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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May 24. 2021

아미 오브 더 데드

<새벽의 저주>가 그리워지는 밤



넷플릭스에 대한 기대는 접은 지 이미 오래. 애초에 넷플릭스 영화에 기대한 내가 바보일터. 허나 이번 기대는 전혀 근거 없는 헛된 것이 아니었으니, 금번 <아미 오브 더 데드(줄여서 '아오데'라고 부르겠습니다)>는 잭 스나이더 감독이 좀비 영화의 바이블 중 하나인(혹은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새벽의 저주>를 연출한 후 무려 17년 만에 내놓은 좀비물! 좀비물 좀 좋아한다는 관객이라면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떡밥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론은,

역시 소문난 넷플릭스에 먹을 거 없다. 넷플릭스에 당한 내가 바보다. 


왜 언제나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던가. 오프닝 타이틀에서 촬영감독에 잭 스나이더 이름이 뜨는 순간 싸한 한기가 척추를 훑고 지나갑니다. 거기에 스토리, 프로듀싱까지 잭 스나이더? 화려한 한기가 온몸을 감쌉니다. 물론 감독이 연출 외 다른 부분까지 맡는다고 해서 모든 영화가 망작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연출, 제작, 촬영, 각본까지 맡았던 <로마>가 있죠.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의 영화에서 감독이 맡는 역할이 많아질수록 그 영화에는 감독의 에고가 짙게 투영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집중되어야 할 감독의 역량이 분산될수록 영화가 산으로 가기 십상이라는 것. 제 경험 상 상업영화의 경우 감독이 영화 제작 전반에 관여하는 영화는 성공보다는 실패로 간 사례가 많았습니다. 


영화는 협업의 예술입니다. 물론 영화는 감독의 비전이 구체화되고 시각화되는 예술이지만 그의 에너지와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제한된 에너지와 시간을 나눠 모든 작업에 분배하는 것보다 본연의 임무인 연출에 집중하고 나머지 부분은 감독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크루들에게 위임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현장에서 뿐 아니라 프로듀싱도 마찬가지. 감독은 자신만의 비전에 빠져 아집을 부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 아집은 대중에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오직 감독 자신만 자신이 낳은 자식과 사랑에 빠지는 기형적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 상업적 대중성과 예술적 아집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프로듀서의 역할 중 하나라고 볼 때, 감독이 프로듀서 역할까지 한다는 것은 곧 감독이 균형감을 잃어도 견제할 주체가 사라진다는 뜻, 즉 감독이 대중이 아닌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예술 영화, 독립 영화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두세가지 역할 정도 거뜬히 하는 천재 감독 또한 다른 문제이기도 하고요).




아니나 다를까 <아오데>에서 감독의 욕심은 그대로 드러납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뼈대인 이야기와 캐릭터는 대충 지나가버리고 불필요한 부분을 오래 끌면서 미장센(그렇게 썩 뛰어나지도 않지만)에 신경쓰는 이 영화는 전형적인 망작의 '테크 트리'를 그대로 따라갑니다. 


어떤 부분들이 아쉬웠나. 수 많은 요소들 중 몇 가지만 짧게, 좀비물이니 만큼 우선 좀비와 관련된 부분만 짚어보면,


첫째, 이랬다 저랬다 갈팡질팡하는 좀비들.

다름 아닌 장르물로서 <아오데>의 큰 구멍은 좀비의 본성이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뛰어다니고 어느 부분에서는 "어어어어...."하면서 천천히 걸어다니는 좀비들. 제가 수많은 좀비 영화를 봐왔지만 이런 일관성없는 좀비들은 처음입니다. 열에 반응한다면서 주인공의 딸이 숨어있어도 그냥 지나쳐 버리기도 하죠. 곱씹을수록 일관성이 결여된 허술한 좀비 설정. 누군가는 그게 뭐 어떠냐 하시겠지만, 이런 허술한 설정은 세계관을 직조하는 핍진성의 완성도는 차치하고 영화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어그러뜨립니다. 왜냐, 좀비의 행동양식(!)에 따라 그 영화가 만들어내는 서스펜스가 근본적으로 바뀌거든요. 천천히 걸어다니는 좀비 영화는 아무리 죽여도 끝도 없이 다가오는 좀비들로 인해 알면서도 눈 뜨고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서서히 목을 조여오는 답답하지만 묵직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반면, '벤 존슨'처럼 뛰어다니는 좀비 영화는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감각적이고 짜릿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좀비의 행동 양식에 다라 영화 전반에 걸쳐 통일적인 긴장의 선이 형성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좀비들이 어느 감각에 반응하느냐 또한 대단히 중요합니다. 시각? 촉각? 후각? 청각? 좀비 영화에서 결정적인 서스펜스는 이 좀비의 감각을 통해 만들어지거든요. 그런데 이 <아오데>는 이럴 땐 뛰어 다니고, 저럴 땐 느리게 다니고, 온도에 반응한다면서 숨어 있어도 그냥 지나가버리고 말죠. 개연성도 떨어지고 이도저도 아닌 좀비 영화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는 어설픈 디테일입니다. 그리고 번외이기는 하나, 좀비 장르의 팬들은 이 영화가 '뛰어다니는 좀비'가 나오냐 '걸어다니는 좀비'가 나오냐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뭐 좀 쓸데없는 집착이기는 합니다만....


