(그런데 여성 단체들이 할머니들이 아닌 윤미향을 감싸고 도는 건 여성 단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가 아닌가요?) 

- 수정: 정부와 국회에 진출하고 많은 단체의 수장을 맡고 있는 이들이 정의연과 정대협 출신이며 정의연과 정대협은 여성 단체의 상징과 같은 존재로서 출세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들이 약자인 할머니 대신 비리를 저지른 정의연을 감싸고 도는 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차치하고 저는 할머니들을 이용한 윤 씨를 향한 분노보다 할머니들에 자꾸 더 마음이 쓰입니다. 감춰져 있던 위안부가 세상에 드러나고 30년. 꽤 많은 정부 지원금과 후원금이 단체에 간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할머니들이 간간이 인권과 정의를 위해 노력하시면서 남은 여생은 보람되고 행복하게 살고 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 허무러져가는 단칸방에 살면서 시설에서 하루 종일 무료하게 TV 만 보고 여기저기 행사에 끌려다니면서 '접대하는 기생'으로 스스로 여기며 남은 삶을 보내고 계시다는 건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처음 위안부가 세상에 알려지고 본격적인 관련 활동이 시작될 시기만 해도 할머니들은 희망과 열정이 있으셨을 겁니다. 보수적이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애써 감추고 싶었던 과거를 세상에 드러내놓는 건 참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노구를 이끌고 행사를 다니며 위안부와 관련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면서 보람도 느끼셨을 겁니다, 국민의 높아지는 관심과 후원금이 정의와 인권을 위해 쓰이는 한편 본인들의 처우 개선에도 일정 부분 돌아올 거라 당연히 기대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행사 횟수와 모금 액수는 많아지지만 행사의 주인공인 본인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지만 그들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는 관련자들은 금전적으로,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들이 얼마나 큰 배신감과 회의를 느끼게 됐을지.. 이제 과거의 아픈 기억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조용히 삶을 살고 싶지만 끊임없이 대중 앞에서 서서 개인의 아픈 과거를 이야기하기를 강요받을 때 느꼈을 수치심과 자괴감이 얼마나 컸을지.. 그런 하루하루가 1년이 되고, 5년이 되고, 10년이 되면서 이제는 희망은 커녕 이용당하는 것에 조차 지치고 무기력해져 단 몇 푼의 돈이라도 받고 쉬고 싶은 할머니들을 "그 돈을 받으면 '배반자'와 '기생' 되는 것"이라며 만류하는 시민단체 사람들을 보면서 할머니들은 어떤 참담한 심정이었을지. 그 곡절의 세월 30년. 저는 도저히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고 죄송스러워집니다.




치욕과 분노의 일제시대, 그리고 30년의 또 다른 좌절, 이제는 지원금 몇 푼 받고 쉬고 싶으신 할머니들께 "그 돈 받으면 기생되는 것"이라며 끝까지 다그치던 이들. 할머니들 스스로 기생으로 느끼며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 건 윤미향과 정의연, 정대협 및 기타 시민단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자의 서사를 이용해 국민들의 동정과 분노를 조장했습니다. 그들에게 화해와 용서는 애초에 비즈니스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가치였습니다. 이미 깊은 상처를 안고 계신 할머니들의 내면을 헤집어 놓고, 잊고 싶은 과거를 끄집어내 이야기하도록 종용했습니다. 그것이 사회와 할머니들께 좋은 것이라며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행사에 참석시켰고 화해가 아닌 분노의 목소리를 내도록 할머니들을 이용했습니다. 그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은 비즈니스와 출세를 위한 상품이고 외부의 비판과 견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성역화 작업의 도구였습니다(저는 차마 할머니들에게 앵벌이라는 말은 못 쓰겠습니다). 




할머니들의 인터뷰와 현재의 삶을 보면서 그 참담함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지금 할머니들께 가장 필요한 건 평온함이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너무 늦은 것이겠지만 이제라도 남은 여생, 그분들이 원하는 삶, 행복한 삶, 무엇보다 평온한 삶을 사시면 좋겠습니다. 


시민단체의 횡령과 비리. 이 일은 한국이 한 번은 겪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처벌에 머무르거나 단순한 정치 싸움으로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시민 단체의 불투명한 자금 운용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곪고 곪던 고름이 터져나온 것입니다. 정부와 사법, 입법 기관은 모든 잘못을 명백히 밝혀 윤미향과 관련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정부와 국민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수 많은 각종 단체들에 만연한 비리와 횡령을 막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ps.

보수단체와 야권이 이 사건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며 그것이 야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누군가 할머니들을 이용해 비리와 횡령을 저질렀기는 하지만 또한 다른 많은 분들이 할머니들을 위해 봉사하고 일했다는 것, 그리고 그 중심을 이룬 것은 진보 진영이라는 것입니다. 보수는 비판을 하기는 하되 진보가 할머니들과 함께 할 동안 자신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자기반성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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