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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동네들

by Jose


상수동이나 성수동, 망원동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내가 사는 성북동도 시나브로 가랑비에 옷깃 젖듯 나름 힙한 동네가 되어가고 있다. 이곳저곳 임대가 나붙고 곧 공사가 시작되고 꽤 근사한 가게가 들어선다. 예전의 나였으면 당장 가게의 근사함에 취했겠지만 이젠 그 달콤한 유혹과 함께 쫓겨난 이전 임차인 혹은 세입자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얼굴도 이름도 모를 그들의 상실감과 좌절. 지금 그들이 마주한 슬픈 결말을 피하고자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고 일했던 과거의 어느 날들. 그 공감과 처연함.

임대료가 오르고 세입자가 쫓겨난 자리에 멋진 카페가 들어서고, 오래된 집이 헐리고 말쑥한 새 건물이 들어선다는 것. 부조리라면 세상에 또 이런 부조리가 있을까. 새로운 주인의 희망과 가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손님의 즐거움이 누군가의 슬픔과 절망을 먹고 자란다는 것. 하나의 공간에 누군가의 좌절과 누군가의 희망이 켜켜이 쌓인다는 것. 그것이 어른들이 말하는 '그저 삶'이란 걸까. 성북동과 함께 오랜 세월을 이어온 세탁소가, 분식집이, 문방구가 사라진다. 여느 곳과 같이 이곳 성북동에도 젊음의 힙함은 노년의 낙향과 함께 찾아왔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건물 자체를 몽땅 부수기보다 가급적 최대한 외관을 살리면서 내부만 바꿨으면 하는 것이다. 이 동네를 떠난 누군가가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그때 그 공간에 깃든 기억과 감정, 처음 오픈했을 때의 설렘과 막연한 두려움, 장사가 잘 될 때의 환희, 끝내 장사를 접을 때의 상실감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공간이란 시간과 기억을 담는 그릇과 같은 것이니까. 우리의 정체성이란, 그리고 역사란 그렇게 시간의 끝과 끝이 이어지며 점점 굵어지는 것은 아닐까.

늦은 밤 운동을 마치고 터덜터덜 명륜동을 지나 동네로 걸으며. 이러니 사람이란 나이를 먹고 경험하며 재미없어지는 거구나 싶은 애처로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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