둘째, 동물은 왜 두 마리만 좀비인 것인가. 

라스베이거스에 있던 수많은 동물 중 왜 오직 두 마리만 좀비가 된 걸까. 예산이 부족한 문제라면, 아무 의미없이 폼만 잡다 소모되는 궁색한 두 마리 동물은 차라리 안 나오는 게 낫지 않았을지...


셋째, 그래서 '알파'와 그의 여자 친구는 누구인가.

일관성없이 오락가락하는 좀비 설정은 차치해봅시다. 라스베이거스에 존재했을 수많은 동물 중 말과 호랑이 단 두 마리만 좀비가 된 것도 그러려니 해봅시다. 근데, 그래서, '알파'는 대체 무엇입니까. 이 우두머리 설정이란 참 밑도 끝도 없습니다. '알파'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왜 누구는 곧바로 물어서 좀비로 만들고 누구는 살려서 묵혀두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알파의 여자 친구 설정도 마찬가지. 왜 유독 그녀만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인지, 그녀가 특정한 종족이나 특별한 종류의 좀비인 것인지, 그녀가 '무녀' 혹은 '무당'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지, 그 그로테스크한 움직임과 치장은 그저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하는 비주얼적인 설정에 불과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네, 굳이 좀비와 알파의 기원이나 정체를 세세히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좀비 영화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더 나아가 좀비라는 존재가 이미 충분히 많이 사용된 익숙한 소재이니 만큼 구구절절 소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깔끔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이색적인 설정을 새로 추가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문제는 <혹성 탈출>처럼 말을 타고 다니고 감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지능이 있는 것이 분명해보이는 좀비 대장의 출연은 좀비 장르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설정인 만큼 이것에 대한 설명이나 캐릭터 구축이 필요한데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오직 '폼'을 잡는 데에만 소비된다는 것은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연출입니다. 결국 오락가락하는 좀비의 행동양식, 오직 두 마리만 등장하는 좀비 동물, 알 수 없는 알파와 그의 여자 친구 등의 연출을 통해 우리는 설정과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 스토리와 연출을 맡은 잭 스나이더 감독이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았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아오데>의 깊은 고민의 부재로 부터 비록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얕음"은 좀비 설정을 넘어 이야기와 캐릭터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납니다. 몇 가지만 들어보면,


첫째, 악역인 다나카의 캐릭터 부재.

애초에 이 영화가 진행되는 근본 동기, 즉 잘 살고 있는 주인공에게 나타나 어떤 액션을 취하도록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하는 동기는 악역인 '다나카'의 등장입니다. 주인공에게는 돈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원래 그의 목적은 알파 여자 친구의 머리를 가져다 좀비 군대를 만들려는 것. 그렇다면 이 영화가 비중 있게 다루고 공들였어야 할 캐릭터는 다름 아닌 '다나카'였어야 합니다. 그는 누구이고, 왜 하필이면 좀비 군대를 가질 목적을 갖게 되었는지, 그 좀비 군대로 무슨 일을 벌이려는 지 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의 캐릭터나 동기에 정당성을 부여해서 설득력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하다못해 90년대 영화 속 악역들처럼 그가 세계 정복을 원하는 건지, 변태적 취향이 있는 건지 그래도 그가 누구고 동기가 뭔지는 대충 말해줘야죠. 어처구니없는 건 애초에 주인공 팀이 파견된 원인이 돈이 아닌 좀비 군대였다는 사실도 '다나카'의 입이 아닌 그가 딸려 보낸 똘마니의 대사 한 줄로 공허하게 지나가 버리고 맒으로써 기승전결 서사의 키를 쥐고 있는 다나카를 전혀 중요한 캐릭터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화 전체를 추동시키는 동기가 빈약하니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액션에 힘이 들어갈 리 없습니다. 차라리 주인공 일행이 금고를 열어보니 돈이 없었다면? 그래서 이후 주인공 일행의 여정이 돈을 위한 여정이 아닌 생존을 위한 여정으로 급반전 된다면? 그렇다면 그 반전을 통해 다나카의 동기가 힘을 얻고 영화의 에너지가 상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클리셰적인 주인공과 딸의 관계 회복도 더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었을 테고 말이죠.


