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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an 09. 2019

스타워즈 8:라스트 제다이(2017)-2

네, SLJ 변호하러 왔습니다

지난 회에 이어 두 번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 <라스트 제다이>는 비교적 최근 스타워즈를 보기 시작한 뉴비 관객뿐 아니라 스타워즈의 오랜 팬 사이에서도 그 평이 양분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또 매 에피소드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프리퀄 3부작 중 에피소드 1, 2는 대체로 악평으로 의견이 모아졌더랬죠).


지난 변호(!)를 스타워즈가 갖는 통시적인 정서의 축적에 할애한 것은 최근 스타워즈를 보기 시작한 뉴비 관객을 상대로 한 변호였습니다. 할아버지 제다이와 할머니 반란군 리더의 만남, 누군가에겐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갈 장면이 누군가에겐 박진감 넘치는 광선검 싸움이나 휘황찬란한 우주 전투 씬보다 훨씬 더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둘의 차이는 단순히 스타워즈 모든 에피소드를 다 봤냐, 스타워즈에 대해 많이 아냐에 관한 지식의 괴리가 아닌 '정서'의 괴리에 있다는 것이 지난 변호의 포인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에 애정이 있는 팬 조차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호불호가 갈립니다.

그렇다면 이제 <라스트 제다이>의 어떤 점이 그렇게 저 개인적으로 좋았는지를 말함으로써 이 영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변호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에피소드인 <스타워즈 7:깨어난 포스>를 보고 든 느낌은 무척 재미있었지만 그다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미 끝난 조지 루카스의 세계관을 다른 누군가가 연장시키는 건 구차한 사족으로 세계관을 망가뜨리는 일이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가령 하나의 예만 들면 이런 것입니다. 조지 루카스는 나치의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에서 영감을 받아 제국군을 만들었습니다. 제국군 우주선의 승무원이 모두 백인 남성이라는 것, 스톰 트루퍼즈는 복제를 통해 유전적으로 동일한 클론 군사라는 점이 이를 대변하죠(반대로 반란군은 다원주의, 민주주의를 표방하기에 유색인종과 남녀가 섞여있습니다). 그런데 <에피소드 7>에선 스톰 트루퍼즈에 흑인이 있고, 제국군 승무원들도 더 이상 백인 남성만 있지 않습니다. 물론 과거와 달리 현재는 인종과 성적 평등에 신경을 안 쓸 수 없는 분위기이고 특히 최근 디즈니는 평등에 엄청 공들이고 있지만, 어찌 됐건 <에피소드 7>에선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세계관을 이루는 하나의 근본적인 축이 무너진 것이죠. 이것은 비단 조지 루카스 자신이 시퀄을 만든다고 해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6개의 에피소드는 이미 오래전 구상한 서사였는데, 뭔가가 더 나온다는 것은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붙는다는 의미이니까요.





둘째, 시퀄 3부작의 서사를 이끌어가야 하는 두 중심 캐릭터 중 레이는 매력적인 반면 카일로 렌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인도자에 이끌려 제다이에 대한 의심 따윈 없었던 아나킨과 루크와 달리 레이는 제다이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던 순수한 소녀였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끌리듯 제다이의 길로 들어서고 결국 각성하게 되는 과정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란 스타워즈의 신화적 세계관과 잘 맞닿아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레이가 거치는 순수, 혼돈, 고민, 결심 등 다양한 정서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데이지 리들리는 맞춤옷을 입은 듯 완벽히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팰퍼틴과 다스 베이더의 엄청난 무게감에 익숙해져서인지 있는 대로 분위기는 잡지만 약하기만 한 카일로 렌에게선 당최 매력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뭔가가 더 있을 것이란 막연한 추측은 해보지만 말이죠. 별 기대감이 안 든다는 게 문제였죠.


