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갈수록 뭘 봐도 마음이 쉬 동하지도 않고 시니컬하고 시큰둥합니다. 예전에는 별 것도 아닌 것에 감탄하고 감동하고 흥분하기 일쑤였는데 나이 먹으니 나도 어쩔 수 없나보다, 말라가는 피부처럼 마음도 건조해지는 것인가 슬프지만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이었습니다.
요즘 <스즈메의 문단속>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중 예전에 보려다가 안 본 <날씨의 아이>나 한번 봐야겠다싶어 아무 생각없이 틀었는데.. 영화 내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씬들에서 순간 울컥 울컥하고 코가 찡해졌습니다. 이상한건 명백한 하이라이트 컷, 예를 들면 슬로우 모션이 걸린다거나 잔잔하게 깔리던 음악이 확 터지면서 와이드 샷이나 롱 샷으로 잡으면서 극적인 효과를 주는 그런 장면들이 아니라 정말 사소하고 평범한 장면들에게 그랬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왜 이러지 미쳤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죠. 그냥 좀 힘든 상황 때문에 그런건가 싶지만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내 상황과 비슷한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영화입니다. 중딩들의 말도 안 되는 얘기에 대체 왜 이렇게 몰입을 하게 된 거고 왜 그 아이들을 응원하고 있는 건지, 최근 본 영화 중에 이렇게 두 주인공의 관계가 진심으로 해피하게 끝나길 바랬던 적은 없던 거 같습니다.
왜 그랬던 걸까, 영화 속 그냥 대책없이 맑고 순수한 마음과 관계들 앞에 무너진 걸까.
<날씨의 아이> 평을 조금 훑어봤는데 대부분 개연성이 없다는 혹평 일색이었고 제 마음에 드는 평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까다롭게 논리적 개연성의 잣대를 대자면 신카이 마코토의 다른 작품들도 살아남기 쉽지 않을텐데 왜 유독 이 영화에 더 까다로운지, 어쩌면 개연성을 떠나 세계관을 대하는 남자 주인공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저에게는 <날씨의 아이>가 조금은 아름답고 특별한 영화로 남을 듯 합니다. <너의 이름은>은 실제했던 큰 비극을 이렇게 아름답게 간접적으로 잘 그려낼 수 있구나 좋게 본 정도였는데, <날씨의 아이>에서는 뭔가 이성의 끈이 탁하고 끊어져 그냥 마음이 와르르 무너진 느낌.
우리나라도 "참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나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