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SLJ 변호하러 왔습니다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일컬어 '장대한 서사시epic saga', 혹은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정말 놀랍도록 스타워즈를 잘 표현하는 언어가 아닐까 합니다.
조지 루카스는 좋은 연출가가 아니었습니다. 엉성하고 서툴었죠. 그의 영화는 언제나 비판을 받았고, 스타워즈 시리즈 중 최고로 꼽히는 <에피소드 5-제국의 역습>은 그의 연출이 아니었습니다(어빈 케쉬너 감독). 하지만 연출가로서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조지 루카스가 여전히 칭송받는 이유는 그가 스타워즈라는 장대하고 거대하면서도 너무도 매혹적인 세계관을 창조한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스타워즈에 대해 이렇게 말해볼 수 있습니다. 조지 루카스는 말도 못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거대하지만, 내부의 디테일은 조금 엉성하고 무엇보다 빈틈이 많은 대저택을 만든 것입니다. 그 대저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 매력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그의 대저택에 매료된 사람들은 정작 주인인 조지 루카스가 떠난 뒤에도 그 저택에 계속 머물며 떠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저택에서 계속 머물길 원했고 누군가 주인을 대신해 보수하고 더 장식해주길 바랬죠. 주인이 만든 대저택의 원래 색깔은 바꾸지 않으면서 말이죠. 강렬한 색을 지닌 거대한 저택, 하지만 많은 빈틈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아기자기하고 많은 디테일을 채울 수 있는 여지를 주었습니다.
제다이, 공화국, 반란군, 제국, 하이퍼 스페이스, 광선검, 포스 그리고 수많은 행성과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 그 속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어쩌면 끝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애니메이션 '클론 워즈'와 '레벨즈', 작년에 개봉했던 '로그 원', 앞으로 개봉 예정인 '한 솔로' 등은 모두 거대한 서사가 놓쳤던 세세한 빈틈을 하나씩 채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에피소드 8-라스트 제다이>를 보며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개연성과 핍진성을 따지려면 미안하게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겁니다. 각 영화의 장르는 그 장르만이 줄 수 있는 미덕이 있습니다. 타이트한 디테일과 개연성을 좇는다면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영화를 찾아가면 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유주얼 서스펙트'가 갖고 있는 치밀한 전개는 부족하지만 대신 그런 장르는 절대 줄 수 없는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영웅이 탄생하고 활약하고 실패하고 재기하고 사라지고 또 다른 영웅이 뒤를 잇는 이야기, 수십 척의 거대한 우주선이 전투를 벌이고 행성을 옮겨 다니는 선 굵은 이야기, 말 그대로 우주 대서사는 다른 어떤 장르도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스페이스 오페라만의 미덕입니다.
언제나 스타워즈의 엉성한 스토리는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행성을 파괴하는 궁극의 무기 '데스 스타'를 공격하는데 몇 대 되지도 않는 X-윙만으로 간다는 건 정말 앞뒤가 안 맞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스타워즈는 늘 그래 왔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스타워즈는 사소한 개연성과 디테일보다는 행성과 은하계, 영웅의 일생 단위의 빅 피쳐를 그려온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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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보는 영화와 마음으로 보는 영화가 있습니다. 단순히 가볍게 웃고 즐기거나 이성적 판단을 하는 영화, 그리고 어떤 추억이 깃든 영화,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내겐 특별한 영화, 보고 또 봐도 좋은 영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스타워즈는 노홍철과 정형돈이 하차하기 바로 전의 무한도전과 같습니다. 당시 무한도전은 매니악한 프로그램으로 유명했습니다. 최근의 에피소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이전의 이야기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물고 뜯으며 던지는 시답잖은 유머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선 이전 무한도전의 이야기들과 추억을 알아야만 했기 때문이죠. 팬이 아닌 시청자는 점점 그들의 행위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반대로 무한도전 팬들에게 무한도전은 단순한 예능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저 그들의 바보짓을 보는 것만으로 흐뭇하고 위안을 받는 듯 마음이 따뜻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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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은 정서가 배어있습니다. 스타워즈의 첫 시작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이 개봉한 건 1977년. 그리고 '오리지널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에피소드 6-제다이의 귀환> 개봉이 1983년입니다. 오리지널 3부작의 세계에 완전히 빠진 팬들은 또 다른 스타워즈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조지 루카스가 또 다른 스타워즈를 만든다 아니다 소문만 무성했지요. 그렇게 부침이 있기를 16년, 드디어 오리지널 3부작의 전 이야기, '프리퀄 3부작'의 시작인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험>이 개봉을 합니다. 스타워즈 팬들은 무려 16년 간의 기다림 끝에 새로운 스타워즈를 보게 된 것이지요. 16년 만에 만나는 스타워즈.