셋째, 오리지널 스타워즈와 비교해 톤 앤 매너가 너무 달라졌습니다. 오리지널 스타워즈는 전반에 걸쳐 비장미가 흘렀습니다. 유머 혹은 위트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위트는 스타워즈의 분위기에 잘 녹아들어 캐릭터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장치였습니다. 그런데 <에피소드 7>은 너무 가벼웠습니다. 위급하고 무거운 상황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할리우드식 유머들은 억지스러웠고, 퍼스트 오더의 헉스 지휘관은 무게감이 전혀 없죠(타킨 총독을 생각해보세요). 또한 스타워즈의 아이콘과 같은 스톰 트루퍼즈의 복장이 달라진 것도, 카일로 렌의 광선검이 십자가 모양인 것도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파스마란 캐릭터는 전혀 필요 없어 보였고, C3P0를 대체할 듯 보이는 BB-8는 귀여움을 넘어 경박했습니다. 기존의 캐릭터들이 여전히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이질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에피소드 7>를 본 후 점점 스토리가 산으로 가던 드래곤 볼이 생각난 것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었습니다. 억지스럽고 이상한 캐릭터와 이야기, 이미 충분히 강하지만 점점 더 강해져야 하는 손오공, 계속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드래곤 볼의 이야기. 결국 기대를 잃고, 앞으로의 스타워즈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게 됐습니다. 물론 나중에 나올 에피소드 8, 9를 재밌게 즐길 테지만 애착을 갖고 기대하는 것과 단순히 개봉했으니 가볍게 즐기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죠.


그런데 <에피소드 8>이 그 사라졌던 기대감을 반전시켰습니다.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이 그릴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에피소드 8>을 보기 바로 전까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바였죠. 무엇이 그런 기대를 갖게 만들었을까.





첫째, 마침내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한 카일로 렌 그리고 구축된 캐릭터 간 관계.

<에피소드 8>을 보고 나서야 카일로 렌이 진짜 어떤 캐릭터이며 무엇보다 왜 하필이면 아담 드라이버 같은 배우를 캐스팅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카일로 렌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나의 실존' 그 자체가 아닌 끊임없이 타인에게서 찾는 불안하고 연약한 캐릭터입니다. 스노크에게 인정받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고, 할아버지인 다스 베이더를 뛰어넘으려 노력합니다. 내면에 잠재해있는 선과 악의 소용돌이. 애써 어둠으로 빛을 덮은 듯 보이지만 결정적 순간에 불쑥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빛줄기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머뭇거리며 혼란스러워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왠지 모르게 불쌍한 마스크에 언제나 촉촉이 젖은 눈의 아담 드라이버는 이 불안한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냅니다. 레이를 맡은 데이지 리들리가 그렇듯 말이죠. 에피소드 7과 8에 걸쳐 문득문득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분노는 팰퍼틴이나 다스 베이더처럼 그 자신이 분노와 증오라는 감정을 체화해 완전히 다스린다기보다는 주체하지 못하고 오히려 감정에 잡혀 먹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는 여전히 부족하고 수련이 더 필요한 'young' 카일로 렌인 것이죠. 스노크는 그런 카일로 렌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그 불안함을 이용해 카일로 렌을 조종합니다. 하지만 결국 카일로 렌은 스노크를 살해하는 너무도 대담한 결정을 내버립니다. 연약한 카일로 렌이기에 너무도 뜻밖의 일이지만 한편으론 너무도 불안한 그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서사는 스타워즈를 추동하는 거대 서사 중 하나, 스승을 배신하는 제자인 유다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너무도 잘 부합하기도 하죠. 두쿠 백작은 요다를, 다스 베이더는 오비-완을 배신한 것처럼 카일로 렌은 스노크를 배신했습니다.


스노크를 죽임으로써 자신이 그만큼 강해졌나, 그를 대체할 정도로 그는 리더로서 훌륭한 존재인가. 전혀 아닙니다. 그는 포스나 검술의 힘으로 스노크를 넘어선 것이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 그의 연약함과 불안함으로 이겼죠. 여전히 그는 완벽하지 못하고 불안한 존재입니다. 스노크를 죽이고 레이를 끌어들이지 못해 혼자가 된 그는 불안함이 오히려 더 가중된 것으로 보입니다. 크레이트 행성에서 반란군을 생포 없이 모조리 없애라고 명령하는 장면, 그리고 루크 스카이워커를 향해 AT-AT의 일제 사격을 명령하고 사격을 멈추지 않으려는 씬에서 주먹을 움켜쥐고 증오에 정신이 나간 듯 보이는 카일로 렌의 모습이 그가 사실 얼마나 불안하고 취약한 존재인지를 반증합니다.


