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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May 30. 2022

탑 건: 매버릭


< 아직 한국 개봉은 안 한 관계로 기존의 제 리뷰와 달리 최대한 내용과 스토리에 대한 리뷰는 자제하고 인상 비평을 해보려고 합니다 >



이런 경험은 거의 처음인 것 같습니다. 영화 보는 내내 소름이 돋고, 뭉클하고, 감탄하고, 찡한 감정이 뒤섞여 저를 "괴롭혀서" 상영 시간 내내 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는 가족과 관계에 관한 영화입니다. 화려한 전투기 시퀀스를 빼면 명백히 스토리, 내러티브, 캐릭터, 구성 모두 80~90년대 방식과 감성으로 가족과 관계의 소중함을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는 너무 뻔하다고, 누군가는 너무 구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이 구식 감성의 단순한 정공법 연출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족과 인간관계를 향한 영화의 따뜻한 시선이 정말 좋았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대사 한 마디, 시선 하나에 뭉클뭉클 콧날이 시큰거려 혼났습니다. 어쩌면 영화를 보면서 거듭된 이 모든 감정의 밀물과 썰물은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여러 일들을 겪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20대의 제가 이 영화를 봤다면 가족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여러 감정선에서 제가 느낀 이 일련의 콧날 시큰한 뜨거움을 느끼지 않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영화의 원래 개봉이 2019년이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연기됐습니다. 배급사인 파라마운트는 그간 끊임없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추진했지만 톰 크루즈가 이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개봉해야 한다고 결사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네, 톰 형이 제대로 봤습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를 모바일 디바이스나 TV로 보는 건 죄악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보는 영화"와 "경험하는 영화". 경험하는 영화를 볼 때는 큰 스크린과 좋은 사운드의 상영관에서 보는 게 맞습니다. <탑건: 매버릭>은 반드시 당신이 볼 수 있는 가장 큰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세요. 네, 아이맥스 비싸죠. 영화 한 편 보는데 이 돈을 꼭 주고 봐야 하나 선뜻 손이 안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탑 건: 매버릭> 같은 쾌감을 주는 영화는 10년에 한 편 나올까 말까 하는 영화입니다. 그런 좋은 영화라면 한 번쯤은 아이맥스에 조금 더 투자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냥 다음에 볼 영화 한 편 건너뛰고 그 돈까지 땡겨서 아이맥스에서 봤다 생각하면 대충 계산이 비슷하게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그 뭐 대단히 큰 차이 있냐 싶으신 분들, 한 번 액션 영화를 한 편은 작은 상영관에서, 한 편은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한 번 보세요. 그 차이가 온몸으로 느껴지실 겁니다.







<탑 건: 매버릭>을 이야기하면서 전투기 시퀀스 이야기를 뺄 수 없겠죠. 만약 당신이 밀덕(밀리터리 덕후) 이거나 전투기 혹은 메카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심하세요, 극장에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전투기 조종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멋진 경험이 될 것입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일련의 공중전 시퀀스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도 듣지도 못한 황홀한 샷들의 향연입니다. 


 

<탑건: 매버릭>은 지금까지 나온 그 어느 영화보다 관객이 "날 것의 전투기 액션"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촬영 BTS 영상을 보면 CG를 입힌 컷들이 많지만 실제 영화에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CG인지 거의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가속력과 중력에 따라 이리저리 배우들의 몸이 움직이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 주변 지형지물을 지나가는 전투기와 묻어나는 전투기의 그림자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펼쳐지고 있는 모든 이벤트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줍니다. 사운드 효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사운드 효과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만 언제나 주목받지 못하는 "숨겨진 영웅"이죠. 이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낙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쏟아지니 청각에 주목할 겨를이 없기도 하지만 가능하다면 전투기의 엔진 소리, 내부 곳곳에서 끼끽거리는 소리, 바람을 가르며 지나가는 소리 등 전투기 내부와 외부에서 들리는 사운드 효과에 한번 주목해보세요. 각 컷에 따라 정말 다양하고 디테일한 소리가 들려온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겹겹의 레이어가 쌓여 만들어내는 사운드 효과들이 이미지의 사실성과 쾌감을 배가시키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도 알게 되죠.



 수많은 공중전 중 플레어를 쏘는 장면만 대표적으로 말해보고 싶습니다. 플레어는 전투기의 엔진 열을 추적하며 따라오는 미사일을 회피하기 위해 강한 열을 내는 물질을 아래 사진처럼 방사하는 것인데요.







