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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Feb 08. 2021

"내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박원순의 아내, 발 뺌 하는 사람들 그리고 유아기로의 퇴행하는 사회에 대



적어도 한국 사회가 이렇게 뻔뻔하진 않았습니다. 물론 많은 정치인과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잘못을 처음부터 인정하진 않았습니다. 그들의 거짓말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특히 그 잘못이 온 사회에 공개되어 모든 사람이 알게 되는 일은 굉장히 두려운 일일 겁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개인의 비밀스럽고 치스러운 일일 경우,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은폐하려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본능일 것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 개별적이고 다양한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저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본능을 얼마만큼 인식하고 조우하고 이겨내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자들은 말하더군요,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 중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똑바로 마주 보고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것이라고 말이죠. 아이 키워보신 분이나 아이 가까이하는 직업을 가지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어린아이일수록 잘못을 숨기고 싶어 하고 들통이라도 날라치면 일단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 하면서 도망가려고 하는 것 말이죠. 아이를 붙잡고 계속 추긍하면 그때서야 인정을 합니다.


중요한 건 바로 그때입니다. 아이 원래 그런 존재라는 것을 먼저 교육자나 부모가 인지하고, 아이가 한 잘못을 추궁하고 벌만 주는데서 그치는 것보다 "그런 행동이 너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도 너는 살아가면서 많은 잘못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네가 해야 할 행동은 피하기보다 그 잘못을 똑바로 직시하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다. 그것은 사실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매우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런 힘든 일을 용감하게 해내는 과정을 통해 너라는 사람이 비겁하지 않고 멋진 한 명의 어른으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고 이야기해주는 것 말이죠.




본론으로 돌아가서 한국에도 혐의와 의혹을 인정하지 않는 수많은 거짓말이 판쳤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증거가 눈앞에서 나열되기 시작하고 증인이 등장하면 수긍하고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오면 그래도 "내가 했다. 잘못했다" 시인을 하거나 적어도 침묵 형태로라도 인정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정황이 드러나고, 명백한 증거들이 제출되고, 증인이 나오고, 자신이 직접 얘기한 녹취록까지 등장해도 끝까지 발뺌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뉴스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증거들이 나올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매번 말을 바꾸는 그 믿기지 않을 정도의 뻔뻔함이 점점 더 많이 뉴스를 채우고 있습니다(놀라운 건 그들을 감싸고 두둔하는 지지자들이 집회까지 한다는 것). 안 그래도 한국은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던 사회였습니다. 사소한 일로도 고발과 고소가 난무하고 결국 법정에 이르러서야 해결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 보도를 접한 지 제법 오래전입니다. 법원은 신뢰가 사라진 이런 한국 사회를 지키던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누구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법원은 그래도 공정하게 사건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최후의 존재였죠. 언론과 검찰을 적폐로 싸잡아 개혁해야 한다던 이들은 법원까지 정면으로 반박하고 무시하며 개혁 대상 리스트에 올려놓았습니다.




