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평양민속공원, 그리고 김기덕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장성택을 증오하게 된 김정은은 여러 건수를 잡아 잔혹하게 그를 처형하고, 장성택의 핵심 사업 중 하나였던 평양민속공원을 철거합니다.
평양민속공원은 남한의 경복궁, 창경궁 같은 명소를 갖길 원했던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축구장 10개가 넘는 부지에 안 그래도 쪼들리는 살림을 쥐어짜 2억 달러라는 거금을 쏟아부은 거대한 프로젝트로써 국내외에 엄청난 홍보를 했습니다. 이후 평양민속공원은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결혼한 신랑 신부가 필수로 찾는 북한의 관광명소가 됐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집권한 김정은은 장성택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앙심 때문에 아버지의 거대한 사업이었던 평양민속공원을 철거해버렸고, 더 나아가 그 공원에 대한 홍보 자료뿐 아니라 국내외 모든 자료와 문서에서 그 공원을 삭제해 평양민속공원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도록 명령했습니다.
저의 흥미를 끈 것은 다름 아닌 이 '역사' 부분이었습니다. '역사에서 특정 사실을 삭제'하는 작업은 소설 <1984>에서 이미 재연된 바 있습니다. 뉴스에서 특정 사실을 선택적으로 삭제하거나 왜곡시켜 역사를 재구성함으로써 국민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 아마도 이런 역사 재구성은 사회주의 국가의 공통점이 아닐까 하는데(문화 대혁명에서도 엄청난 스케일로 이뤄지니), 저의 의식의 흐름은 급기야 얼마 전 있었던 '김기덕의 교과서 삭제' 사건까지 이어졌습니다.
미투 사건으로 칸의 영웅에서 추악한 범죄자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김기덕, 그 사건 얼마 후 교과부는 교과서에서 그에 대한 부분을 삭제할 것을 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지금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작품의 훌륭함 여부를 따지는 기준은 '미학적 요소'이지 작가의 '도덕성'이 아니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작가가 참 인성도 좋고 착하니 그의 작품은 위대하고, 저 작가는 참 못 됐으니 위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작품은 그 작가와 별개, 즉 작품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건축가가 법을 어겼다고 해서 미술관의 아름다움이 변하는 것이 아니고, 차이코프스키가 아무리 변태적이었어도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의 아름다움이 폄훼되지 않고, 피카소의 여성 편력이 이미 평가가 끝난 그의 그림의 아름다움과 입체주의란 시대의 큰 흐름을 사라지게 하지 않고, 휘트니 휴스턴이 아무리 마약에 찌들고 하나밖에 없는 딸을 외롭게 방치했어도 여전히 <I Have Nothing>이 아름다운 것처럼 말입니다.
미투 범죄로 인한 김기덕의 교과서 삭제 사건(!)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더럽고 추한 것은 이 사회에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애초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현실을 부정하는 이런 행위는 어떤 아름다운 이상주의적 프레임에 사회를 욱여넣으려는 북한식의 폭력적인 국가주의 행위로 느껴집니다. 현실 사회를 어떤 멸균실 같은 곳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현실은 멸균실이 아니고 유토피아도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역사를 조작해 김기덕이란 존재를 기억에서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아름다움과 작가의 부도덕을 함께 기록하고 담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현실의 복잡성과 다양성에는 눈 감은 채 존재할 수 없는 관념적 이상주의에서 둥둥 떠다니는 대신, 이 사회의 명과 암, 모순과 부조리를 똑바로 직시함으로써 현실이란 땅에 두 발을 딛는 행위이다. 우리는 이런 공론화를 통해 현실을 왜곡된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와 균형 잡힌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문화와 사회에 대한 국민 전반의 의식을 신장시키고 진정으로 성숙한 진보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서구 사회의 풍성한 역사와 사회, 문화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기억하고 싶어 하는 과거, 그 자랑스러운 과거만큼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과거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기억하고 후세에 전달하는 것. 장점과 단점, 양가적인 것을 모두 기억하고 그것에 대한 열린 토론을 하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올바르게 기억하는 방법이자 현실을 보고 싶은 방식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길 일 것입니다.
정체성은 기억을 통해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란 국가의 모습, 고유한 정체성은 바로 이런 올바른 기억의 퇴적층에서 비로소 만들어질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