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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Feb 27. 2019

2019 OSCAR 뒷 북

그래도 그냥 지나갈 순 없기에



한때 오스카 후보에 오른 영화들은 어떻게 해서든 찾아보려 애쓰고, 중계를 생방으로 보려 백방으로 알아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땐 방구석에서 중계를 보며 좋아하던 영화가 상을 받으면 '예쓰!' 히죽거리고, 기대하던 영화가 상을 못 면 말도 안 된 구시렁거리고, 배우의 수상 소감이 멋지면 함께 벅차 하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겨우 얍삽하게 결과만 주욱 훑어보고 있으니 영화를 향한 사랑이 식은 것인지 저 자신에게 부끄럽네요.


암튼 각설하고,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 아쉬워 2019 오스카 시상식 몇몇 부문에 대한 저만의 코멘트를 조금이나마 매달아보려고 합니다. 본 코멘트는 혼자 방구석에서 '예쓰!' 거리고 구시렁거리며 북 치고 장구 치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라는 점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제

이번 오스카 시상식의 가장 큰 화제는 무엇보다 사회자로 지명됐던 '케빈 하트'의 중도하차입니다. 대충 개요는 이렇습니다. 케빈 하트가 과거(꽤 오래전)에 부적절한 발언을 트위터에 올렸던 사실이 발견되었고 아카데미 측은 그 문제에 대해 케빈 하트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니다. 케빈 하트는 "그것은 대단히 오래전 일이며 나는 그때와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난 이미 이전에 사과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카데미가 뭐라고 지금 와서 나한테 또 사과하라고 하느냐 난 못하겠다"며 버텼고 급기야 아카데미는 케빈 하트의 사회자 지명을 철회합니다. 하지만 이 시상식 에서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고 백방으로 사회자를 찾던 아카데미는 결국 케빈 하트에게 다시 사회자 맡기를 부탁하지만 거부당합니다. 결국 사회자 찾기를 포기, 30년 만에 사회자 없는 시상식으로 결정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미국 현지에서는 이 일에 대해서 케빈 하트가 잘못했다 아카데미가 잘못했다 시끌시끌했었죠.





작품상

작품상은 아카데미가 어떤 선택을 해도 뒷 말이 가장 많은 부문입니다. 전통적으로 5개 영화만이 후보에 올랐었는데, 최대 10개까지 작품 수가 늘어나면서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매년 이 영화는 왜 후보에 없냐 저 영화는 왜 없냐 말이 하도 많아서 아카데미 측에서 후보작 수를 늘린 것인데, 후보작을 늘리니 이번에는 무게감이 없다, 희소성이 줄었다 또 말이 많은 거죠. 아카데미도 참 말 많은 사람들 눈치 보랴 골치 꽤나 아플 것 같습니다). 특히 올해는 슈퍼 히어로물로는 처음으로 <블랙 팬서>가 작품상에 올라 이에 대한 많은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예전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이 왜 작품상 후보에 없냐 무척 비난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주제가 <블랙 팬서>의 작품상 수상 여부로 옮겨가면 대부분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정도에서 합의가 되더군요. 작품상의 유력한 후보로는 언제나 <그린 북>과 <로마>로 좁혀졌었죠. 이번에 수상한 <그린 북>은 여러모로 오스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입니다. 다른 어떤 시상식보다 보수적인 오스카는 전통적으로 '드라마', '실화 바탕', '희망' 이 세 요소가 들어간 영화를 선호해왔었거든요. 어쨌든 작년 여러 파격적 행보를 보였던 오스카는 올해 <그린 북>에게 작품상을 수여하며 뭔가 호흡을 가다듬는 모양새를 보였습니다.





남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은 사실 <보헤미안 랩소디> 레미 말렉과 <스타 이즈 본> 브래들리 쿠퍼의 싸움이었습니다. 연기상은 연기도 연기지만 '배역'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라이브로 직접 연주와 노래까지 했던 브래들리 쿠퍼도 훌륭했지만 더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배역을 맡았던 레미 말렉에게 남우주연상이 주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미국 라디오 NPR에 출연해서 레미 말렉이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조곤조곤 느릿느릿 말하는데 할 말은 다하는, 꽤 말을 잘하던 인상이었습니다. 그 인터뷰에서 에이전시도 없던 무명시절 배역을 맡기 위해 아빠와 함께 노란 편지 봉투에 프로필 사진을 넣어 에이전시에 돌리고, 피자에 메모를 붙여 촬영장에 돌렸다던 일화를 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레미 말렉이, 사실 <보헤미안 랩소디> 전에는 큰 인지도도 없고 미드 <미스터 로봇> 외에는 별 대표작도 없던 그 레미 말렉이 이렇게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걸 보면 참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거구나 싶습니다. 이번 오스카에서 수상 소감으로 무슨 말을 했나 궁금해 잠깐 영상을 봤는데 꽤 좋은 이야기를 했길래 전문을 잠깐 옮겨 봤습니다,


