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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Aug 11. 2020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 정도가 어디인가!


이 영화는 꽤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지만 몇몇 허점들로 '괜찮은 영화'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것이 저의 총평입니다. 하지만 실망할 일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정치와 신파, 한숨과 짜증 없이 본 한국 상업 영화라는 것.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 검사, 국회의원, 민주주의, 정의, 반일(항일), 민족주의 이런 거 없이 영화적 즐거움과 미학에 집중하는 한국 영화, 수사가 아니라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단순히 정치와 신파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의 만듦새가 꽤 훌륭합니다. 설정이나 개연성, 핍진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플롯의 흐름도 이 정도면 꽤 준수합니다(<사냥의 시간>이나 <반도>를 생각해보세요...). 한국 영화의 고질병인 캐릭터가 약한 것도 아닙니다. 혹자는 이정재가 캐릭터 구축이나 변화가 없다고 비판할 수 있겠으나 이 영화는 그것이 충분히 허용되는 설정의 영화입니다. 대신 이정재 캐릭터의 관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 캐릭터가 얼마나 차갑고 잔인하고 강한 인물인지 어색함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둘째는 이 인물이 점점 가까워지고 결국 주인공 앞에 등장할 때의 서스펜스와 스릴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런 인물의 묘사와 전개로는 <터미네이터>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를 떠올려보면 되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단지 악으로부터 구하소서>는 이정재의 캐릭터 묘사를 꽤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관객은 이정재가 황정민과 딸 앞에 등장할 때마다 바짝 긴장하게 되니까요. 이러한 캐릭터 묘사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사냥의 시간>의 '한'을 들 수 있겠네요.



그럼 이 영화의 대표적인 좋은 점 몇 가지를 한번 봅시다.


#1. 연출의 승리 - 1. 서스펜스와 사운드


영화 약 1/4 정도 지날 무렵 문득 들었던 저의 인상은 홍원창 감독이 기본기가 꽤 잘 되어 있다는 것(저까짓게 뭐라고 감독의 기본기를 운운하겠습니까 만은). 우선 대사가 명료하게 잘 들렸고(이런 것까지 언급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무엇보다 극에서 필요한 순간에 효과적으로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제대로 못하는 감독이 정말 많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이야기한 "탁자 밑의 폭탄"으로 대표되는 서스펜스(좀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긴장감'이라는 큰 주제로 보면)를 조성하는 데에는 여러 요소들이 개입되지만 그중 사운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소리'는 관객이 알게 모르게 심리를 조종하거든요. 이 영화에서 홍원창 감독은 극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소리의 중요성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종종 그 의도가 너무 뻔히 드러나기도 하고 조금 과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등 소리의 사용이 거칠다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게 어딥니까, 단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운드가 간과되어 왔던 한국 영화에서는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다만 대사를 제외한 사운드 볼륨이 전체적으로 조금 큰 감이 없잖게 있었는데, 관객의 심리를 조종하기 수월하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거슬리게도 만듭니다. 저에게는 살짝 거슬렸습니다.



#2. 연출의 승리 - 2. 높은 시퀀스 완성도


#1과 이어지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어떤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발생하고 서스펜스가 형성되고 그것이 마무리되는 하나하나 일련의 시퀀스의 완성도가 높습니다. 결국 이 말은 연출력, 즉 감독으로서 지녀야 할 역량이 좋다는 이야기겠죠.



#3. 이정재!


