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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ul 29. 2020

과연 어느 선까지가 '정치적 올바름'일까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질문 #1.

여기 한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남자는 여성이 될 수 없으며, 트랜스젠더 여성이 스포츠 분야에서 일반 여성과 경쟁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고 안전하지 않다"라고 트위터에 씁니다. 이 발언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일까요 아닐까요?


질문 #2.

이 여성은 NGO 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NGO 기관은 위 여성의 발언이 "모욕적이고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재개약을 하지 않습니다. NGO 기관은 옳은 결정은 한 것일까요 아닐까요? 


질문 #3.

이 여성은 NGO 기관을 고발합니다. 자신의 "철학적 믿음"이 억압됐다는 이유입니다.




많은 분들이 예상 가능하듯 위의 사건은 영국에서 얼마 전 실제 있었던 사건입니다. 과연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을 근본적으로 다양성과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관념적 틀이나 기준 혹은 이데올로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이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이다"하는 절대적 잣대는 없지만 두리뭉실하게 '약자'가 자신이 차별받았다, 억압받았다, 희롱당했다고 느낄 경우 그것이 어떠한 형태이든 정치적 올바름의 영역에 포섭됩니다. 


페미니즘의 기본 골격은 약자 서사입니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정복자이자 억압자인 남성의 반대편에 선 약자인 여성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시켜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꾼 트랜스젠더 여성의 권리는? 많은 페미니즘 그룹은 그들의 권리는커녕 존재 조차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전히 '남성'입니다. 그들에게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 만이 여성입니다(이런 믿음을 가진 페미니스트를 'TERF'라고 부릅니다, '헤리 포터'의 작가인 롤링 역시 자신이 TERF임을 나타냈습니다). '성별의 순혈주의'. 숙명여대 입학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죠.



장애인, 여성, 가난한 자를 '약자'라는 이름으로 보호한다면 당연히 성소수자인 트랜스젠더 여성 역시 보호받아 마땅하다는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약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전히 '억압자'이자 '권력자'인 남성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위치에 있든 '억압자'이자 '권력자'인 그들의 권리와 인권 신장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196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이 도래한 이후 무너지기 시작한 기존의 인식 체계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면에 급격히 배치된 근래 몇 년 간 완전히 해체됐습니다. 그 결과 일어나고 있는 '불편의 일상화', '모든 것의 차별화', '억압의 일상화'. 말하고 듣고 보는 모든 것이 불편함과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된 듯한 지금, 이제는 뭐가 진짜 불편함이고 차별이고 억압인지 그 경계선이 완전 사라진 아노미 상태처럼 느껴집니다. "피해자의 눈물이 증거"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지금, 판단의 근거는 객관의 영역을 넘어 주관의 영역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혼돈의 시기. 남들과 똑같이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인식에는 "권력자"이자 "억압자"인 남성은 언제든 무의식 중에 나오는 작은 말이나 행동 하나에 직장을 잃거나, 변태가 되거나, 사회에서 매장당할 수 있는 사회에 내던져졌습니다. 타인, 특히 여성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차별"하는 것은 아닌지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아닌지 "성적으로 희롱"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스스로 말과 행동을 검열해야 하는 칼날 위를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남성들은 (이 글과 같은) 볼멘소리는 할지언정 위태로운 "칼 날 위의 삶"을 거부하고 반대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불편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나야 하는 통과의례로 대부분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특정 집단의 이해나 권력을 위해서라면...?) 



남성은 말이나 행동 하나가 나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도 변변한 변호 하나 못하고 사약을 받아 들이킵니다. 그럼 여성은 어떻습니까? 제가 위에서 언급한 영국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분개한 이유는 NGO 단체를 고발한 여성이 자신의 "철학적 믿음"이 억압당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남성들이 약자(특히 여성)를 불편하게 만들고 억압하고 희롱하고 차별한다고 비난받지만 누구도 "철학적 믿음"을 들며 자신을 변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성도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사회를 강자와 약자,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순간, 누가 더 약자인지를 구분 짓는 "약자의 서열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이 약자 서사에서 권력은 상대적으로 더 약한 자에게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일반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 누가 더 약자인가요. 누가 더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나요. 누구의 권리가 더 높나요.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자신들의 인권이 침해받고 차별받는다고 주장할 때 "그것(차별과 억압의 발언)은 내 철학적 믿음의 자유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요? 만약 그 주장이 정당하다면 남성들 역시 "철학적 믿음의 자유"를 주장해도 된다는 필연적인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내가 당하는 차별은 차별이지만 내가 행하는 차별은 "철학적 믿음의 자유"가 되는 세상. 웃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을 접하면서 분개하면서도 이것이 진정한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회(가치판단이나 행동의 정당성 여부 기준이 완전히 사라진)의 완성인가 싶었습니다. 세상은 참 요지경, 요지경 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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