오 마이 갓, 저희 어머니가 여기 어딘가에 앉아계십니다. 사랑해요 어머니. 우리 가족,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진 못하시지만 아마 하늘에서 절 굽어보고 계실 겁니다. 정말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도움을 주신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아카데미, 이 자리까지 제게 기회를 주신 분들, 프로듀서 그래햄 킹, 데니스 오설리번, 폭스와 뉴 레전시 관계자 여러분, 제가 최선의 캐스팅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꽤 잘 해낸 것은 같긴 합니다.(웃음) 퀸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이룩한 놀라운 일들과 훌륭한 업적에서 제가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 빚은 영원히 갚지 못할 것입니다. 저만큼 훌륭하고, 저보다 더 훌륭한 제작진들과 배우들,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전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겁니다.
어린 시절 저(Little Bubba Ramy)에게 네가 크면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될 거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그 곱슬머리의 어린이는 너무 좋아서 정신이 나가버릴 겁니다. 그 아이는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저처럼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고 본인의 진짜 모습을 찾고자 하는 분들, 저희는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러웠던 이민자이자 게이인 한 남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 남자의 이야기를 오늘 밤,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기린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모두 그러한 이야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증거입니다. 저 자신이 이집트 이민자의 자식이자 이민 1 세대 미국인입니다. 그리고 제 이야기의 한 부분이 지금 쓰이고 있습니다. 저를 믿어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이보다 더 감사드릴 순 없을 것이며 제 평생 간직할 것입니다. 루시 보인턴, 당신은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야. 당신은 이 영화의 심장이었고, 내 마음까지 몽땅 훔쳐갔어. 여러분 감사합니다.


https://youtu.be/iy4GL6RtVOk


호들갑 떨지도 않고, 뭔가를 강하게 어필하거나 주장하지도 않지만 조곤조곤할 얘기 다하는 레미 말렉을 보며 역시 '레미는 레미다' 싶었던 순간입니다.




여우주연상

수상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올리비아 콜맨에게 돌아갔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꼭 보고 싶은 영화 중 하나입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으니 올리비아 콜맨의 연기에 대해 뭐라 이야기를 할 순 없습니다. 다만 여우주연상은 이번 오스카 시상식에서 제가 가장 불만이었던 부문입니다.


아니, 인간적으로 <유전>의 토니 콜렛이 여우주연상을 못 받는 건 둘째 치고,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건 정말 세상에 이건 이래선 안 되는 것입니다. <유전>에서 토니 콜렛은 제가 본 모든 영화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연기를 펼쳤습니다. 지금 당장 제 기억에 떠오르는 여배우의 역대급 연기로는 <양들의 침묵>의 조디 포스터, <미저리>의 캐시 베이츠, <제로 다크 서티>의 제시카 체스테인(메릴 스트립도 어딘가 넣어줘야 할 것 같은데.. 어쨌든). 이 리스트에 <유전>토니 콜렛이 들어갈 만큼 그녀는 놀라운 연기를 펼쳤습니다. 그런데 그런 토니 콜렛은 없는데, 아니 <로마>의 얄리차 아파리시오가 여우주연상 후보라니요. <로마>에서 그녀의 연기는 그냥 일반 '보통 사람이 하는 보통 연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색한 연기. 배우로서 전혀 훈련되지 않은 연기. 그런 연기를 만약 누군가 '자연스러운' 연기라는 미명으로 가치를 부여한다면, 아마 배우의 잘 훈련된 연기는 상당히 평가절하당할 것이며 그들의 존재 이유까지 상당 부분 퇴색될 것입니다. 비싼 돈 들여서 배우 쓸 필요 없이 영화의 실제 상황에 놓여있는 일반인을 캐스팅하면 될 테니까요. 배우는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못한 경험이나 상황을 실제 경험한 것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며 그러한 일은 상당한 훈련과 경험이 요구되는 고난도의 작업입니다. 어떻게 알리차 아파리시오가 후보에 오르고 토니 콜렛은 후보에 조차 오르지 못는지 정말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참고, <유전>은 밀도 높은 훌륭한 영화이니 못 보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길!


