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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Feb 05. 2021

기안 84의 만화, 나라가 시끄러울 일인가

숨 막히도록 갑갑한 한국 사회에 대해서


저는 기안 84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의 만화는 한 편도 보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 만화가를 꿈꿨을 만큼 만화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지만, 대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만화는 거의 보지 않게 되었고 그 이후까지 유일하게 본 만화책은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의 <베가본드>와 <리얼> 뿐. 제가 본 웹툰이라곤 <스틸 레인>과 <미생>이 전부입니다. 제가 기안 84를 좋아하는 건 그의 작품 때문이 아니라 <나 혼자 산다> 속 그의 괴인스러운 라이프 스타일, 날 것의 모습 때문입니다. 그의 그런 모습이 모두 연출이었다면 좋아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와 한 때 자취를 함께 했던 만화작가 이말년은 오히려 <나 혼자 산다> 속 그의 모습은 '순한 맛'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일련의 기안 84 웹툰을 둘러싼 사건에 대해 제가 아는 건 미디어에서 회자된 파편적 장면들, 그리고 잠깐 찾아본 몇몇 찬성과 반대의 주장이 전부입니다. 그러니 그의 작품을 두고 가타부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기안 84에 투사된 답답한 한국 사회 오늘의 모습입니다.




거두절미, 본론으로 들어가면 한국은 점점 표현의 자유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점점 갑갑해지고 숨이 막혀옵니다. 표현의 자유가 사라지는 숨 막히는 한국 사회. 이것은 많은 사안에 대해 유보적이고 유연한 입장을 취하려 노력하는 제가 매우 확고하고 강하게 표하는 몇 안 되는 입장 중 하나입니다.


과연 몸을 팔아서 회사에 취직하는 웹툰 속 캐릭터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 일일까요? 하늘 모르고 오르는 집값을 비판하는 내용이 그렇게 욕먹을 일이던가요? 과연 남자가 몸을 팔아서 회사에 취직해도 이렇게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까요? 만약 몸을 판 게 아니라 다른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이었어도 지금과 같은 반응이었을까요? 지금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었어도 부동산을 비판하는 만화가 이렇게 욕먹었을까요? 작가가 기안 84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욕을 먹고 온 뉴스에 도배됐을까요?




몇 년 전 아이유의 앨범 재킷이 아동성애를 떠올린다며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무렵 배스킨라빈스의 어린이 배우가 출연한 CF가 또한 성적인 내용을 떠오르게 한다며 논란이 된 적이 있었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와 김선균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모든 논란(이라 부르는, 사실 몇몇 소수가 일으키는 상식을 벗어난 난장판)은 사실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모두 아무 문제가 될 것 없는 것이었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대다수는 배스킨라빈스의 CF를 보며 "아이고, 아이가 참 귀엽네"하지 성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았을 겁니다. <나의 아저씨>는 상처 입고 피폐해진 두 영혼이 각자가 지닌 마음의 상처를 함께 보듬으며 치유하고 치유받고 성장하는 드라마입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드라마를 보며 가슴 따뜻해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두 사람의 '나이'를 시비 걸며 억압받는 여성의 인권을 떠올리진 않았을 것입니다.


남녀평등이라는 빛 좋은 허울을 쓰고 자행되는 이런 몰상식하고 비정상적인 문화비평(같은 유사 쓰레기라고 저는 부르는)은 양질의 예술적 토양을 만드는 '지렁이'가 아니라 몸을 파괴하는 '암세포'로써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한 때 스쳐 지나가는 일상적 논란에 지나지 않는 그런 비평과 논리가 창작 활동을 하는 많은 예술가들에게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 사회적 논란이 되는 일련의 현상. 그 논란이 비록 일반인의 상식에서 벗어난 "히스테리적 논란"이었다고 결론 난다고 해도, 한 동안 사건의 한 복판에서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당사자인 창작자에게는 극도의 스트레스입니다. 이러한 부담은 자연스럽게 사건 당사자뿐 아니라 다른 창작자들에게도 '자기 검열'의 형태로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런 검열은 캐릭터 묘사와 구축, 사건 진행부터 사소한 대사 하나까지 행여나 논란거리가 불거지지 않을지 우려하게 만듭니다. 더 완성도 높은 작품, 더 재밌는 작품을 위해서 쓰여야 할 창작의 에너지는 조금이라도 "튀거나", "이상해" 보일 수 있는 요소들을 걸러내는데 상당 부분 쓰이고 이런 작품들은 활력 넘치는 '야생마'에서 심약한 '노쇠'로 전락하고 맙니다.