정치인, 흔히 우리가 말하는 공인들의 말과 행동에 품격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법은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행동의 선입니다. 적어도 타인과 함께 사는 사회인이라면 직업이나 성별, 나이를 떠나 누구라도 이것만큼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최소한의 행동 범위를 명시적으로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인 것이죠. 반면 뉴스를 통해 보이는 정치인의 말과 행동은 우리 사회에서 적어도 "예의를 차리는 격식 있는 자리" 혹은 "교양과 양식이 있는 이"라면 적어도 타인에게 지켜야 할 예의의 선,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을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자꾸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연예인이 공인이 아닌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공인, 즉 공적인 인물이라는 의미는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과 활동 내역을 국민은 들여다 보고 제재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공적인 인물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연예인이 세금으로 활동하나요? 그들은 모두 사적 활동으로 개인 돈을 벌어 생활하는 지극히 사적인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활동과 행동을 들여다볼 권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공무원은 세금으로 생활하고 그에 걸맞은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을 질 의무가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만약 그릇된 생활을 하고 있다면 마땅히 제한당해야 합니다. 그런 제한을 연예인도 똑같이 당해야 한다고, 사생활이 파헤쳐지는 게 당연하다고 착각하 분들이 많은데요, 그건 유명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그 관심이 돈벌이의 도구가 되기 때문에 미디어가 악용하고, 또한 대중의 관심이 연예인들이 돈을 버는 원천이기 때문에 그들 또한 어쩔 수 없이 참고 견디는 것뿐이지 연예인의 사생활을 파헤칠 당연한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권리"라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에요. 둘째, 연예인은 예술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전에 기안 84에 관한 글(https://brunch.co.kr/@josetmojito/199)에서도 썼지만 예술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지닌 여러 역할 중 하나는 미를 추구하는 형태를 띠면서 사회가 당연시하는 가치와 규범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도덕, 혹은 고정관념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예술인 것이죠. 그런 예술에게 도덕과 윤리를 강제하는 것은 말 달리지 못하게 하는 것, 비행기 날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예술과 아름다움을 통해 사회에 혼란과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은 전혀 그렇지 않죠. 공공의 질서를 안정시키고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정치인을 공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예의와 격식의 최소한의 선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지금 한국 사회는 그 선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에도 동의하실 것입니다. 누가 봐도 정황과 증거와 증인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끝까지 발뺌하고 자신이 했던 지난 거짓말과 완전히 상충되는 거짓말을 반복하면서 양심의 가책은 고사하고 오히려 뻔뻔하게 언론과 검찰, 법원 개혁을 종용하는 모습이 점차 늘어가는 지금 상황. 이 상황은 우리가 단순히 "쯧쯧쯧"으로 넘어가기에는 우리의 행동 양식에 근원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우 엄중한 상황입니다. 한 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가장 큰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을 지닌 권력자들이 있지도 않은 사건을 만들어 모함을 하고, 그 모함이 버젓이 법정에서 거짓으로 드러났음에도 사과는커녕 관련자들이 오히려 공직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들, 한 사회에서 정의와 진실을 판단하는 마지노선인 법원 판결마저 공공연히 무시하는 이런 모습들이 우리에게 노출된다는 것은 곧 "미물"에 지나지 않는 우리도 머지않아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점점 많은 일반인들이 경찰이, 검사가, 법관이 어떠한 말을 해도 전혀 인정하고 않고 당신이야말로 "적폐"요 개혁의 대상이라며 반발하기 시작한다면? 사회의 가장 근본이 되는 질서와 약속이 파괴되는 사회는 곧 어른이 성숙함을 잃고 유아로 퇴행하는 사회입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아내가 얼마 전 "내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는 편지를 발표했습니다. 내 남편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거짓말. 적어도 서울시장이라는 한국 사회에서 몇 안 되는 막강한 권력과 그에 따 책임을 지닌 이의 부인이라면 그런 말은 하면 안 됐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자신의 도의적 책임과 수치심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전 시장을 욕보이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그분을 사랑한다면 대신 이렇게 말해야 옳았습니다.


"그분이 한 행동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의 당사자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박 전 시장을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서울시장이라는 사회인으로서 그분은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제 남편이라는 자연인으로서 인간 박원순, 저와 일생을 함께한 제 남편을 저는 계속 그리워하고 사랑할 것입니다."


인간은 프로그램으로 움집이는 로봇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습니다. 잘못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영원한 죄인이 되는 것도 아니며 사회에서 매장당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지 말아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어쩌면 한 사람의 죄와 인격, 죄와 존재 자체를 동일시하고 있는 사회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내 존재 자체가 곧 내가 저지른 죄라고 생각하면 너무 비극적이고 끔찍하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악착같이 죄를 인정하지 않고 피하려는 것도 자뭇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요. 죄는 존재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일부일 뿐입니다. 인정하고 잘못을 구하고 사죄를 하고 반성하며 남은 삶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계속 사랑하고 사랑받을 권리와 자격이 있으며 그렇게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진정 사죄를 구하고 반성을 한다면 또한 용서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지 않던가요. 인간이 귀하다는 것은 다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받고 사죄를 하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하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게 진짜 성숙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간적인 사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죄를 곧 한 인간 존재 그 자체로 인식하고 그 사람의 과거와 남은 미래까지 모두 그 죄로 매도한다면 그런 갑갑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이 나라를 성숙한 어른의 사회가 아닌 유아기로 퇴행하는 사회로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죄가 곧 과거와 미래, 그 존재 자체가 되어 버린다는 두려움에 모두 잘못과 조우하지 않는 사회, 얼마나 무섭고 갑갑하고 불행한 사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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