헉스 장군은 그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카일로 렌의 증오와 분노가 그를 삼켜버리지 않았다면 퍼스트 오더는 구석에 갇힌 쥐인 반란군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카일로 렌이 움켜쥐고 있는 증오와 분노, 그로 인한 불안정함이 전략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것이죠. 헉스 장군은 눈치챘습니다. 카일로 렌과 헉스 간 관계가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기도 합니다. 비록 헉스는 물리적 힘에서 카일로 렌에게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여전히 그에겐 군대를 통제할 권력이 있습니다. 헉스의 외모에 알맞게 얍삽하고 치밀한 계략을 짠다면 카일로 렌을 발 밑에 둘 수도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헉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하지요.





자, 그럼 카일로 렌은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불안함은 그를 집어삼켜 버릴 것인가, 아니면 결국 그것을 극복하고 다스 베이더와 같은 거인이 될 것인가. 퍼스트 오더에서 그를 견제할 존재가 더 이상 없는 상황에서 카일로 렌은 폭주할 것인가. 그의 약점을 간파한 헉스 장군은 그와 어떤 긴장 관계를 이어갈 것인가. 그 이야기가 펼쳐질 다음 에피소드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과거와의 결별, 그 대담한 선언의 세련된 표현.

감독은 루크 스카이워커와 카일로 렌의 입을 빌어 말합니다.


"지난 과거는 끝내야 한다".


사라져야 할 대상이 루크에겐 제다이 오더, 카일로 렌에겐 스노크이지만 영화 전체에서 그 궁극의 대상은 '오리지널 스타워즈'입니다. 오리지널과 프리퀄을 통틀어 총 6개의 에피소드에서 감독이 바뀌긴 했으나 스토리는 조지 루카스가 깊이 관여했습니다. 감독이 누구든 그건 조지 루카스의 오리지널 스타워즈 세계관이었죠. 하지만 6부작을 끝으로 조지 루카스는 더 이상 스토리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네, <에피소드 7>부터의 스타워즈는 조지 루카스의 중력장을 벗어난 스타워즈입니다.


지난 과거는 이제 끝내야 한다는 대사는 스타워즈가 관객에게 하는 선언입니다. 이제 우린 조지 루카스 없이 나아가야 한다. 우린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라이언 존슨은 이 도발적인 선언을 놀랍도록 세련되고 정제된 방식으로 전달합니다. 루크와 카일로의 캐릭터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이야기로서 스타워즈의 새로운 서사에 기가 막히게 녹아들어 간접적으로 전달되죠.





루크는 십여 명의 제자를 길렀지만 카일로 렌에게 죽음의 위기를 당하고 제다이 사원은 불태워집니다. 카일로 렌에게 대항했던 루크의 제자는 죽음을 당하고 카일로 렌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 다크 사이드에 빠지죠. 루크는 자신이 세상에 전설로 남았지만 사실 가르침이 실패했다는 무력감과 빛이 아닌 어둠의 세력을 키웠다는 자괴감에 철저히 무너졌습니다. 큰 빛은 또한 큰 어둠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왜곡된 깨달음과 함께 그는 세상을 등지고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갑니다. 그에게 제다이 오더는 전승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 사라져야 할 '적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존재할수록 어둠도 늘 존재할 테니 말이죠.


사실 스타워즈의 에피소드 전체를 훑어보면 제다이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제다이들은 스승을 배신하고 악의 세력을 키우는데 일조했죠. 클론 군대가 팰퍼틴의 계략인지도 모른 채 그들을 이끌고 전쟁에 앞섰습니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진 몰라도 그들의 선택은 실패였죠. 팰퍼틴이 공화국을 제국으로 만드는 것도, 팰퍼틴을 죽이는 것도 못했습니다. 실패와 좌절의 제다이 역사. 어쩌면 루크는 침잠하는 동안 그것을 깨달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제다이 오더란 과거는 없어져야 할 것이었죠.