수상자에겐 미안하지만, 내 마음은 토니 콜렛에게




남우조연상

수상은 <그린 북>의 마허샬라 알리. 사실 후보에 오른 영화 중 제가 본 것은 창피하게도 <스타 이즈 본> 뿐이뭐라 말을 할 순 없지만, 요즘 마허샬라 알리의 기세를 보면 뭐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를 한 명 꼽으라면 많은 들이 주저 없이 마허샬라 알리를 꼽을 니다. 제가 이 남자를 처음 눈여겨본 건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1. 낮게 깔리는 멋진 중저음의 목소리 기가 막히는 수트빨까지, 이 남자 진짜 분위기 있다 느꼈는데, 이후 스멀스멀 여기저기서 얼굴이 보이더군요. 지금은 <알리타>에서 그 이상한 배역(!)까지 맡는 것도 모자라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자신이 최고의 전성기에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껄껄껄




감독상

수상은 역시 모두의 예상대로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주목할 만한 사실은 알폰소 쿠아론이 아닌 <더 랍스터>와 <킬링 디어>로 혜성처럼 떠오른 그리스의 신성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급기야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 매번 영화가 발표될 때마다 점점 주목을 받고 있으니 이대로만 간다면 조만간 감독상 수상도 꿈은 아닐 터. 멕시코 3 대장(알폰소 쿠아론, 기에르모 델 토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에 이어 그리스 감독까지.. 한국 감독의 감독상 수상은 내 생애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 만약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으로만 따진다면 현재 미국에서 촬영감독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홍경표 촬영감독의 촬영상 수상은 아닐는지 조심히 예상을.....


알폰소 쿠아론의 사진은 시컨 봤을테니,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사진을




촬영상

수상은 <로마>의 '야심가' 알폰소 쿠아론.

<로마> 라니... <로마> 라니... 흑백으로 느리게 흐르는 이 영화의 미장센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해변 시퀀스가 정말 멋지긴 했지만 이 영화가 과연 촬영상까지 받을 정도였는지... <스타 이즈 본>의 어디가 그리 부족했는지...






외국어영화상

수상은 역시 모두의 예상대로 #2 <로마>. 뭐 이건 따놓은 당상이었는데, 아쉬운 것은 <버닝>이 최종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너무나 막강한 <로마> 였기에 수상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미국 현지에서도 워낙 극찬을 받고 분위기가 좋았던 터라 <버닝>이 최종 후보에는 오르나 싶었는데 탈락된 것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이렇게라도 다시 봅시다




주제가상

수상은 <스타 이즈 본>의 'Shallow'. 이 부문도 뭐 거의 이견의 여지가 없는 부문. 아쉬움이 있다면 <스타 이즈 본>이  지지리도 없구나 싶은 것. 브래들리 쿠퍼는 제가 참 좋아하는 배우이고, 저의 인생 영화 중 하나인 <웨딩 크래셔>에도 출연한 바 있어서 더욱 아끼는 배우인데 배우와 감독 모두 훌륭히 수행했던 이번 <스타 이즈 본>이 상복이 없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힘내




미술상

수상은 <블랙 팬서>. 충분히 받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잠깐 그런데, 미술상 후보 또 <로마>. 응?

<로마>에 미술이라고 부를 만한 게 뭐가 있었는지 아무리 기억해봐도 기억나는 게 없는데. 좀 심하게 말하면 <로마>의 미술은 독립영화 수준이었는데 <한 솔로>도 <레디 플레이어 원>도 후보에 오르지 못한 마당에, 저기요 <로마> 라니요?


납득할 수 없는




음악상

수상은 <블랙 팬서>. 음... <블랙 팬서>는 사실 사회적 반향이 워낙 커서 그렇지 영화 내적으로만 보면 그리 완성도가 높은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체 프로덕션 측면에서는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특히 트렌디하면서 아프리카 향이 물씬 배어나는 쫀쫀한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음. 그런데 <스타 이즈 본>이 후보에 없네?? 저기요??






시각효과상

수상은 <퍼스트 맨>. 으잉???????

여우주연상과 더불어 저의 눈과 귀를 의심했던 부문. 저기요, 아줌마, <퍼스트 맨> 이라고요???? 아니, 잠깐만요 <퍼스트 맨>이라니요?? 지난번처럼 봉투 바뀐 거 아니고요?? <퍼스트 맨>은 차라리 예전 <시카리오>처럼 음향 믹싱이나 음향편집상 부문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어벤저스:인피니티 워>, <레디 플레이어 원>, <한 솔로>가 멀쩡히 후보에 있는데 <퍼스트 맨>이 시각효과상이라고요???? 저기요?


나와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수상은 <스파이더맨: 뉴 옴니버스>. 플롯에 살짝 군살이 좀 붙어 있고, 쫀쫀하고 속도감 넘치는 화면 구성과 전개에 비해 스토리가 좀 고쟁이 마냥 늘어지는 감이 없잖게 있지만 '감각'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눈이 즐겁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아. 환상적인 비주얼을 보여준 영화, 아직 안 보신 분에게 꼭 추천드립니다.


오직 비주얼 때문에라도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이렇게 써놓고 보니 <로마>의 수상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불만을 갖고 있는 것 같네요. <로마>의 수상을 응원하고 실제 수상에 기뻐하셨을 분들도 많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이번 <로마>의 아카데미 수상을 위해 엄청난 로비를 벌였다는 소식이 진작부터 많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인가 더 납득이 안 가고 씁쓸하기도 합니다. 위의 잡설들은 어쨌든 지극히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니 그저 재미로 받아들여주시길!

#싫으면시집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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