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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Jan 27. 2019

킹덤

그 때깔에 대하여


좀비물인 줄 알았더니 이야기의 껍데기를 하나 벗겨내니 결국, 역시, 아니나 다를까, 사회비판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가 있더군요.


날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었습니다. 비행사든, 의사든, 회사원이든, 변호사든 소재가 뭐든 결국 주인공이 연애하는 게 한국 영화/드라마다. 그런데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소재가 뭐든 사회 비판하는 게 한국 영화/드라마다.


요즘 한국은 예술을 그냥 예술로 내버려두지를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총을 쏘든, 좀비가 튀어나오든, 추격을 벌이든, 연애를 하든 왜 결국은 정치 얘기로 이어지는 것인가요. 왜 자꾸 저급한 선전물들을 만들어대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사회 비판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뭐든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얘기하면 저것도 얘기하고, 정치 얘기하면 연애도 얘기하고,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얘기하면 인간의 선함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부정에 대해 이야기하면 긍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식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영상 예술에 부정의 망령이 든 것 같아요.





부정을 멀리하려는 저의 기질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그들은 미래와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절망이나 비극을 그려도 그 안에서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혹자는 그런 할리우드를 보고 대책 없는 긍정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저는 영화 내내 한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세상이 곧 끝날 것처럼 우울한 영화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와 긍정, 희망을 이야기하는 게 좋습니다. 지옥이 따로 있습니까? 희망이 없는 곳이면 그곳이 지옥 아닌가요. 희망이 어디 따로 있습니까? 내가 찾으면 희망은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부정적 상황에 매몰되어서 절망하고 희망을 잃는 것은 가장 본능적이고 쉬운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어려운 건 그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언젠가 유시민 씨가 그런 말을 했죠. 경제가 어려운 게 아닌데 언론이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세상은 곧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정과 절망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이 온통 부정과 절망을 이야기하면 그게 곧 부정과 절망이라고요. 우리나라가 과연 지금 모든 영화가 쏟아내는 것처럼 오직 절망만이 가득한 곳인가요?






아무튼. 저는 호러나 스릴러 장르는 꺼려하는데 이상하게 좀비물은 또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좀비 드라마가 나온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막상 까 보니 또 사회 비판 이야기라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장르에 충실하면서 부성애(눈물 콧물 빼려는 최루적 의도가 매우우 농후했으나)를 가미한 <부산행>이 훨씬 낫고 참신했습니다. 여기저기 거친 면들도 많았지만 한국의 상업 영화계에서 최초로 개봉한 좀비물 치고 꽤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었죠.


다른 건 차치하고 <킹덤> 1편의 작품 내적인 이야기만 해보면, 저의 가장 불만은 이야기가 늘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에피소드 하나의 러닝타임이 약 40분인데, 막상 내용이 너무 부실했습니다. 20분이어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내용이었어요. 제가 제작자였으면 절반은 드러내라고 했을 겁니다.





얼마 전 개봉했던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영화가 미장센에 대한 집착이 과했다고 생각합니다. '미장센이 이야기를 집어삼켰다'는 것이 저의 한 줄 감상평입니다. 러닝타임을 줄이거나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았어야 했어요. 이야기는 헐거운데 과한 조명의 의미 없는 화면이 참 오래도 이어지더군요. <킹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정도면 다음 컷으로 넘어갈만한데 도통 컷을 안 하더군요. 그런 '늘어짐'은 쇼트의 시작도 마찬가지였어요. 왜 굳이 저 지점부터 시작하지? 한참 뒤부터 시작해도 될 텐데. 왜 굳이 저기서 패닝을 저렇게 오래 질질 끌지? 왜 저기 고정된 카메라가 움직이지도 않고 컷도 안 끝나지? 대사도 끝나고 연기도 충분히 다 보여줬는데 왜 쇼트가 안 끝나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러닝 타임을 절반은 줄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과장이 아니에요). 제 머리에 떠오른 한 가지 생각, 저런 과욕을 부릴 만큼 예산이 넉넉했나 보다. 넷플릭스야 예산만 던져주고 작품에 관여 안 하는 정책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 좀비 & 잔인함 주의!!



https://youtu.be/VVnz6hlC3pQ



영화 <28주 후>를 보면 영화 중간 난데없이 아름다운 미장센이 나오는 씬이 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저 영상 속 아빠의 두 아이가 영국에 도착해서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가는 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스크린에 찾아온 평온함과 아름다움이 정말 낯설게 느껴졌었죠.