제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제일 좋았던 점은 놀랍게도 이정재의 연기였습니다. 이 영화는 대본이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펀치 라인, 즉 한 신 혹은 시퀀스를 한 줄의 강한(혹은 있어 보이는) 문장으로 마감하는 대사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번번이 실패하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황정민이 그의 상사로부터 딸의 존재에 대해 들을 때, 딸을 만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는 황정민의 질문에 상사는 "그냥 웃어야지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전혀 감흥이 없죠. 실패한 펀치 라인의 전형. 이런 것도 있습니다. 태국 갱 두목이 이정재에게 "왜 그렇게 그 남자를 죽이는데 집착하냐"라고 질문하자 "나도 왜 그러는지 이유를 잊었다"라고 답합니다. 별 감흥 없는 펀치 라인. "이유를 잊은 싸움"은 사실 <고지전>으로 유명한 대사입니다. 지리멸렬한 전투 과정에서 이유를 점점 상실해가는 남과 북의 병사들. <고지전>에서 "이제는 왜 싸우는지 모르겠다"는 영화 전체를 짧은 한 마디로 응축시킵니다. 성공적인 펀치 라인은 이런 것이죠. 하지만 이정재의 대사는 생뚱맞습니다. 관객에게 이정재는 살인과 복수라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이유를 잃었다? 당연히 대사가 안 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그의 대답이 "즐거워서"였다면 더 어울렸을 겁니다. 극 중 황정민을 잡았을 때 "사람들이 애걸하는 표정을 보는 게 즐겁다"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하니까요. 사실 이런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모여 캐릭터를 완성시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허점을 보이는 것이죠. 하지만 다른 한국 영화가 놓치는 것에 비하면 이런 건 애교로 봐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시마노의 광견' 마지마 고로


어쨌든 이 영화의 좋지 않은 대사의 질도 그렇지만 이정재 본인의 대사 연기도 썩 훌륭한 편은 아닙니다. 종종 대사 소화가 힘에 부친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 불쑥불쑥 <관상> 속 '수양대군'이 나타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대사를 하지 않을 때의 연기, 캐릭터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연기는 이 영화에서 매우 탁월합니다. 누군가는 그 연기가 과하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 야꾸자 중에서도 양아치 야꾸자(?)의 매우 과한 스타일링, 게임 <용과 같이> 속 '시마노의 광견' '마지마 고로'(위의 이미지 참조)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링을 한 이정재와 광기 어린 캐릭터가 절묘하게 잘 어우러지면서 과한 연기가 정당성을 얻었다고 느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분명 과한 연기지만 캐릭터와 잘 붙었기 때문에 과하게 느껴지지 않은 연기는 결국 성공적인 연기, 과하지 않은 연기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이정재 연기의 가장 좋았던 점은 격투 과정에서 문득문득 드러나는 그의 눈빛입니다. 제가 어느 영화인가 리뷰를 하면서도 언급했지만, 연기는 정극에서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분노의 질주>나 <스타워즈> 같은 액션 영화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VFX 만 중요시하는데 액션 영화에서도 배우의 연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주연의 연기 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연과 조연, 엑스트라까지 배우들의 주고받고 반응하는 연기가 자칫 붕뜰 수 있는 액션 영화의 세계관과 설정, 상황의 핍진성을 땅에 붙게 만드는데 매우 큰 몫을 하거든요. 



제가 이 영화에서 놀랐던 건 이정재의 눈빛이 분위기를 잡고 대사를 할 때뿐 아니라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칼을 휘두르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여전히 마약에 취한 듯 풀린 듯하지만 "편집증"적으로 상대를 잡아 죽이려는 그 광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짧은 순간에 드러나는 그 연기는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정재 캐릭터에 핍진성을 더해줬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좋은 점이 무어냐 묻는 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정재의 액션 연기라고 꼽고 싶습니다. 성공적인 액션 연기를 평할 때는 대부분 배우가 연기의 합을 어색함이나 부족함 없이 잘 소화하냐로 판단하는데 이정재는 한발 더 나아가 칼을 휘두르는 순간에도 광기 어린 감정선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이정재는 해낼 수 있는 연기의 스펙트럼은 넓지 않은 제한적인 배우입니다. 하지만 그의 스펙트럼과 공명하는 캐스팅이 이뤄지면 누구보다 강렬한 에너지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훌륭한 배우이기도 합니다. <태양은 없다>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 도회적이고 곱상한 모델 배우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던 이정재는 <관상>의 '수양대군'을 통해 드디어 모델 이미지를 지우며 배우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고 다시 <단지 악에서 구하소서>를 통해 '수양대군'을 뛰어넘었습니다.