카일로 렌은 좀 더 개인적입니다. 인정은 받지 못한 채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이용만 당하는 자신에 신물이 났을 수 있습니다. 낡은 세력은 이제 사라지고 자신이 그 중심으로 서겠다는 개인적인 야심과 그의 불안정한 성향이 뒤섞인 그는 레이에게 과거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죠.





스타워즈 시퀄 3부작은 조지 루카스가 떠난 후 나온 첫 트릴로지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스타워즈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스타워즈 시리즈입니다. 프리퀄이 이미 조지 루카스의 계획에 있던 이야기를 구현한 것이라면 이젠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자신을 보호하던 알을 깨고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안전한 둥지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존재와 같습니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말처럼 스타워즈는 <라스트 제다이>를 통해 알을 깼습니다. "과거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선언과 함께 말이죠. 저는 <라스트 제다이>의 스토리를 줄이고 줄여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과거와의 결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성공과 거대한 유산이란 과거와 결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감한 그 선언은 튀지 않고 서사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저 개인적으로 <에피소드 7>은 시퀄 3부작의 본격적 서사라고 보지 않습니다. 서사가 진행될 캐릭터만 소개함으로써 씨만 뿌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오리지널에 대한 오마쥬로 채움으로써 헌사를 보낸 에피소드로서 스타워즈 팬들을 향한 일종의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그럼에도 여전한 스타워즈 서사의 뼈대, 여전히 계승하는 유산.

스노크를 살해하는 카일로 렌, 스승을 배신하는 제자라는 스타워즈 고유의 기독교적 세계관은 그대로 전승됩니다.


<라스트 제다이>의 서사 구조는 어떤가요. <에피소드 7:깨어난 포스>가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의 서사 구조를 그대로 차용했다면 <라스트 제다이>는 <에피소드 5:제국의 역습>의 서사를 많은 부분 차용했습니다. <에피소드 5:제국의 역습>에서 루크는 외딴 행성에서 숨어 살고 있는 요다를 찾아가 그를 설득해서 수련을 받습니다. 수련의 한 과정으로 어둠의 공간에서 자신이 결국 만나야 하는 상대(다스 베이더)를 만나고, 요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수련을 마치지도 않은 채 요다를 떠납니다.


레이 역시 숨어있는 루크를 찾아가 그를 설득한 끝에 수련을 하고 루크의 만류를 뿌리친 채 그를 떠나죠.





사실 <라스트 제다이>의 패배자 루크는 요다의 운명적 재현이기도 합니다. <에피소드 5>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요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공화국의 수호신, 제다이 오더를 이끄는 전설적인 리더였지만 그는 제다이가 몰살당하고 제다이 사원이 불타는 모습을 봐야 했습니다. 팰퍼틴을 제거하지도 못했습니다. 완전히 실패한 전설의 제다이입니다. 요다는 루크가 그랬던 것처럼 제다이 오더에 대한 깊은 회의와 절망에 빠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루크를 키워 포스의 균형을 이뤄냈죠(그것이 결국 다스 베이더가 했건). 요다는 팰퍼틴을 제거하고 제국을 무너뜨리는 루크를 보며 실패의 가치와 희망을 보았을 것입니다. 제다이 고서가 있는 곳을 불태우고 루크에게 건네는 요다의 말이 힘을 얻는 순간입니다. 실패가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는 말이죠. (참고로 이 장면에서의 요다는 프리퀄 시리즈의 그래픽 요다가 아닌 오리지널 시리즈의 인형으로 만들어진 촌스러운 모습의 요다입니다.)


루크가 결국 레이를 돕기로 결심하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밀레니엄 팔콘에 오른 루크는 지난 모험의 동반자 R2D2를 만납니다. R2D2는 루크에게 오비-완을 찾는 레아 공주의 홀로그램을 보여주죠. 루크에게 R2D2와 C3P0는 각별한 드로이드이지만 특히 R2D2가 그렇습니다. 루크의 영웅담은 R2D2가 보여준 레아 공주의 홀로그램과 함께 시작하며 이것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이 모든 스타워즈의 시발점입니다.