둘째, 굳이 알파와 알파 여자 친구가 없어도 되는 이야기 구성.

<아오데>는 알파와 여자 친구에게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만 사실 이 둘이 없어도 큰 문제없이 흘러갑니다. 영화 배경인 라스베이거스에 좀비가 퍼진 시작이 알파이긴 하나 잭 스나이더 감독의 전작이나 여타 다른 좀비 영화처럼 "그냥" 좀비가 나타났다고 해도 이 영화는 사실 큰 상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알파라는 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무게 잡는 것 이상의 어떤 큰 의미를 지니지 않기 때문에 굳이 그가 좀비들을 끌고 나타나지 않아도 이 영화가 시작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이죠. 그의 여자 친구도 마찬가지. 그녀는 괴이한 몸동작을 보이고 알파와 키스를 하는 것 이상의 어떤 역할이나 의미도 없습니다. 만약 알파 여자 친구가 '다나카'에게 좀비 군대를 꾸리기 위해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면 애초에 알파 캐릭터를 없애고 영화의 악역을 여자 친구로 하는 게 맞습니다. 그게 알파에 쓸데없이 낭비되는 시간을 없애고 여자 친구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어 더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좀비를 재생산하는 여자 좀비'라는 새로운 좀비 캐릭터를 창조해내고 싶었다면 <에일리언 2>에서 '퀸 에일리언'이 알을 낳는 것처럼 충격적인 번식 행위를 하는 미장센을 삽입했다면 어땠을까. 쓸데없이 다른데서 말고 그 장면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서 스타일리시하고 임팩트있는 연출을 했다면 별다른 캐릭터 구축이 없어도 알파 여자 친구는 좀비 영화에 대해 말할 때 영화는 비록 망했으되 인구에 두고두고 회자될 수 있는 매력 있는 새로운 좀비로 남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비로 파괴된 라스베이거스, 그런 좀비들을 번식시키는 행위의 주체인 여자 좀비, 그런 여자 좀비를 사냥하기 위한 여정과 반전이라는 이야기 구조가 조금은 더 탄탄해지고 영화가 설득력과 독특한 색을 지닐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캐릭터인 알파 여자 친구는 왜 그렇게 쉽게 죽었는지, 아니 그리고 애초에 왜 '제물'을 바친다는 설정은 왜 넣은건지...)


셋째, 허술하디 허술한 캐릭터. 

이 영화에는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나름 색을 지닌 듯 보이지만 실상 금고를 따는 독일계 캐릭터를 제외하곤 뚜렷하게 개성을 드러내는 캐릭터가 전무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헬기 조종사와 금고 전문가를 제외한 나머지는 특별한 역할 없이 머릿수만 채우는 멤버거든요. 그러니 감독이 특별히 캐릭터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다른 캐릭터들은 애초에 개성이 드러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주인공 캐릭터 마저 매력이 없는데 다른 조연들은 오죽 할까...


만약 좀비 사냥을 유튜브에 올리던 캐릭터가 자신들의 여정을 몰래 실시간 스트리밍 했다면? 아마 지금과는 사뭇 다른 흥미로운 사건들이 일어날 여지가 많았을 겁니다. 만약 한 명의 여자 캐릭터에게 M60이나 미니건 등 거대하고 파괴적인 무기를 들려줬다면? 큰 사건을 만들어내지는 않더라도 액션 쾌감이라도 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겠죠. 이런 개별적인 캐릭터의 부재뿐 아니라 20분 넘게 할애해서 팀을 모으는 과정 조차 이전 하이스트 영화나 액션 영화에서 수 없이 봐온 클리셰의 반복입니다. 이야기 어디에서도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더 많은 부분들이 있지만 아무튼,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아오데>를 한 없이 얕은 좀비 영화로 전락시킵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창작력이 이제 다 고갈되어 버린 것일까. <새벽의 저주>, <300>, <와치맨>을 끝으로 딱히 괜찮은 영화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참 논란 많았던 <저스티스 리그>도 저는 대단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언젠가부터 잭 스나이더 감독은 이야기의 효과적인 전달보다는 보이는 것에 더 치중하는 스타일리스트로 전락한 채 예전에 확립한 자신의 스타일을 반복하며 소모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안타깝습니다. 그가 히어로물에 그만 집착하고 다른 의미있는 시도를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벽의 저주>같은 좋은 좀비물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한 편만 더 만들어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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