#4. 정치와 신파가 없다


네, 축하합니다 여러분, 드디어 한국 상업 영화에서 정치와 신파가 없으면서 볼만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기승전'불륜', 기승전'출생의 비밀'인 아침드라마 마냥 소재 불문 기승전'정치or신파'로 귀결되고야 마는 한국 영화에서 그 둘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별 점 하나는 더 줄 수 있습니다.




#5. 최희서의 연기


영화 <박열>로 이름을 알린 최희서는 이 영화에서 짧게 등장하지만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훌륭한 배우분들이 많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최희서가 전도연의 뒤를 이을 여배우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디 앞으로 더 많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봤으면 합니다.








가장 결정적인 아쉬움은... 지루함?


서스펜스도 잘 조성해내고 연기도 좋고 액션도 나쁘지 않고 시퀀스의 완성도도 꽤 괜찮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영화 중반부터 지루함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영화 2/3를 지날 땐 "이 영화 왜 이렇게 길지? 러닝타임이 얼마야?" 생각했다는 것이죠. 




적어도 편집상은 기대할 수 없겠어


그 원인은 편집에 있습니다. 많이 거슬리는 건 아닌데 미묘하게 질질 끄는 컷들이 영화 전반에 걸쳐 지방간처럼 여기저기 들러붙어 리듬을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굳이 없어도 되는 대사 신들도 진행을 저해하지만 대사가 없는 상황에서의 다양한 컷들도 극의 흐름을 방해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카메라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촬영감독인 홍경표 촬영감독이 잡았습니다. 홍 촬영감독은 영화 내내 매우 유려한 미장센을 연출해냅니다. 어떤 컷은 정말 아름답고, 어떤 컷은 "욕심 많이 부리셨네" 눈에 훤히 보일 정도. 하지만 종종 필요 이상으로 컷이 끊기지 않는 신들이 발견됩니다. "예술하고 싶으시구나" 자연스레 느껴지는 컷들. '누아르' 혹은 '하드보일드'적 분위기를 물씬 내고 싶다는 예술가적 야망 혹은 욕심. 그 욕심이 감독의 것인지 촬영감독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런 컷들은 결과적으로 영화 전체의 힘과 긴장감을 끌어내리고 맙니다. 이 영화는 초반부에 간결하게 끊어가며 빠른 속도감을 보이는 반면 후반으로 가면서 느려지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 이 영화는 미장센 욕심 말고도 편집점을 애매하게 끄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감독의 의도가 뭔지, 왜 더 1~2초 더 이른 시점에 다음 컷으로 넘어가지 않는지 의도가 어느 정도 짐작은 됩니다만 그 의도나 정서가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기에 과감히 컷 해야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만큼은 감독이 꽤 욕심을 부린 것 같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과감히 10분~20분 정도 덜어냈다면 긴장감이 더 유지되면서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영화가 끝나는 시점에 저는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을 약 120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 꽤 길다고 느꼈거든요, 글을 쓰는 지금 러닝 타임을 확인하니 108분 밖에 되지 않네요.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리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외 자잘한 아쉬움으로는



#1. 액션 신

액션 신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과한 카메라 트릭이 액션을 망칩니다. 펀치가 상대 몸에 닿는 타격 순간 앞으로 빠르게 감는 건 좀 적당히 했으면 타격감을 배가 시켰을 텐데 과한 나머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들고, <300> 속 액션을 떠올리는 슬로 모션은 촌스럽게 느껴집니다. 슬로 모션은 아예 뺐으면 좋았을 것을. 개봉한 지 10년이 넘은 <아저씨>의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액션이 여전히 최고로 느껴지는 순간.