과거와 작별하는 그 순간에도 세계관과 서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다에 의해 모든 제다이 오더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순간 레이가 제다이 고서들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 영화 마지막에 밝혀지는 부분은 앞으로 조지 루카스가 없는 전인미답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 정신은 그대로 잇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넷째, 아름다운 미장센.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빠져나올 때 강렬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만 있어도 그 영화는 성공한 것이라고들 합니다. 잠깐만 생각해도 <라스트 제다이>는 기억에 남는 멋진 장면이 너무 많습니다.


먼저 홀로 남겨진 홀도 제독이 순양함을 돌려 퍼스트 오더 함대를 향해 하이퍼 스페이스를 감행하던 시퀀스. 감독은 그 찰나의 순간 모든 사운드를 죽입니다. 침묵과 암흑 속에서 거대한 함선들은 폭발이 아닌 푸른빛에 의해 '찢겨'나갑니다. 그리고 빛을 반사하는 수많은 파편들이 화면을 채우죠. 그 순간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전율 그 자체였죠.


스노크를 죽이고 그를 지키는 붉은 전사들과 카일로 렌, 레이가 함께 싸우는 시퀀스는 어떻습니까. 그전에 이미 붉은 휘장으로 둘러쳐진 스노크의 공간은 첫 등장부터 압도적인 비주얼을 만들어내더군요. 하지만 본격적인 아름다움은 스노크가 죽은 후 펼쳐집니다. 붉은 휘장에 불이 붙고 곧 작은 불꽃들이 떠다니며 화면을 채우는 그 오묘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광선검을 휘두르는 시퀀스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크레이트 행성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거의 모든 장면이 아름다웠습니다. 살짝 열린 방호벽 뒤에 깃을 세운 채 먼 곳을 응시하는 레아, 붉은 궤적을 그리며 질주하는 스피더, 파괴된 문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서 있는 루크의 뒷모습, 퍼스터 오더를 향해 홀로 걸어가는 루크, 한 사람을 향해 AT-AT가 쏟아내는 블래스터와 흩날리는 하얗고 붉은 파편. 그리고 카일로 렌과 루크의 싸움 크레이트 행성이 주는 아름다움의 백미를 장식하죠. 하얀색과 붉은색의 대비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는 정말 강렬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자잘하게는 포가 전투씬에서는 물론 격납고에서도  X-WING을 급선회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은근히 멋지더군요. 디즈니에서 그런 기체 움직임을 포의 시그니처 무브로 만들 게 아닌가 싶습니다. BB-8이 AT-AT에 탑승해서 퍼스트 오더의 격납고를 불바다로 만들고 핀, 로즈와 함께 탑승해 뛰어다니는 시퀀스 역시 멋졌습니다. 중간중간 보여주는 섬의 전경도 멋졌고, 마지막 루크가 두 개의 태양을 바라보는 장면은 <새로운 희망> 속 루크의 고향 타투인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약 40년 만에 재현되는 그 장면에선 마크 해밀 본인의 감회도 무척 남달랐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스타워즈를 통틀어 <라스트 제다이>만큼 미장센이 아름다웠던 에피소드가 있던가요? 저는 3D 아이맥스와 일반 2D 상영관에서 둘 다 봤는데, 둘이 주는 경험이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3D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일찍이 <아바타>가 시현한 것처럼 작은 물체들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그것들이 극장 안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주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라스트 제다이>는 의도적으로 3D를 염두에 둔 듯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우주를 떠다니는 파편들, 스노크의 방에서 떠다니는 불꽃들 속에서 광선검을 휘두르는 장면, 크레이트 행성에서 카일로 렌과 루크 주위를 둘러싼 하얗고 붉은 파편들. 두 스크린이 주는 경험은 전혀 다릅니다. <라스트 제다이>를 재밌게 보신 분 중 2D로 보신 분들은 아이맥스 3D로 한번 더 보는 것도 추천해봅니다.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다섯째, 예측을 뒤엎는 서사 전달 방식.