그 16년의 기다림은 스타워즈 팬들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정서를 만들어냈습니다. 마치 16년간 떨어졌던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처럼 많은 스타워즈 팬들은 소파가 아닌 극장에 앉아 장쾌하게 터져 나오는 스타워즈 오프닝 곡과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way" 자막을 보며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험>은 스타워즈 전체를 통틀어 최악의 에피소드로 꼽힙니다. 네, 물론 조지 루카스가 연출을 맡았죠. 하지만 팬들에게 그런 건 상관없었습니다(완전 상관없는 건 아니지만;). 그저 보고 또 보고 또 본 낡은 스타워즈가 아닌 새로운 스타워즈 이야기와 만나는 것 그 자체만으로 감동이었으니까요. 프리퀄 3부작은 제다이가 몰락하고 다스 베이더가 탄생하는 <에피소드 3-시스의 복수(2005년)>와 함께 끝이 납니다.
과연 또 다른 스타워즈가 있을 것인가? 프리퀄 3부작 제작 전과 마찬가지로 스타워즈가 또 만들어진다 아니다 소문만 무성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스타워즈 팬들을 털썩하게 만드는 소식이 날아옵니다. 조지 루카스 본인이 더 이상 스타워즈를 만들 일은 없다고 선언한 것이죠. 팬들은 주저앉기는 했지만 기다림을 멈추진 않았습니다. 루카스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루머는 끊임없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다 2012년 디즈니가 루카스 필름을 전격 인수합니다. 그때부터 스타워즈 후속 제작은 급물살을 탑니다. 2015년 J.J. 에이브람스 연출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가 결국 세상에 나옵니다.
16년의 기다림, 그리고 또 10년의 기다림. 그리고 맞이하는 일곱 번째 에피소드. 모르긴 몰라도 10년 만의 오프닝 곡과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way" 자막은 많은 팬들을 감동의 도가니에 몰아넣었을 겁니다. 10년을 기다린 팬들은 밀레니엄 팔콘이 창공을 날아오르고, 저공비행하며 물살을 가르는 X-WING의 모습 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한 솔로와 츄이가 팔콘에 올라 "집에 돌아왔다"는 대사를 던질 때, 한 솔로와 레아 공주가 주고받는 눈빛 만으로 전율이 흘렀습니다.
츄이와 C3P0, R2D2, X-WING 등 반가운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시건방진 눈빛에 패기 넘치던 한 솔로는 이제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그 어여쁘던 레아 공주도 곱지만, 할머니가 됐죠. 모르긴 해도 많은 스타워즈 팬들은 이제 늙은 한 솔로와 레아 공주를 스크린에서 보며 자연스레 자신들의 모습도 발견했을 것입니다. 스타워즈가 열어준 우주에 빠져 하이퍼 스페이스로 행성을 옮겨 다니고 블라스터를 쏘고 광선검을 휘두르는 공상에 빠졌던 어린 시절, 그리고 세월이 지나 직업을 갖고, 가족을 이루며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 말이죠.
이 중 둘은 할아버지가, 한 명은 고인이 됐습니다...