사실 항공기가 플레어를 쏘며 미사일을 회피하는 장면은 다른 영화에서도 수 없이 봤던 장면입니다. "와, 멋지다". 대부분은 딱 그 정도? 왜냐하면 화려한 플레어를 쏘고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원경에서 잡히는 그 장면들에서 긴장감을 뽑아내기란 쉽지 않거니와 결정적으로 그 일련의 시퀀스에서 CG티가 많이 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탑건: 매버릭>은 다릅니다. 좁디좁은 전투기 조종석에 함께 타있는 듯한 경험을 주는 이 영화에서는 이리저리 급박하게 회피 기동을 하다가 미사일이 가까워져 플레어를 방사하는 순간, 조종석 바로 옆에서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하는 크고 둔중한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방사되는 불꽃과 함께 전투기를 꺾어대는데 그 강렬한 사운드와 이미지의 하모니가 만들어내는 공감각적인 경험이 정말 짜릿합니다. 이 역시 아이맥스 상영관이었기에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적 체험"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끝으로 이 영화를 말하면서 톰 크루즈를 빼놓을 수 없겠죠. 아, 톰 형.. 확실히 나이를 많이 먹은 톰 형은 많이 늙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끝내주는 매력을 발산합니다(눈가에 주름이 자글 하지만 페넬로페(정정:제니터 코넬리) 누나 역시 매력적입니다!). 잠깐 훑어본 CNN의 <탑건: 매버릭> 리뷰에서는 톰 형을 "Cruise, one of our last bona fide Movie Stars"라고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이 짧은 표현은 굉장히 많은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last", "bona fide", "Movie Stars". 굳이 "last"라는 형용사를 쓴 이유는 이제 대부분의 영화가 예산 절감의 일환으로 별 것 아닌 자동차 드라이브 시퀀스마저 그린 스크린에서 CG를 입혀 촬영하는 지금, 굳이 많은 인원, 귀찮은 과정, 높은 예산과 위험을 무릅쓰고 최대한 CG를 배제하면서 직접 스턴트와 촬영을 고집하는 할리우드의 마지막 스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단어는 "Movie Stars". 소문자가 아닌 대문자입니다. 그저 그런 어중이떠중이 셀럽 스타가 아닌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스타, 진정한 스타를 강조하고 싶어서 저렇게 대문자를 쓰지 않았나 합니다. 







그렇습니다. 현재의 톰 크루즈는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아우라를 내뿜는 상징적인 배우이자 스타입니다. 그가 알 파치노, 말론 브란도, 앤서니 홉킨스 류의 '세기의 연기파'로서 위대한 배우로 분류되는 건 아닙니다(개인적으로는 상업 액션 영화만 찍기 때문에 톰 형의 연기가 평가절하 당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상업 영화'를 말함에 있어 톰 크루즈는 누구도 그 아성을 넘을 수 없는 최고의 금자탑을 쌓은 존재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아주 사소한 컷도 CG로 범벅되어서 갈수록 영상에서 생명력이 사라지는 지금, CG 작업을 최대한 배제하고 실제 촬영을 고집하는 그의 영화에서는 여전히 박동하는 날 것의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진짜 저걸 실제로 했단 말이야?" 탐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는 예고편도 예고편이지만 그가 실제로 행한 (미친)스턴트들 때문에 화제가 되곤 합니다. 그가 직접하는 "목숨을 건 스턴트". 이미 모든 촬영과 편집까지 무사히 끝난 영화이지만 그가 등장하는 액션 씬에서 오금이 저린 아찔한 스릴이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안전한 실내에서 그래픽을 입힌 이미지가 아닌 피와 땀이 직접 느껴지는 액션이 주는 실제감. 오직 톰 크루즈 만이 줄 수 있는 '실제감'. 이 인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실사와 CG컷을 구분하기 힘들게 만드는 혼란을 줍니다. 그래서 그래픽 이미지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주죠. 그렇기에 그가 출연하는 영화는 같은 속도감, 같은 앵글이라고 해도 다른 영화보다 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사생활과 종교와 관련한 여러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톰 크루즈는 이제 칸느에서 명예 황금 종려상을 수상할 만큼의 거인이 되었습니다. 분위기 잡는 예술 영화 한 편 출연하지 않고 오롯이 상업영화에 천착했지만(물론 거장들과의 작업도 많지만) 그의 집착에 가까운 고집과 철학, 꾸준함으로 살아있는 전설로서 가장 존경받는 영화인가 되었습니다. 부디 톰 형이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좋은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그의 영화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으니까요.







최고의 테크니션과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액션 시퀀스, 그와 대비되는 예스러운 캐릭터와 이야기. <탑건: 매버릭>은 마치 아주 잘 관리된 오래된 클래식 자동차와 같은 느낌입니다. 이 차보다 빨리 달리는 차, 더 편리한 차, 더 에너지 효율이 좋은 차는 얼마든지 있지만 매력만큼은 그 어떤 차도 비교할 수 없는 그런 클래식 자동차 말이죠. 코로나로 인해 정말 긴 기간 제대로 된 영화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영화다운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영화평에 상당히 짠 걸로 기억되는 가디언지는 "Personally, I found myself powerless to resist; overawed by the "real flight"... I was defeated, you won the war. I give up" 이라는 리뷰와 함께 5점 만점에 4점을 줬네요. 비단 가디언 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영화 평론가들이 상당히 높은 평가를 보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CG에게 잠식당하며 생명력을 잃어가는 요즘 시네마에 실망하는 평론가들에게 이것이 시네마의 힘이라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주 잘 나온 영화의 결과물도 결과물이지만 현대 영화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많은 현실적 제약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굳이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톰 크루즈와 제작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찬사 같은 것이 아닐까요. 영화를 보고 여운에 예고편을 다시 보니 한번 더 보고 싶어 집니다. 




ps 1.

<탑건: 매버릭>은 지난 <탑건 1>과 감정선이 강하게 얽혀있습니다. 1편을 보지 않으신 분은 꼭 보고 가시길 추천드립니다.


ps 2.

영화 시작 <탑건>의 메인 테마곡 중 하나인 <Danger Zone>과 함께 항공모함 갑판에서 이뤄지는 일련의 몽타주 시퀀스는 제 일생 중 가장 오랫동안 소름이 돋아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몽타주인데 하 왜 그렇게 소름이 멈추지 않던지..


ps 3.

영화의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는 시퀀스는 <스타워즈 4>의 야빈 전투에서 좁은 협곡같은 터널을 지나 데스 스타를 파괴시키는 '트렌치 런' 시퀀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스타워즈 팬이라면 한 번 돋았던 소름이 한 번 더 돋는 '이중 소름'을 경험 하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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