라이언 존슨 때문에 관객의 뒤통수는 남아나질 않습니다. 로즈와 핀이 추적 장치를 끄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발각되고, 반란군이 탈출에 성공한다고 믿는 순간 하나하나 격추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스노크가 죽습니다. 카일로 렌과 싸운 존재가 루크의 포스가 만든 환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감독 라이언 존슨은 이렇게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을 예상하게 만들고 그 방향으로 몰아가다가 결말을 뒤트는 트릭을 씁니다. 액션이 없어 지루했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계속 드러나는 예상 밖의 결과에 저는 그럴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감독의 가장 큰 트릭은 무엇보다 레이와 카일로 렌의 운명입니다. 교묘하게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레이가 다크 사이드로, 카일로 렌이 제다이로 넘어올 것 같은 시그널을 보냅니다. 너는 괴물이라고 단호히 말하는 레이의 강한 눈빛이나 광선검을 사용해 무분별하게 돌을 자르고, 그 조각이 케어테이커의 수레를 날려버리고, 포스를 느낄 때 다크사이드의 유혹을 거부 조차 하지 않았다는 루크의 대사 등은 레이가 마치 다크 사이드로 넘어갈 것 같은 시그널로 작용합니다. 영화 초반 어머니 레아를 공격하려다 멈추고, 스노크에게서 아직도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레이와의 포스를 통한 교감에서 자꾸 약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신이 괴물이라는 레이의 비난에 자조적으로 인정하는 모습 등은 마치 카일로 렌이 언제든 제다이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란 시그널로 작용하지만, 끝내 그 예측은 빗나갑니다. 어쩌면 이 예측은 이미 트레일러를 발표할 때부터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트레일러가 교묘하게 편집됐고, 그것을 본 많은 이들이 레이나 루크, 카일로 렌에게 충격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니까요. 어쨌든 도저히 어떤 결말이 날지 예측할 수 없는 이러한 서사 전개 방식은 흥미로웠습니다. 지금까지의 스타워즈는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방식이었으니까요.




이상이 제가 <스타워즈 에피소드 8-라스트 제다이>를 그토록 좋아하게 된 5가지 주요 이유입니다. 다른 세세한 부분들은 빼놓고 말이죠. 과감히 조지 루카스가 없는 스타워즈. 과거와의 결별을 선언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본격적으로 캐릭터를 구축하고 관계를 형성하지만 그 세계관과 서사 구조는 오리지널리티를 버리지 않는다는 점. 다양한 캐릭터가 갖고 있는 저마다의 각기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관객의 예측을 유도하고 그것을 비트는 방식으로 서사를 진행함으로써 긴장을 늦추지 않는 점, 그 모든 이야기를 너무나 유려한 영상으로 담아냈다는 점 때문에 저는 앞으로 펼쳐질 스타워즈에 대해 다시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라는 엄청난 중압감을 견디며 연출과 각본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라이언 존슨은 천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조지 루카스는 <라스트 제다이>를 beautifully made 된 영화라고 칭찬했고, 디즈니도 많이 만족스러웠는지 이번 시퀄 이후의 후속 트릴로지인 에피소드 10, 11, 12 전편의 연출을 라이언 존슨에게 맡겼습니다.





내친김에 스페이스 오페라에 대해서 짧게만 이야기해봅시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SF의 하위 장르입니다. 대부분 SF 장르가 과학적 사실, 논리적 원인과 결과에 대한 천착이 강하다면, 스페이스 오페라는 기술이나 논리, 사실보다는 문학적 상상력이 많이 개입됩니다. 더 허황되고 더 비현실적이죠. 스페이스 오페라는 스타워즈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 지구인은 그 피해자'라는 이야기의 뼈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금발의 여인이 외계인에게 납치당한다는 것도 단골 소재였고요. 유명한 '로스웰 사건'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란 시대적 배경과 만나 인기를 끌었던 스페이스 오페라는 클리셰를 반복하며 평론가들의 혹평에 시달리고 인기가 사그라집니다.  


사그라들던 스페이스 오페라에 나타난 혁명적인 존재, 그것이 스타워즈입니다. 스타워즈는 기독교, 불교, 도교, 조로아스터교(혹은 마니교)의 종교적 세계관과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을 혼합해 서사의 뼈대를 구축했습니다. 또한 나치의 전체주의를 모티브로 제국을 만들고 다원적인 민주주의를 모티브로 반란군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문화를 차용해 광선검과 제다이를 만들었습니다. 조지 루카스가 구축한 신화적이고 영웅적 거대 서사인 스타워즈의 등장은 지구는 항상 침략당하고 외계인은 항상 적이라는 단순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전복한 진정한 혁명적 사건입니다.