#2. 아이가 황정민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마술 트릭 하나에 아이가 황정민에게 마음을 여는 신은 도식적입니다. 이미 엄마가 아이를 학교로 등교시키면서 마술 트릭을 할 때부터 "나중에 쓰이겠구나" 예측이 가능합니다. 동전을 이용한 트릭 자체가 문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벼라는 것이 모내기를 하고 충분히 익은 후에 추수가 가능한 것처럼, 황정민의 동전 트릭이라는 동기가 아이에게 유효한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즉 아이가 트릭을 통해 마음을 여는 '추수'를 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모내기를 하고 논을 돌봐주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과정이 생략된 거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이의 행동이 와 닿지 않고 형식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극 중에서 황정민은 왕진 온 의사에게 아이가 통 말을 안 한다고 하지만 극 어디에서도 황정민은 둘의 관계를 진전시킬 만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리저리 데리고 다녔을 뿐이었죠. 얼마 전 있었던 넷플릭스 영화 <익스트랙션>에서도 이것과 똑같은 우(거의 판박이)를 범하는 신이 등장합니다. 아이를 지켜야 하는 용병과 납치된 아이 간 서로 마음의 문을 여는 신. 그들 역시 모내기도 하지 않은 채 추수를 합니다.


#3. 박정민의 존재

사실 아직까지 좀 뜨악하기도 하고 한편 애매하기도 합니다. 굳이 박정민이 분한 '유이'라는 캐릭터가 극에서 존재해야 했을까. 다른 스토리로 전개할 순 없었을까. <레옹>, <테이큰>, <아저씨>과 같은 비슷한 설정의 영화와 비교해도 <다만 악으로부터 구하소서>는 박정민의 등장으로 캐릭터 얼개가 많아집니다. 아이를 지키려는 황정민(1), 그와 대적하는 이정재(2), 애꿎게 그 둘에게 얻어맞는 불쌍한 갱단(3), 그리고 박정민(4). 이렇게 여러 인물과 세력이 얽히고설키는데 108분이 지루하게 느껴진 걸 보면 시나리오가 썩 좋지 않구나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오직 아빠와 갱단 간 양자 대결에만 천착하지만 끝까지 긴장과 재미를 유지하는 <테이큰>이 얼마나 훌륭한 영화였는지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뭐가 됐든 박정민 캐릭터가 만약 반드시 필요했다면 굳이 박정민이어야 했을까. 태국 배우였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남자 배우가 아닌 여자 배우였다면? 박정민이어야 했다면 굳이 이런 코믹한 캐릭터로 설정해야 했을까.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에서 박정민 캐릭터의 존재가 긴장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 역할을 했을 수도 있지만 저는 톤 앤 매너를 해친다고 느꼈거든요. 이쪽(황정민)이나 저쪽(이정재)이나 어딜 봐도 다들 서슬이 시퍼런데 박정민만 나타나면 웃기려 하는 모습에서 간격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여기가 이 영화의 참 묘한 지점이기도 합니다. 박정민의 존재가 또 영화를 못 볼 정도로 톤 앤 매너를 해치지는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나름 극과 좀 붙어 보이기도 하고, 영화 후반 아이를 안고 자동차를 탈출하는 박정민의 모습은 예상치 못한 뭉클함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속 박정민 캐릭터처럼 제가 이렇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게 만드는 캐릭터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 이런 낯섦이 신선하고 재밌기도 합니다.




일단 대충 생각나는 점들은 이 정도입니다. 이 리뷰를 시작하면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영화는 더 좋은 영화가 될 여지가 충분히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극장에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저에게 꽤 즐거움을 줬고, <악마를 보았다>처럼 너무 잔인하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국 영화를 보고 영화 내적으로 이야기할 거리가 많이 생각나는 영화는 정말 오랜만인 점도 좋았습니다. 반복하지만 정치와 신파가 없었다는 점은 백번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ps. 

이 영화에서 꽤 깊은 인상을 줬던 두 신: 

첫째, 새하얀 코트와 커다란 고글을 쓴 이정재의 첫 등장. 

둘째, 아이들이 갇혀 있던 방에서 철 그물을 사이에 두고 이정재와 황정민이 대치하는 신. 철 그물이 빤히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음에도 커다란 칼을 그물 사이로 쑤셔대는 이정재의 모습은 말 그대로 원초적이고 동물적입니다. 어떻게든 상대를 죽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데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그 모습은 그를 정말 동물처럼 보이도록 만듭니다. 감독의 주문이었는지 이정재 본인의 에드리브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영화적인 순간! 근래 본 악인 캐릭터의 모습 중 최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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