남녀평등과 더불어 요 몇 년 간 새롭게 떠오르는 화두는 바로 "사회 비판 금지". 코미디에서 정치 풍자가 사라졌습니다. 방송은 물론 개인의 사적인 SNS 계정에서 조차 누구 하나 사회나 정부를 거스르는 말 한마디 할라치면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이 모여들어 온갖 욕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그 무차별적인 비난은 당사자가 "제가 경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깍듯이 사과하지 않는 한 계속되고 개인 정보를 유포시켜 결국 사회적 매장에 이르게 만듭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 과정에서 죄의식을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대통령을 지켰다"는 뒤틀린 승리감에 도취되죠. 그 서슬 퍼렇던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도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유머 일번지>에서는 신랄한 풍자가 벌어졌고, 당시 출판되던 각종 '유모어' 모음집에서는 더욱 가혹한 비판과 풍자가 벌어졌지만, '군부 정부'는 내버려 뒀습니다.


조금이라도 지도자나 정책을 비판하면 좌표를 찍고 완장을 차고 우르르 몰려가 "정의의 이름"으로 심판하던 사회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대 중국이나 히틀러 집권기 나치 정권에서나 볼 수 있던 모습니다. 대한민국은 '쥐' 그림을 온 나라에 붙이고 집권 중인 여성 대통령의 나체 그림을 국회에 버젓이 전시하던 표현의 자유가 "젖과 꿀"처럼 흐르던 풍요로운 국가가 아니던가요?(아니 근데 여성 대통령의 나체 그림을 걸던 그때, 아이유의 성인지 감수성을 운운하던 감수성 예민하신 분들은 왜 다들 가만히 계신 거였죠?) 대한민국은 방송에서 공공연히 대통령을 조롱하던 행위가 쿨함과 스마트함, 정의로운 위트로 받아들여지던 정치적 의사 표현의 '비옥한 초승달'같은 문명국 아니던가요? 그런데, 단 4년 만에 그런 자유로움, 다양성, 풍요로움은 다 어디 가고 건조한 모래 언덕만 남은 거죠? 왜 지금의 대통령과 정부, 지금의 한국 사회는 비판하고 풍자하고 조롱하면 안 되는 거죠? 왜 지금 정부는 오직 숭배만 허락되는 "우상"이 된 거죠? 비판을 면제받아야 할 특별한 면죄부라도 갖고 있는 건가요? 우리가 살면서 한 번이라도 우린 "이순신 장군 보유국"이라며 스스로 떠벌이고 외국에 자랑했던 적이 있던가요? 지금의 대통령이 역사적 영웅들보다 더 위대하시고 그의 존재 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자랑스러운 분인 건가요? 가만, 이런 레토릭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적 있지 않던가요.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 일제를 몰아냈다는 전설 속 그 위대한 영도자..


안 그래도 '여성 인권'이라는 미명으로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사회에서 군부 정치 때보다 심해진 '정치 사회 비판 금지'가 더해진 한국 사회. 소수 지지자들에겐 신명 나는 사회, 대다수의 사람은 비판 한 마디 입에 올리지 못하는 갑갑한 사회. 이런 말 하면 여기서 논란이고 저런 말하면 저기서 몰매 맞으며 사과하기 바쁘고 자숙하기 바쁜 한국 사회. 입에 재갈 물리고 눈에 안대 씌우고 두 손 뒤로 묶는 이런 사회에서 무슨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나오겠습니까.




기안 84가 더 논란의 중심에 있는 또 하나의 이유. 그건 그가 바로 "기안 84"이기 때문입니다. 기안의 튀는 행동들은 그를 유명하게 해 줬지만 동시에 엄청난 안티를 만들었습니다. 그를 싫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합당하고 온전한 이유란 없습니다. 그저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기안이가 "숨 쉬고 존재하는 것" 조차 싫은 것뿐. 작가 이말년은 한 때 잠깐 자신이 기안과 함께 지내며 경험했던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웹툰으로 그렸다가 금세 연재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기안에게 가해지는 테러가 너무 심해서 기안이 힘들어하는 상황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에게 가벼운 재미로 느껴지는 별난 행동이 누군가에겐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기안은 대한민국 논란의 삼박자를 모두 갖췄습니다. '남녀평등', '사회 비판', 그리고 튀는 인간 '기안 84'.




우리가 천재라 칭송하고,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라 손꼽는 예술가들은 모두 당대를 지배하던 당위와 금기에 도전했던 사람들입니다. 동시대에 '괴짜' 혹은 '광인' 소리를 들으며 조롱당하고 무시당하고 거부당했던 사람들입니다. 세계사에서 유난히 많은 천재와 예술가를 한 시기에 배출한 도시들이 몇 있습니다. 그 사회는 괴짜와 광인이 맘껏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였습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과거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낡은 구호처럼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한다는 말이 하나의 시대정신(!)처럼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 오히려 더 예전보다 관용이 부족해졌습니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을 매도하고, 내 정치적 믿음과 다른 이를 적으로 규정하고, '이상해' 보이는 이는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구스타프 클림트'나 '파블로 피카소'나 '스티브 잡스'나 '일런 머스크' 같은 천재가 나오지 않는다 자조하고 이유를 애꿎은 교육제도 탓으로 돌립니다. 거리에서 조금만 이상한 사람이라도 볼라치면 눈을 흘기는 '내'가 보이지 않기에 사람들은 엄한 곳에 돌을 던지는 마녀사냥에 매몰되고 맙니다.