무한도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무한도전이 끝나면 어떤 심정일까요? 너무 아쉽지 않을까요? 그리고 가끔 우울할 때나 생각이 날 때면 옛날 에피소드를 꺼내보지 않을까요? 그렇게 16년이 흐른 후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 그리고 예전에 하차한 노홍철과 정형돈이 만나 새로 무한도전을 시작한다면? 16년 만에 생방으로 무한도전의 경망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첫 오프닝 곡을 들을 때의 감정은 어떨까요? 이제는 늙은 6명의 멤버들이 한 프레임 안에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늙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함께 늙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지나간 세월을 반추해볼 것입니다.
스타워즈가 그렇습니다. 이쪽에는 밀레니엄 팔콘이 하늘을 나는 것만으로도 한껏 들뜨고, 한 솔로의 썩소 만으로 기분이 좋고, 레아를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뭉클함을 갖는 이들. 그리고 저쪽에는 단순히 스타워즈를 액션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영화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둘이 스타워즈에 갖는 정서의 괴리감. 그것은 극복할 수 없습니다. 최신 스타워즈 에피소드를 '이해'하기 위해 이전 에피소드를 전부 보고 스토리와 캐릭터를 학습해도,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세월과 함께 켜켜이 쌓인 정서를 학습할 수는 없습니다. 정서는 경험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지 학습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머리가 아닌 가슴의 영역인 것이죠. 그 둘의 구분은 어쩌면 '시청'과 '경험'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떨어지는 개연성과 엉성함에 코웃음 치는 사람의 시청, 그리고 그것마저 너무 반가운 사람의 경험 말입니다.
<스타워즈 8-라스트 제다이>가 더 특별한 이유는 이 영화가 후반 작업을 할 때 캐리 피셔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모든 촬영을 마친 후 죽었기 때문에 영화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스타워즈 팬들은 이 영화 속 레아 공주를 볼 때마다 묘한 감정과 만났습니다. 영화 중간 홀도와 레아가 이별하며 동시에 "May the for.."를 서로에게 이야기합니다. 곧 웃으며 레아가 말하죠. 지금까지 자신은 시컨 이야기해왔으니 홀도 당신이 이야기하라고 말이죠. 홀도는 일반적인 인사인 "May the force be with you" 대신 뒤에 한 마디 always를 덧붙입니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always"라고요. 이 대사는 캐리 피셔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죠. 그녀의 사망을 미리 알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스타워즈 팬들은 이 덧붙여진 한 마디 만으로 뭉클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루크가 레아에게 말하죠 "영원히 사라지는 건 없다"라고. 루크도 알았을까요? 아닐 겁니다. 하지만 대수로워보이지 않는 이 짧은 한 마디는 캐리 피셔의 죽음으로 영원히 기억될 대사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를 이야기해볼까요. 어느 분이 그러더군요, 이번 에피소드에 나타난 요다가 너무 구리다. 네, 구립니다. 하지만 다분히 의도된 것이죠. 오리지널 3부작 속 요다는 그래픽이 아닌 인형이었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요다의 모습이 조금 부자연스러운 건 그 인형의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재연했기 때문입니다. 오마쥬인 것이죠. 이런 사소한 장면에서 묻어나는 감정이나 디테일을 캐치하냐 안 하냐는 영화 감상에 넘을 수 없는 차이로 다가옵니다.
여기까지가 <스타워즈 8-라스트 제다이>, 더 정확히 말하면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변호하는 글이었습니다. 뭐냐 그러면, 스타워즈에 대한 정서가 없는 사람은 죽어야 되냐? 그게 아닙니다. 누군가는 <분노의 질주>에, 누군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누군가는 <500일의 서머>에 그런 정서나 애착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500일의 서머>는 여혐 영화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그 영화는 너무나 소중한 영화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 영화에도 애착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그저 그렇다 아니 다하는 현상에 대한 풀이일 뿐,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구절절 이런 글을 쓴 건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는 처음부터 잘 짜인 기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팬들의 사랑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그것에 대한 특별한 정서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뿐인 거죠.
저에게 이번 <스타워즈 8-라스트 제다이>는 너무나 많은 이유에서 스타워즈 시리즈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좋은 에피소드였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라스트 제다이>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는지를 적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