자, 생각해봅시다. 왜 거대한 함선들 간 전투나 X-WING과 타이 파이터 간 전투에서 유도 미사일을 사용하지 않고, 캐리비안 해적 속 해상전처럼 근접 포격전을 펼치고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도그 파이팅을 펼칠까요? 왜 제다이는 블래스터를 쓰지 않고 하필 '검'을 쓸까요? 왜 그들은 방어 기능이 있는 슈트를 입지 않고 천으로 된 옷을 입을까요? 더 나아가서 왜 아나킨 스카이워커는 아빠가 없을까요? 왜 포스라는 철학적이고 초자연적인 개념이 있을까요? 왜 SF에서 명상이 나올까요?




개연성 혹은 핍진성은 영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사람들이 스타워즈에 열광한 이유는 논리적으로 완벽한 개연성 때문이 아닙니다. 머나먼 어느 은하계에서 지구에서도 이미 효용이 지나버린 도그 파이팅을 펼치고, 그보다 더 과거의 유물인 검을 휘두른다는 설정, 그리고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포스와 명상, 빛과 어둠의 공존과 대결이라는 설정. 첨단과 고전, 과학과 비과학, 합리성과 비합리성의 이율배반이 주는 매력, 비극적 운명에 이끌리는 영웅들의 대서사에 빠진 것입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조지 루카스는 각종 종교와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와 스타워즈 세계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단군 신화를 개연성의 잣대로 보는 사람이 있나요? 그저 이야기 자체를 받아들이며 그것이 주는 즐거움을 따라가지 않던가요?


사람들이 개연성을 따졌다면 작은 행성만 한 데스 스타를 고작 몇 대의 X-WING과 Y-WING으로 파괴하는 최초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4>는 이토록 뜨거운 환영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도 생각을 안 한 건 아닙니다. <라스트 제다이>에서 반란군은 핵심 지휘부가 탑승한 순양함, 그리고 지원함과 의료함이 전부였죠. 게다가 순양함에 탑재된 X-WING들은 다 파괴된 상태, 퍼스트 오더는 타이 파이터 몇 대만 풀어놔도 금방 순양함을 제압할 것이었습니다. 네, 그게 앞뒤가 맞습니다. 굳이 반란군을 계속 궁지에 몰아넣고 싶었다면 애초에 이것과 다른 설정이었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다른 영화였다면 영화의 집중력을 깨는 큰 오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신화처럼 구축된 스타워즈 세계관에선 용납이 됩니다. 왜냐, 스타워즈는 언제나 조금 어설펐으니까요. 이것은 마치 각 예능 프로그램이 저마다의 고유한 유머 코드와 세계관, 정서가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1박 2일은 그것의 유머 코드와 세계관, 정서가 존재하며 그것은 런닝맨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1박 2일의 정서와 유머 코드를 잣대로 런닝맨을 평가하고 이상하다고 할 순 없는 것입니다. 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를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보듯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애초에 스타워즈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건 애초에 스타워즈를 즐기는 방법이 아닐뿐더러 스타워즈의 존재 이유도 아닙니다. 스타워즈는 그것보다는 영웅이 어떻게 태어나고, 번뇌하고, 실패하고, 배반하고, 성공하고, 갈등하고, 사라지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볼 수 없다면 스타워즈의 우주 전투나 광선검 싸움이 주는 화려한 액션을 재미있어할 순 있어도 스타워즈가 주는 '운명적인 영웅 서사'라는 진짜 즐거움을 느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에도 말했듯, 그럼 나가 죽어야 하냐? 그건 아닙니다. 스타워즈를 제대로 즐긴다고 우쭐할 것도 없습니다. 인생의 작은 즐거움이 하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 그것이 무슨 선민주의식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며 스타워즈를 즐기는 것은 취향이지 당위는 아니니까요. 1박 2일이 재밌는 사람이 런닝맨은 재미없을 수 있고, 둘 다 재밌을 수도 있고, 둘 다 재미없을 수 있습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PS. <라스트 제다이>는 매우 훌륭했지만 그럼에도 분명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함께 쓰려고 했으나 분량이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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