저는 언제나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지지해왔습니다. 아무리 과격한 형태라고 해도 '미의 세계'에서는 용서될 수 있다고 믿어왔고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칭송받는 위대한 예술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사회와 타협하지 않고 상식과 고정관념에 저항해왔기 때문이며 시대 변혁의 선봉은 언제나 이러한 예술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언제나 사회 진보의 최일선에서 "당연함"에 의문을 던지고 "정상"의 정의를 파괴해왔습니다. 도덕과 철학, 법과 상식은 언제나 그렇게 예술이 만든 길을 즈려 밟으며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덕의 시녀가 되는 예술은 횟집에서 죽음 만을 기다리는 눈이 쾡한 생선과 다름없다 생각해왔고 그런 저의 눈에 항상 예의 바르고 깍듯하고 올바르게 보이려 애쓰고 대중 앞에서 예술을 하기 앞서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부터 하는 아이돌들이 애처로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억압을 일삼는 사회와 대중이 못마땅하고 거북했습니다. 갑질은 그렇게도 싫어하시는 분들이 왜 단지 아무 근거도 없이 오직 개인의 기분에 따른 "불편함"을 이유로 연예인 위에 군림하며 갑질 하려 하는지, 왜 그런 데서 정복의 쾌감을 얻으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유교적 문화와 세계관은 그렇게도 싫어하면서 도덕과 윤리에는 왜 그렇게 집착하는 것인지 그 모순을 헤어리기 쉽지가 않습니다.




기안 84처럼 남다르고 독특하고 튀는 사람이 많은 사회, 눈 밖에 난 이들을 정으로 쳐내기보다 포용하는 사회가 건강하고 활기 넘치고 재미있는 사회이며 그런 사회가 더 풍요롭고 다양하고 높은 수준의 예술을 가능케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 눈에는 논란이 됐던 기안 84의 컷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여성 혐오가 아니라 자조적인 형태를 띤 시대 비판이라 생각됩니다.


정작 "성감수성"을 잣대로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팬의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채 팬덤 안에서 은밀하게 남성 아이돌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외설 소설과 만화입니다. 하지만 남성을 향한 혐오와 성적 폭력에는 또 예의 그 민감 하디 민감한 감각에 "불감증"이 오는 그 언니들 아니겠습니까. 겉으로는 인간의 권리와 약자를 지지한다지만 인간이 아닌 오직 XX염색체의 생물학적 존재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언니들, 왜곡되고 뒤틀린 페미니즘으로 오히려 사회 혼란과 분열만 조장하는 언니들. 여성 인권이 신장된 지금은 오히려 보통의 여성보다 게이나 트랜스젠더가 더 사회의 억압을 받는 약자 아니던가요. 지난 숙명여대 입학 사건을 보면 확실한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언니들이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합니다(참고로 대한민국의 모든 예술계가 마광수 작가를 "더럽다"며 손가락질하던 당시에도 그를 지지했던 저는 외설적인 팬픽 또한 어느 정도는 하나의 예술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PS. 어쩌면.

대한민국이 기안 84의 일로 들썩이는 또 다른 이유. 어쩌면 이 이슈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예술과 현실을 분리해내지 못하는지, 예술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지독히도 현실적이고 목적지향적인지 드러내는 방증이 아닐까 합니다. 생각해봅시다. 한국에서 예술과 관련한 논란은 언제나 사회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미학적 요소 만으로 이야기되고 논란이 되는 사례가 있던가요. 한국에서 예술의 의미는 "말이 되냐 안 되냐" 혹은 "사회 비판을 하고 있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의도가 선하면 완성도는 눈 감아 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빈번하게 힘을 얻는 사회. 사회비판이나 현실성과 같은 '쓸모 있음'과 별개로 예술은 그 도구로써의 목적성을 떠나 내적 완결성이나 미학적 성취 혹은 순수한 재미 만으로도 얼마든지 자존할 수 있고 가치 있다는 걸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한 의도"가 모든 미적 결함을 용서한다면 이 나라는 조악한 예술로 넘쳐나는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실제로 그렇게 진행 중이고요). 지금의 한국 사회는 조금 여유롭고 느긋하게, 굳이 현실과 결부 짓지 않고 예술을 그저 예술 그 자체로 즐기고 감상하는 연습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특정한 사회 비판적 영화를 보고 관련 성명을 낸다거나, 심지어 경제와 국가 산업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정책을 관련 영화와 연결 짓는 대통령과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서, 예술을 현실과 연결시키는 정서는 이 땅에서 강화될 수밖에 없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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