"어, 갑자기 뭐지, 이 평화와 아름다움은?"


항상 어둡고 칙칙하고 음울한 분위기로 일관하는 좀비물에서 로맨스 장르에서나 나올 법한 뽀송뽀송한 색감의 느리고 아름다운 컷 어웨이cut-away를 보여준 영화는 <28주 후>가 최초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8주 후>에서의 그런 뜬금포 아름다움은 그 뚜렷한 목적과 역할이 있었습니다. 관객의 혼을 빼놓는 영화 초반의 좀비 습격 시퀀스. (위의 영상 참조!) 그 거칠고 파괴적인 미장센 이후  느리고 아름다운 미장센이 서로 충돌하면서 이질적이고 낯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것이죠. 또한 아름다움 뿐 아니라 영화의 완급을 조절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주인공보다 100미터 달리기가 십 초는 더 빨라 보이는 좀비들이 주인공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오는 모습은 정말 압도적입니다(28 좀비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죠). 그와 함께 나오는 강렬한 오리지널 스코어는 관객의 숨통을 죄어옵니다. 숨 넘어갈 듯 팽팽한 긴장을 주는 시퀀스 후 아름답고 느린 미장센을 삽입함으로써 관객은 긴장을 풀고 좀 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콜라도 찾아 마시고 옆자리에 앉은 여자 친구에게 "괜찮아?" 하는 여유도 좀 생깁니다(하지만 그 후 다시 조여 오는 숨통...).



굳이 <28주 후>를 이야기한 이유는 영화의 때깔, 즉 미장센 연출은 의미와 의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스윙 댄스> 리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스타일은 보이는 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목적'과 '의도',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단순히 예쁘니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웨스 엔더슨의 파스텔 색감과 동화적 미장센은 그가 추구하는 일관적 목적, 의도, 의미와 부합하기 때문에 생명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킹덤>의 화면은 제가 볼 때 어떠한 목적이나 의도도 없어요. 한마디로 그냥 예쁘니까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 때깔에 목적과 의도가 결여되어 있기에 이 영화(드라마)가 한없이 늘어지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때깔과 이야기를 선택해야 한다면 정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언제나 후자입니다. 물론 때깔과 이야기를 물과 기름처럼 분리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 때깔 자체가 이야기 전달의 기능을 하니까요(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칠게 말해서 둘을 분리할 수 있다고 치고). 우리가 여전히 과거의 영화를 찾아보고 즐기는 이유는 촬영기법이나 화면이 구식이고 후지지만 이야기만큼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여전히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때깔은 정말 끝내주는데 한 번 이상은 찾아보지 않는 요즘 영화들은 한 가지, 이야기가 후지기 때문이에요. 영화가 아무리 '영상 언어 visual language'라고 불리지만 언어란 결국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입니다(다시 말하지만 영상 자체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능도 상당합니다). 그것이 목적으로써 존재할 수 없어요. 언어가 아무리 화려해도 이야기가 결여되어 있으면 언어의 겉치장이 오히려 궁핍한 이야기를 부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킹덤>1편 만을 이야기하자면 '속 빈 강정'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여러 편 이어지는 만큼 <킹덤>은 앞으로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해외 자본이 투자되는 거대 프로젝트는 적어도 본전은 건졌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그래야 한국에 더 많은 투자가 들어올 수 있고, 한국의 영화(드라마)가 더 발전할 수 있고, 한국의 문화와 콘텐츠가 세계에서 더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PS.

어쩌면 '때깔'과 '영상'의 개념을 구별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영상이 스크린에 보이는 모든 이미지, 즉 광의의 범위로서 미장센 그 자체라면 때깔은 거기에서 아름다움 혹은 보이는 겉모습을 추구하는 노력의 결과로써의 영상, 좀 더 좁은 개념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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